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퇴직

#1

by 키위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코레일 철도 민영화 문제로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던 그때쯤인 거 같다. 나는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퇴직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다녔다. 하고 싶었던 말은 퇴사의 감정이었고, 언젠가 나도 퇴사를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리 써둔 퇴직서를 사내 전체 메일로 보내고, 쿨하게 퇴사하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무섭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오늘 나는 퇴사도 아닌, 육아 휴직을 사용했다. 내 심정은 육아 퇴직과 같은 심정이다. 미래가 불안하고 초조하다. 쓸모 없어진 기분도 들고, 경쟁에 밀려 패배감이 든다. 이 기회는 안식년이라 스스로 자위하지만 불안함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나는 약해지고 옹졸해지고 무서워진다. 그러니 40대에 결정한 육아 휴직은 나에게 큰 공포 대상이다. 각오를 안 한 건 아니었다. 내 가족을 위해 호 의롭게 결정을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선택을 했지만 그렇다고 안 무섭다는 건 아니니까. 나는 오늘 그 무서움에 대해 기록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 유일한 소통의 창구인 이곳 내가 좋아하는 방식인 글을 씀으로써 그리고 음악과 함께. 대한민국에 육아휴직을 놓고 고민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하자면? 이 글에 와드 박고 도망쳐!

오늘은 첫날이다. 나는 육아휴직을 쓰는 기간 약 11개월 동안 매일 나의 감정과 기분에 대해 글을 기록하고자 한다. 단편적인 한 편의 글을 읽고 의사결정하기엔 너무 정보가 부정확한 거 안다. 그러니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의 감정과 기분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하고자 하니 조금이나마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었음 한다. 내가 느끼는 불안감 요소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돈. 처음에 솔직히 아껴 쓰거나 안 쓰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내가 미혼이 아닌 이상 이건 불가능하다. 와이프와 나의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입에 넣어 주고 싶은 게 아빠니까. 둘째 직장에서 나의 위치. 직장 감투 놀이 싫다고 하지만 나는 직장 감투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내 인사조직 개편 메일이 날아오면 궁금해서 계속 쳐다보게 되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 기간 나는 경쟁력도 떨어지고, 감도 떨어지고 나이는 들어가고 사람들 관계도 멀어지고 뭐 하나라도 좋은 게 없으니 불리하고 불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육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은 남녀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온다. 나는 육아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일하는 시간 8시간 이후에 만나는 나의 아이들이 현재는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24시간 계속 함께 한다면 나는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알겠지. 나의 뜻은 이미 정해졌고 그저 맡긴다. 돌이켜 보는 나의 발자취에 마지막은 행복했고 소중했고 나의 인생에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라고 마침표를 찍기를 소망하며 오늘 기록은 여기까지.


p.s: 오늘 플레 선곡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