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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Dec 14. 2022

[풍취반하] 장사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2)

중드리뷰

풍취반하 반하에 부는 바람()     


요즘 방영 중인 작품 중 제일 열심히 보는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어서 보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무중이에서도 잠잠한 이 드라마를 저는 일일드라마 보듯 하루에 두편씩 꼬박꼬박 챙겨보았습니다.      


주인공 쉬반샤는 대학을 졸업한 나름 엘리트지만, 이를 숨기고 소꿉친구 천위저우와 고물상을 합니다. 이쪽 업계 사람들이 엘리트인 걸 알면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야망은 포부있게 드러냅니다. 심지어 강력하게 어필하기도 해요. 단순히 고철장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야적장+제철소+부두까지 아우르는 철강사업가를 꿈꾸죠. 그리고 이를 향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가 풍취반하예요.      


설명을 쓰고보니 참 재미없어 보이는데, 저는 이 과정이 참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왜 빠져들어서 보았는지 나름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1. 한회한회 구성이 있다. 


보통 중드의 경우 40부작 정도를 쭈욱 찍어놓고 두부 자르듯이 회당 45분 간격으로 툭툭 자르잖아요.(저는 처음 중드볼 때 이것이 문화적 충격이었는데요ㅋ) 풍취반하의 경우, 스토리 구상을 할 때부터 회당 구성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1회 엔딩 다음 장면이 2회 오프닝이기도 하고, 2회 오프닝에서 1회 엔딩 이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왜 1회 엔딩 스토리가 펼쳐졌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1회 엔딩 장면을 2회에서 다시 보여주면서 다른 앵글이나 시점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회차별 구성이 뭔가 한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외국드라마 보느라 한드를 잘 못 보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면 열심히 보는, 애초부터 드덕인 저같은 사람한테 잘 먹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대배경상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그리고 있어 예스러운 분위기가 나지만, 뭔가 연출은 세련된 느낌? 왠지 제작진이 스토리 회당 구성이나 연출에서 한드를 벤치마킹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2. 그럼에도 중드같다.      


그럼에도 중드를 꾸준히 보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뭔가 중드다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현대극임에도 뭔가 고전극 같은 인물구성과 스토리 라인이 그렇습니다. 주인공 쉬반샤를 중심으로 책사 천위저우, 호위무사 퉁샤오치, 사형 펑거, 반대&적대관계인 우젠서, 추비정, 궈치동, 호의&지지관계인 자오레이, 가오회장 등. 물론 현대극이다보니 흑백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 인물구성 고대로 고전극에 매치를 시켜도 위화감이 없어요.      


주인공 쉬반샤가 하나의 고난을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오고, 그 고난을 돌파하면, 더 큰 고난이 찾아오는 구성은 우리가 무협물이나 고전극에서 익숙히 보아오던 스토리예요. 그리고 이를 통해 주인공은 점점 도장깨기하듯 과제&고난을 해결하고 점점 레벨업&성장을 합니다. 중드 고전극을 보아오며 고구마 산맥에 단련된 시청자들은 풍취반하의 고난도 무리없이 보게 되죠.    

  

그리고 강호를 떠돌며 내 펑요가 니 펑요, 니 거거가 내 거거인 문어다리식 인간관계를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도 풍취반하에 고대로 적용됩니다. 쉬반샤의 의동생 퉁샤오치의 애인 가오신이(a.k.a 예모)가 알고보면 국제무역을 전공한 엘리트고, 결국 쉬반샤의 무역회사에서 중책을 맡게 되는 식이에요. 한때 쉬반샤에게 호감이 있었던 쑤선생님의 친동생이 전자공학을 전공한 IT 인재였고, 이 인재가 결국 쉬반샤 회사의 정보통신을 맡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쉬반샤는 알음알음 자기사람들을 획득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는 쉬반샤 회사의 성장과도 연결이 되죠.     

 

3. 도화지 같은 조려영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저리 썼는데, 조려영 배우는 빈 캔버스 같달까요.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사실 저는 조려영 배우의 작품 중 완주한 작품이 수시흉수 밖에 없어요. 왜인지 싸하고 차가운 느낌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완주하지 못했고, 수시흉수는 그런 느낌이랑 잘 맞는 캐릭터라 완주를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에 풍취반하를 보다보니 싸하고 차가운 느낌이라기보다 비어 있는 느낌? 캐릭터의 색을 입히면 입히는대로 입혀질 것 같은 느낌? 이게 쉬반샤 캐릭터랑도 연결이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작품의 주인공이 쉬반샤임에도 극중 쉬반샤의 직접적인 감정표현은 극히 드물어요. 오히려 주변인물들의 감정표현을 더 공들여 보여주는 것 같아요.      


반면 쉬반샤는 주로 다른 인물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듣는 청취자의 입장에 자주 서요. 하물며 천위저우의 가짜애인이 떠날 때 하는 긴 독백도 쉬반샤는 묵묵히 듣고 있죠. 결국 결단을 내리고 실행을 하는 건 쉬반샤인데, 우리는 쉬반샤의 발화나 행동을 통해서만 그 결정을 알 수 있지,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쉬반샤의 생각이나 감정상태는 읽을 수가 없어요. 극에서 감추거든요. 그래서 시청자가 주인공인 쉬반샤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동화하는 걸 막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것은 얼마간 의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들 모두는 장사치고 어느 누구도 선악이나 도덕, 인과적인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그리고 극에서도 이걸 꾸준히 보여줍니다.     


갯벌을 임대하기 위해 폐기름을 유출한 퉁샤오치&천위저우, 결국 쉬반샤의 과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쉬반샤의 발목을 잡아요. 우젠서, 추비정, 궈치동이 이익만을 쫓으며 벌인 크고 작은 과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어찌보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북으로 고철을 사러 떠난 일도 결국 문제가 되어 돌아와요. 과거의 망령이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극의 이런 태도는 시청자로 하여금 이 상황들을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게 만듭니다. 하물며 주인공인 쉬반샤를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며 쉬반샤는 결국 모두를 책임지는 대승적 차원의 결정을 하게 되는데, 저는 이게 참 중국스럽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게 극에서 차곡차곡 주변인물들의 의견을 들으며 결국 자기 사람으로 흡수하던 쉬반샤 캐릭터랑 잘 맞아요. 쉬반샤가 타인의 얘기를 들으며 미묘한 표정 변화로 리액션을 하는 연기가 많았는데, 뭔가 비어있는 느낌의 조려영 배우랑도 잘 어울리더라구요.    

  

아직 쓸 말이 많지만,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오늘 완결이 나니깐 후속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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