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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Feb 24. 2017

축제 후에 찾아온 후유증

강릉겨울퍼포먼스페스티벌 준비 세 달간의 시간은 여행이었고, 선물이었다  

요즘 나는 며칠째 잠도 2시간을 채 못 잔다. 식욕도 저하. 

'언제부터지?' 


생각해보니 축제가 끝난 다음날부터다. 축제 준비에 참여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식이었고 집에 도착하면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원래 잠이 많아서 일 시작하면서부턴 수면부족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이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충분히 퍼질러 잘 수 있음에도 이런다. 


어제 친구랑 기분 좋게 술 마시고 꿀잠 자겠다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2시간도 못 자고 깼다. 잠이 오지도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후유증이다. 긴 여행 때 찾아오는 후유증. 너무 좋아야만 찾아오는 후유증이 찾아온 것이다.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이 세 달간의 시간은 여행이었고 선물이었던 거다.



강릉대도호부관아 앞에서 명주 잉어가 소원걸기 행사의 첫 뼈대 모습은 꼭 우리 축제 준비의 시작 모습과 같았다. 첫 축제여서 무엇으로 채워질까 막연했다. 축제의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더욱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축제 준비에 큰 역할을 맡은 건 아니었음에도 심적 부담은 너무 컸다.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강릉 단오축제 홍보를 6년째 묵묵히 잘 해나가는 친구. 일당백을 하는 친구. 동갑이지만 똑부러지게 일 잘하는 친구라 유진이는 배울게 참 많은 친구였다. 여고 동창 인연에 생일까지 같아서 범상치 않은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의 차근차근해보자는 말이 마음에 똬악-가이드가 되었다. 


나는 우선 내 전문인 자료조사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 전직인 방송작가 때부터 다져진 이 습관은 나에게 아주 고마운 습관이다. 강릉의 역사책들을 읽고 신명 나는 흥 문화를 찾고, 천년 문화 단오 축제를 조사하며 우리 축제의 근원 스토리 키워드를 뽑고 뼈대를 잡아나갔다. 딱딱한 글이 아닌 감성적인 글을 쓸 것.  그렇게 해서 초대의 글이 나오고 축제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공연이 하나둘 픽스되고 점점 날은 다가왔다. 

그 와중에 여전히 축제 이름이 길다는 지적이 나와 유진이는 또 한 번 멘붕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위태로운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나며 웬만한 건 초연해졌는데 이름이 바뀔지도 몰라 우린 또 한 번 위기였다. 하지만 원만하게 해결되고 친구와 며칠을 고생하며 제작한 포스터가 나오고 리플릿이 나오고 핸디북이 완성되었다. '오타는 없겠지?' 몇 번을 검수했지만 혹여 또 있지는 않을까 긴장의 끈은 놓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보이지 않았다. 


축제가 시작되며 관람객들의 손에 들려진 핸디북을 볼 때마다 묘했다. 좀 더 잘 쓸걸 하는 아쉬움도 교차했다. 축제 동안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실시간 공연 상황을 인스타에 전하는 게 주 업무였다. 아날로그적인 나에겐 sns식 위트 절대 부족. 역량 부족이다. 좀 더 재치 있었더라면 좀 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을까. 많이 안 오면 홍보 부족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친구가 그랬다. 축제 후 흥망 평가 때 젤 만만한 게 홍보 지적이라고. 그래서 잘해야 본전이라는 씁쓸함을 일찌감치 말해준 적이 있다. 하기도 전에 맥 빠지는 소릴 들었지만 그럼에도 홍보 탓만은 듣고 싶지 않아서 꿀 주말을 통으로 반납하며 우편 작업도 일일이 수작업했다. 한 곳이라도 더 보낼 수만 있다면 하고 유진이와 우리 명예 홍보팀 강민이와 함께 주말을 보냈다. 주말에 나가는 게 정말 싫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 또한 깨알 추억이다. 여행지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가장 오래가고 추억이 되듯 이런 시간들이 내겐 선물이었다. 이런 추억들이 꽤 차곡차곡 쌓여 내 마음을 살찌워주는 선물이 되었다.

 

축제 내내 긴장은 놓을 수 없었다. 축제 준비 과정이 너무나 맘고생을 시켜서인지 하늘은 우리에게 화창한 날씨를 6일 동안 선물했다. 마지막 날은 바람을 좀 보탰지만. 혹여 비가 올까,  눈이 오면 어쩌나. 하지만 날씨가 부조했다는 엄마 말처럼 축제를 축하해주었다. 축제는 무사히 끝났고 축제가 끝나던 날 뒤풀이 회식 때 긴장감이 확 풀리며 예전의 주당 왕으로 돌아가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회식 2차, 3차까지 이어 갔다. 스트레스 유발자 몇 분과도 주고받은 술잔에서 스르륵 앙금이 풀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도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술병이 제대로 났다. 컨디션 메롱 상태로 그동안의 업무를 모두 마무리짓고 짐 정리를 하고 마지막 퇴근 인사를 했다. 친구는 정리를 다 했으면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후련함으로 가벼울 줄만 알았던 발걸음은 늘 오르락내리락하던 계단에 새겨진 발걸음들과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그 아쉬움, 그리움이 지금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음을 글을 쓰며 느끼는 바다.

함께 만들어간 명주가 대형 잉어처럼 우리의 축제는 "함께"를 일깨워주었다. 강릉겨울퍼포먼스페스티벌을 준비한 사람들, 그리고 축제의 장에 찾아와 함께 즐겁게 경험해 준 사람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이제 강릉겨울퍼포먼스페스티벌 홍보팀 고기은에서 다시 자유의 영혼 고기은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의 본분인 여행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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