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10번 두드려 안 넘어가는 사장님은 없다

by 미루니

최근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현장을 다녀왔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폐쇄회로(CC)TV 따기다.

사고자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고, 당시 현장이 어땠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서이기 때문이다.


갓 수습을 떼고 난 직후엔 CCTV 따러 다니는게 제일 어려웠다.

사고가 난 지점을 알아야 하고, 그 주변에 가게들을 하나씩 돌아다니면서 CCTV가 달려있는지, 작동이 되는지, 사고지점을 비출 수 있는 각도인지 조사해야 하고, 가게 주인분한테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 CCTV를 확인해야 하고, 시간대를 맞춰 몇 시간이고 CCTV를 돌려봐서 겨우 30초짜리 하나를 건지는 과정을 하루종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야 CCTV를 따서 [단독]을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3일 내내 CCTV 하나만 따러 다녔다가 결국엔 아무런 소득이 없어 3일을 날린 기억도 있다.


이번 사고에서도 많은 기자가 사고가 난 골목을 찾았다. 십수명의 기자들이 골목을 헤집고 다녀서 나중에는 가방을 멘 채로 가게만 들어가도 기자인 걸 알아차리고 나가달라고 했다. (누가 봐도 밥 먹으러 온 것 같진 않았나 보다...)


문제는 이런 거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다. 수습 시절엔 이런 경우 바로 꼬리를 내리고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가게를 나왔다. 저렇게 완고한데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한들 먹힐까...? 라며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N년차... 이 가게를 놓치면 CCTV를 보유한 다른 가게를 찾으러 떠나야 할 것이 뻔한데, 그 선택을 하면 더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장님의 닫힌 마음도 열댓번 두드리면 결국 열린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가게 사장님은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시달린 듯한 피곤한 표정을 지었고, 어디어디 기자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나가주세요"라는 꽤 단호한 어투로 얘기했다. 하지만 나도 이미 수많은 가게들을 돌아다니느라 지친 상태... 비장의 무기인 비타민을 드리며 최대한 간곡한 얼굴(+살려달라는 얼굴)로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3번의 랠리가 이어지고 결국 CCTV를 따는데 성공했다.


그 골목의 또 다른 가게 사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장을 설명해줄 순 있지만 CCTV를 보여주는 건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한 뜻을 보였다. 꽤 완고하셔서 포기하고 물러서려는 찰나, 타 매체 기자도 부탁을 드리며 5분동안 설득의 과정을 반복, 결국 촬영하지 않는 조건으로 CCTV를 보여줬다. 며칠 후에 기사를 보니 절대 CCTV를 안줄 것 같은 그 사장님, 방송에 CCTV를 결국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이렇듯 사고 현장의 CCTV 따기는 결국 누가 먼저 사장님의 마음을 여느냐의 싸움과도 연관 돼 있을 것이다. 절대 절대 CCTV를 안 보여주는 사장님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 잡을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공손한 태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장님에게 CCTV 맡겨놓은 건 아니기 때문. 기자는 경찰도 아니기 때문에 사장님들이 CCTV를 보여줘야 할 의무도 없다. 사장님이 CCTV를 보여주는 일은 개인적으로 '친절'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3번째 거절을 당하고 4번째로 찾아갔을 때 안쓰럽다며 CCTV를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마침 사장님과 동향이었고, 타지에서 생활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씀드리며 대화를 나눈 것이 사장님의 마음을 자극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결단을 내려주신 사장님께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난다...


타사 기자들을 보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기자도 많았다. 가해자의 죄를 명명백백히 가려내기 위해 CCTV가 꼭 필요하다고 설득한달지,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서 증거인 CCTV가 꼭 필요하달지 등등... 내가 들었던 설득의 말 중 가장 인상깊었던 얘기는 "숨기는 거 없이 눈에 보이는 증거로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이렇듯 기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갈 수 있다. CCTV를 보여주시지 않은 사장님들의 마음도 당연히 이해한다. 한 번 주기 시작하면 이것도 입소문(...)을 타서, 정말 하루종일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장님이라도 밤낮 가리지 않고 연달아 찾아오는 기자들이 너무 귀찮고 짜증스러울 것 같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자들에게 시간과 CCTV를 내어주신 모든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