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의 이분법이 사라지는 나라에서
뉴질랜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꽤 선명합니다. 쨍한 햇살 아래 끝없이 펼쳐진 남섬의 설산과 비현실적으로 푸른 초원. 저도 그랬습니다. 그 풍경이 곧 이곳의 매일일 거라고 막연히 믿었습니다. 늘 맑고, 늘 푸르며, 늘 그림 같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죠.
물론 그 상상이 틀린 건 아닙니다. 정말로 그런 날들이 꽤 많으니까요. 제가 정착한 곳, 남섬이 아닌 북섬, 그것도 오클랜드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날씨는 제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때로는 당혹스럽게 배반하곤 합니다.
오클랜드에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10분만 기다려라."
If you don't like the weather, just wait ten minutes.
처음엔 그저 과장이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하늘은 정말로 그렇습니다. 창밖을 때리는 장대비에 외출을 포기했다가도,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쨍해진 하늘을 보며 뒤늦게 현관문을 나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다'는 말은 이곳에선 농담이 아니라 꽤 정직한 일기예보입니다.
이곳 날씨의 첫 번째 특징은 극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처럼 '여름엔 반팔, 겨울엔 패딩'이라는 명확한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를 겨울이라 부르고, 가장 더운 시기를 여름이라 부르기로 약속한 것만 같습니다. 체감상 늘 초봄과 초가을 사이 어딘가를 기분 좋게 오갑니다.
대신 하루의 변동성이 계절의 자리를 채웁니다. 계절의 변화보다 하루의 변화가 훨씬 더 극적입니다.
오클랜드의 여름 햇살은 날카롭습니다. 빛이 피부를 따갑게 파고들죠. 하지만 한국 여름 특유의 눅눅하고 불쾌한 습도는 없습니다. 공기가 고여있지 않고 바람에 빠르게 씻겨나가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양지는 뜨거워도 그늘 아래는 정말 시원합니다. 제가 사는 집의 2층 생활공간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여름나기 방법이라고 해봐야, 공기가 뜨뜻해지면 그늘진 1층으로 피신하는 정도예요. 1층에는 에어컨이 있긴 한데, 아직 켜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름밤엔 창문을 닫기 바쁩니다. 새벽녘 쌀쌀해진 공기에 이불을 끝까지 끌어당기다 못해, 어떤 날은 구석에 치워두었던 컨벡션 히터를 다시 꺼내기도 합니다. 여름에 히터라니.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겨울은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정말 겨울 같지 않습니다. 가장 추운 날도 영상 10도 안팎이고, 눈이라는 존재는 도시의 기억 속에 없습니다. 웻수트를 입긴 했지만 한겨울에 서핑을 간 적도 있어요.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죠.
물론 대가는 있습니다. '가벼운 추위'에 맞춰 설계된 집들은 난방에 그리 진심이 아닙니다. 온돌에 길들여진 몸은 카펫과 히터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서느런 한기를 느낍니다. 이 정도 추위에 온돌을 깔기엔 가성비가 안 맞겠지,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코끝이 시린 겨울 밤이면 뜨끈한 바닥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7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창밖의 나무들이 휘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감각으로는 당연히 칼바람을 예상했습니다. 코트 단추를 단단히 여미고 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온화해서 당황했습니다. 바람은 세지만 차갑지 않았습니다. 시각 정보와 체감이 맞지 않는 그 어긋남이 묘했습니다.
문득 제주도에 사셨던 분들은 이런 날씨에 오히려 익숙하지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해양성 기후라는 게 어떤 건지, 저는 여기 와서야 몸으로 배우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선 '계절별 옷장' 대신 '레이어링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을 낮에 벗고, 저녁에 다시 껴입는 생활. 현지 브랜드인 카트만두(Kathmandu)의 얇은 방수 자켓 하나가 명품 코트보다 절실해지는 이유입니다. 갑작스러운 비에 대응할 수 있는 얇은 겉옷 하나가 생존 필수품이 됩니다.
우산을 잘 쓰지 않는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흔히 "서양인들은 우산을 안 쓴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여기서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근데 그게 강인함을 과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비가 굳이 피해야 할 비가 아니기도 하고, 애초에 방수 자켓을 널리 입고 다니기 때문이기도 해요.
어느 순간부터 일기예보 앱보다 구름의 움직임과 공기의 느낌을 더 믿게 됐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게 앱을 확인하는 것보다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선 맑으면 좋은 날, 비 오면 나쁜 날이라는 구분이 꽤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 이분법이 슬슬 흐려집니다. 비가 와도 불쾌하지 않고, 흐려도 금방 개며, 바람이 세도 춥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이것도 혹독한 여름과 겨울에 단련된 한국인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오클랜드 사람들에게 한국의 겨울에 대해 얘기하면, 도대체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물론 남극이 가까운 남섬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요.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 그 경계가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 안의 날씨 감각체계 자체가 업데이트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기후 덕분일까요. 식물들은 정말 잘 자랍니다. 푸른 잔디가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사계절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