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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림 Nov 07. 2024

감정에게 4

성취감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취감이 부르는 노래는 짧지만 밝은 구간, 중독적인 후렴구 같다.



-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게 동기가 되어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그렇지 않다. 성취감은 나를 기쁘게 하지만, 나를 움직이는 것이 성취감인 것은 아니다.

노래가 후렴구만을 위해 제작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취감이 찾아오는 때가 행동을 하는 때와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행동의 목적으로서 성취감을 맨 앞에 두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반짝, 하고 찾아왔을 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즉시 찾아오는 성취감은 내게 있어 진한 농도의 성취감은 아닌 것이다.


때로는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서 성취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신비로운 영역에 성취감이라는 감정을 두고 싶진 않다.

그것은 운이 좋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획득감'에 가깝다.


굉장히 모순적이고 알듯 말듯한 영역에 성취감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성취감을 알고자 하면서도, 그것을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

성취감을 갖고 싶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선물로서 찾아오기를 바란다.



-

진한 농도의 성취감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에 앞서 올린 세 편의 글을 쓰며, 나는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나'로서 글을 썼고, 나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쓰다가 '글을 쓰는 나'에 이입하게 되자, 내가 '글을 쓰는'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나'에 집중하지 않고, '글'에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내가 성취감을 더 진하게 느낄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작위적으로 만드는 내가 성취감을 더 진하게 느낄 것인가?


나는 '나'를 이용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성취감으로 이어지려면 표현수단인 '글'을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에는, 그 주체가 글을 '잘 쓴' 내가 아니다.

글을 완성한 '나'이다.


내가 '나'로서 행동할 때. 내가 좋아서 무언가를 했을 때.

거기에 더해, 그것이 내가 이전에 쉽게 해내지 못한 것일 때, 깊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데

나는 글을 잘 쓰는 나보다 글을 완성한 나에게 더 '낯 섬' 혹은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간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그 후에 오는 성취감을 더 진한 것으로  느낀 것이다.



-

위의 두 문단에서 묘사하는 나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나를 움직이는 것은 성취감이 아닌 데다가, 작위적으로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얻은 결과물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기인하여 내가 갖는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의 결과물의 질이 어딘가 뚜렷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다는 점이다.

러프 스케치나 낙서 같은 것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는 것은 그 면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물론 강점도 있다. 나는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고집스럽고 완벽주의적인 모양새를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애착이 작동하는 방식이 조금 특이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별 것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잘한 것들을 애착하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왜 별 것 아닌 것을 좋아해야 하냐고 되묻는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말을 꺼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능숙하게 '잘' 한다고 해서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글을 써볼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오늘 쓴 글처럼 글을 복잡하게도 써 볼 것이고, 잘 쓰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도 해볼 것이다.

그렇게 잘 쓴 글이 나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작위적이지 않고, 작은 노력들이 쌓아 불러온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되지 않을까.


'꾸준히' 무언가를 완성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에, 그것이 가져다줄 새로운 성취감도 기대된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나를 움직이는 것은 '성취감'이 아니다.

나를 움직이는 감정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기대감' 쪽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성취감을 맛본 후, 색다른 성취감을 기대하는 오늘 같은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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