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날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향여행자 Sep 09. 2018

경험이 선생이다

4주 간의 반깁스가 가르쳐 준 것들

여기 보이시나요? 입방뼈라고 하는데, 여기 이렇게 금이 갔습니다. 골절이에요.
빠르면 3주, 늦으면 4주 간은 깁스를 하셔야겠네요.


절망적이었다. 넘어졌을 때만 해도 그냥 좀 삐끗한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집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은 7시가 넘었기 때문에 응급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두 발로 병원을 왔으니 '인대가 좀 늘어난 걸 거야'라고 생각했지, 금이 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그렇게 예고치 않은 반깁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지금인 거냐고 했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렇게 또 시련을 주시는구나. 참 다사다난한 해구나 싶었다. 돌아다녀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에게 걷지 못하는 건 정말 가혹한 벌이다. 집순이가 되어야 했다. 반깁스를 하고 돌아오자 집은 발칵 뒤집혔다. 집안에 근심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보태는 못난 딸이 되고 말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모두 중단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방에서 화장실이 이렇게나 멀었나 싶을 만큼 가는 여정이 험난했다. 화장실에서 변기까지 가는데 손이 발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가는 꼴이란 참으로 우스웠다. 발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고작 작은 금이 간 것일 뿐인데, 고작이 고작이 아니었다. 모든 순간들이 낯선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디 붙어있는 뼈이며, 어떤 뼈에 금이 갔길래 이런 건지 발의 뼈 구조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뼈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뼈들이 촘촘하게 구성돼 있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금이 간 입방뼈는 발목에서 가장 가장자리 쪽에 있는 뼈라고 한다. 아마 발을 다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몰랐을 뼈 구조다. 이렇게나 내 몸에 관심이 없었구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자는 나였다. 그런데 밤새 발이 찡- 쪼이는 느낌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병원에 전화를 거니 붕대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깁스를 하면 흔히 겪는 증상이라고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큰 이상은 없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돌아왔다. 잘 때마다 느끼는 통증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하루하루가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두 발로 걷는 게 이렇게 크게 감사할 일이란 걸 절실히 느끼는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일하지 않으면 버는 게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 이럴 때 또 서럽고 서러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책이 이럴 땐 또 큰 역할을 했다. 1일 1독, 아니 2독, 심지어 3독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전시회 준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왜 이렇게 읽는 구절구절마다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은지, 눈물나게 고마웠다. 누군가를 위해 고른 책들은 결국 나를 안아주는 책들이었다. 전시회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뼈에 금이 간 건 다른 치료방법이 없었다. 그저 발을 안 쓰는 게 낫는 길이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목발을 쓰기 시작했다. 이건 또 다른 산이었다. 계단 공포증이 생겼다.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뒤로 넘어질까 겁나고, 내려갈 땐 앞으로 넘어질까 겁나고, 순간순간이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가는데 5분 이상이 족히 걸렸다. 10분 이상 거리는 차마 목발을 짚고 갈 자신이 없었다. 버스정류장까지도 가지 못해서 아쉬운 대로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다. 장롱면허를 탈출하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구나 싶다가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셔서 오는 분들에게 실망을 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집까지 데리러 와주고 데려다주는 분들이 있어 무사히 일들을 마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가진 건 없어도 인복은 있구나를 느꼈다.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괴로운 마음만 커졌을 것이고, 회복 속도도 더뎠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2주가 흘렀을 때쯤, 서서히 일상생활의 불편함도 적응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갈 때마다 초긴장 상태였다. 괜찮아지고 있는 걸까. 마음을 좀처럼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


절대 많이 움직이시면 안 돼요. 4주가 최소 4주가 될 수 있어요!


깁스를 다시 하는 중, 붕대를 감아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잔뜩 겁을 먹었다. 혹시나 싶어 나와 비슷한 부위를 다친 사례는 없는지 글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입방뼈 골절 진단을 받은 분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더 절망적이었다. 두 곳의 뼈에 골절 진단을 받은 분이었는데, 초반에 오진으로 인해 발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6개월이 넘게 고생했다는 이야기였다. 발에 좋은 치료라는 치료는 다 받았지만 도통 낫질 않아서 괴로웠다는 말이 콕 박혔다.

다치자마자 병원에 간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사실 그 다음날 병원에 갈까 생각도 했었다. 만약 그랬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엑스레이로는 정확히 다친 부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CT를 찍었는데 비싸더라도 찍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초진은 정확했고 나만 조심 또 조심하면 되는 거였다. 절대 안정. 외출 금지. 바퀴 달린 책상 의자는 집안 이동 휠체어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혹여 발의 무리가 될까 하여 집에서조차도 화장실 가는 일 빼고는 거의 방에 붙박이처럼 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읽고, 그것도 지루하면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영상도 버라이어티한 오프로드, 세계에서 가장 짜릿한 놀이기구 등등을 보며 대리 만족했다. 나도 참 나다 싶었다.




화창한 날은 화창한 날이라서 얄밉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울적했다.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몽땅 빼앗아간 한 달이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보이는 캔맥주의 유혹을 참아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깁스를 푸는 날 시원하게 마셔주리라고 다짐하며 애써 참았다.



3주 차가 되었다. 병원을 가니 다음 주에 경과를 보고 잘하면 깁스를 풀 수 있겠다는 말씀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이내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러다 또 다칠라. 지금처럼 조심 또 조심하자.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말자고 다짐했다. 일주일 중 하루를 빼놓고는 집에 콕 박혀 있었다. 하루 외출한 날은 전시회가 있는 날이었다. 함께 책 전시 디스플레이를 했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깨북 안 사장님, 권 사장님이 두 배로 고생을 하셔야 했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 컸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 덕분에 전시회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4주 차가 되었다.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마침 밖에 나와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가을바람을 느끼고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늘도 눈물 나게 예뻤다. 역시 가을 하늘이구나 싶었다. 벤치에 앉아 쭉 뻗은 길을 보는데 바라만 보는 이 길을 온전히 두 발로 걷는 날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대망의 그날이 되었다. 발 상태를 보시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제 깁스는 푸셔도 되겠네요. 오늘부터 물리치료하시면 되고요.
물리치료 꾸준히 받으시러 오세요.


감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막상 걸으려고 하니 그 사이 왼쪽 발이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인지 한 발을 떼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목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깁스에서 해방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내심을 요하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별도의 예약 시스템이 없어서 물리치료를 받기까지 기본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순서가 되었고, 온찜질 치료, 초음파 열 치료, 전기 치료, 총 3단계의 물리치료를 받았다. 치료도 30분 이상이 걸렸다. 기다림과의 싸움이지만 자주 올수록 빨리 나을 수 있기에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오자고 다짐했다.

깁스를 풀고 목발 없이 걷기 시작한 지 이틀 째다. 어제는 다쳤을 때 나보다 더 나를 아껴준 사람들과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 걷는 연습 부지런히 하자며 격려해주셨다. 오늘은 오랜만에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셨다.   

한쪽 발을 다치며 깨달았다. 두 발로 함께 걷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그리고 홀로 걷는 길은 없다는 것을. 함께 걸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이제 외롭게 걷는 여행은 그만두기로 했다. 함께 걷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세상에 헛된 경험은 없다는 걸 또 한 번 느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이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