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인사를 잘하면 머리가 좋아져요!"
중학교 시절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이 첫 조회 시간에 한 훈시다. 세월이 흘러 그 교장 선생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충격적인 훈시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물론, 좋은 기억은 아니다. 인사를 잘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훈시냐며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아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인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교장 선생님이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닐까?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매일 누군가를 만나 처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행동인 인사가 가지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정확히는 '인사를 하는 우리'는 그 인사가 가지는 의미를 모른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인사를 하기보다는 주로 인사를 받는 위치가 됐다. 그러면서 그 인사의 의미가 조금씩 크게 다가온다.
나 역시 출근해서 상사, 선배들에게 하는 둥 마는 동 인사를 했다. 상대가 나를 보던 안 보던 "안녕하세요~"하고 휙 하고 돌아서서 자리에 앉았다. 행여나 사무실을 나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고위급 임원을 마주치면 '인사를 할까'하다가도 도망치기 일쑤였다.
반면 내가 모신 상사 중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하면 인상을 쓰고 받는 둥 마는 동 하는 상사도 있었다. 그를 보며 나는 나중에 저 위치가 되면 직원들을 항상 반갑게 맞아줘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지금 그 위치에 올라 옛 다짐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
인사를 받으면 그래도 웃으면서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했어요", 때로는 괜히 손까지 흔들어가며 반겨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머쓱한 순간이 있다. 반갑게 반기는 인사를 하려는데 후배가 눈도 안 마주치고 휑하니 뒤돌아서 자리로 가버리는 경우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해서 쓱 지나가며 인사하고 자리로 간다. 그러나 눈도 마주치지 않고 휑하니 가니 괜히 무안하고 기분이 상한다. 본인은 별 의미가 없었겠지만, 인사 같지 않은 인사를 받은 나는 괜히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직원을 불러 웃으면서 부탁을 했다. 우리 아침에 눈 마주치고 인사를 하자고. 그 후로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역시나 반가운 아침 인사는 기분이 좋다.
그 후로는 나도 내 윗사람들에게도 아침 인사를 꼬박꼬박 잘하려고 한다. 반갑게 눈을 마주치며 인사한다. 그러면 아무리 짜증 나는 직장 생활도 그 순간만은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반가운 인사는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자는 서로 간의 사인이자 약속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인사는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매일 오가면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직원과, 나를 뻔히 봐 놓고 모른척하거나 피하는 직원을 보게 되면, 어느 직원에게 더 호감이 갈까? 두 직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누구를 더 도와주고 싶을까?
그리고 그 인사가 불러온 호감이 당장 그 직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라도, 그 직원의 평판은 우호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특히 직장 내에서 우호적인 평판은 업무를 하면서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그 직원의 인생도 좋게 풀려가는 계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인사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평판이 좌우된다니? 들으면 이 또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 그런 속담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괜히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받은 인상이 쌓이다 보면, 그 사람에게 호감도가 쌓이게 된다. 물론 그 호감도를 본인이 어떻게 강화해 나가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
안 믿기겠지만, 인사가 가지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많다.
인사를 받는 위치가 되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더욱 반갑게 인사를 받거나, 후배라도 내가 먼저 인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신경 써서 하는 인사가 있다.
바로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아니면 커피를 주문해서 받으면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또 올게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내가 느낀 고마운 감정을 전하고 나면,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요즘 새삼 느끼는 사실은 식당 주인의 반가운 인사가 음식 맛을 배가 시키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역에 있는 이도설렁탕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니, 계산대에 사장님의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고 답례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반대로 한 유명 라면 가게에서는 "맛있게 먹었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니, 돌아온 것은 "네네"였다. 음식에서 받았던 감동이 갑자기 식는 기분이었다. 인사 한 마디가 받는 이의 감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인사를 잘하면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을지라도 하루가 즐거워진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