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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Oct 17. 2021

21년 BIFF(부산국제영화제) 일지 : 9일차

폐막’s day / 영화리뷰

11시 뉴 커런츠 수상작 1 <안녕, 내 고향> : 카메라의 눈높이


사실 영화제 기간 내내 ‘감독은 부재중’ ‘복사기’를 놓쳤기 때문에, 뉴 커런츠 수상작으로 두 편 중 한 편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매표했건만, 영 다른 영화 두 편이 수상작이었음. 역시 심사위원과 관객의 평은 갈린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앞으로는 남이 골라주는 영화 말고 내가 고른 영화를 보기로 다짐함. 근데 수상작 두 편이 안 좋았냐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안녕, 내 고향>은 중국출신 감독이 자신을 중심으로 엄마, 할머니,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서사인데, 이게 남성감독이 자신을 중심으로 꾸린 이야기라 크게 와 닿지 않는 느낌. 실제로 감독이 영화에서 세 명의 여인을 묶는 중요한 고리로 출연하기도 하고, 남성의 관점에서 그려낼 수 있는 세대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쩌면 뻔한) 여성 서사들로 꾸려진 느낌.


근데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 하면, (아마도 이것 땜에 상 받지 않았을까 싶긴 함) 할머니-농촌, 여자친구-대도시, 엄마-소도시, 세대별 여인과 도시를 묶고, 풀샷-롱샷-익스트림롱샷을 적절하게 섞어서 보여준다. 그리고 각 세대별 여인의 독백이 화면과 함께 진행된다. 독백과 화면의 조화 또는 충돌로 인해 관객이 독특한 심상을 느끼도록 유도한 것 같다.


1막은 할머니 에피. 독백은 시골에서 태어나 또 다른 시골로 시집가 한평생 가족부양하며 고단하게 산 여느 여인의 이야기. 시골의 풍광과 주로 풀샷으로 잡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이것이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비출 때는 카메라가 인물과 눈높이를 같이하거나 혹은 낮추어 풀샷으로 잡는다. 근데 이게 뒤의 2,3막과 비교하면 좀 생경한 느낌.


2막은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 에피. 독백은 14살에 북경무용학원으로 진학해 고향을 떠나고, 화려한 도시를 기대했으나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학원에서 향수와 외로움을 느끼며 지내온 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그 대도시에서 무용강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무용학교 재학시절 만난 단짝친구의 이야기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 그리고 사실상 시(時)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한 듯한, 혹은 과거의 한 장면과 비슷한 장면을 롱샷으로 보여줌. 유달리 2막에서는 익스트림롱샷을 자주 쓰는데, 큰 스크린에서 인물들이 정말 면봉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짐. 면봉같은 크기의 인물들이 배드민턴도 치고, 반갑게 인사도 하고, 무심히 헤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듯한 부감으로 찍는다. 여자친구와 단짝친구가 오랜만에 해후하여 같이 춤을 추는 장면은 인물의 눈높이에서 롱샷으로 잡고, 남친(사실상 감독)이 등장하는 장면은 인물의 눈높이에서 풀샷으로 잡는다. 이게 무의식의 발현인지 감독의 의도된 연출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함정.


3막은 엄마 에피. 독백은 세상의 아름다움만 보며 살고 싶었던 교사인 엄마가 노동자 아빠와 결혼해서 서로 안 맞는 결혼생활을 해온 이야기. 여기서는 주로 롱샷을 자주 쓰는데, 엄마의 시점 혹은 카메라의 시점으로 타인을 내려다보는 부감으로 찍는다. 역시나 엄마와 아빠를 비출 때는 인물과 눈높이를 맞춘 풀샷이 대부분. 엄마가 학교 발표회에서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며 마무리 되는데, 엔딩씬은 엄마가 동료교사를 내려다보던 그 시점 샷으로 알콩달콩하는 청소년들을 비추며 끝남. 근데 이 엔딩씬이 묘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와 겹쳐짐.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엔딩씬도 동네꼬마들이 알콩달콩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비추며 끝남. 다만 카메라가 내려다보느냐 올려다보느냐의 차이.


그래서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겠지만, 조지아와 조지아의 얼굴들에 애정을 담아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감독의 무의식의 발현과 자신의 관점에서 여성서사를 담고자 한 감독의 무의식의 발현에 따른 상반된 결과이지 않을까 짐작해봄. 그렇게 생각하면 카메라의 눈높이가 할머니-어머니-여자친구를 거쳐 가며 점점 높아지는 것이 묘하게 불편하기도;;


14시 뉴 커런츠 수상작 2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역겨운 사랑의 노래


사실 이 영화는 사랑 영화가 아니다. 근데 올해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역겨운 사랑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음. 거의 한국 모녀 사이에 있을 법한 트라우마적 상황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굉장히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엄마 윤수경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정(?)을 담아 그리고 있음. 그리고 아마도 거의 확실히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딸 김이경에 대해서도 꽤 구체적으로 그리는데, 배우의 연기 혹은 아우라 때문에 윤수경에게 더 포커스가 맞춰지는 느낌. 아마도 감독은 엄마와 딸을 똑같은 비중으로 그리고 싶었을 것 같음. 의외로 이경이 회사에서 만난 동료와의 관계가 현실적이어서 소름.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쓰다보면 트라우마 자극될 것 같아 자제함.


폐막식에서 있었던 시상식에서 올해의 배우상으로 이경역을 맡은 임지호 배우가 수상, 뉴 커런츠로 김세인 감독이 수상함. 임지호 배우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경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는 소감을 남기고, 김세인 감독은 세상의 모든 윤수경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소감을 밝히는 것을 보며 영화가 어찌하여 이런 빛을 띠게 됐는지 온전히 이해가 된 느낌. 그러나 이 영화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은 영화임.


20시 폐막작 <매염방> : 홍콩 연예계를 유영하는 그녀, 매염방

 

폐막쯤 되면 컨디션이 바닥이기 때문에 폐막작을 포기한 적도 있는데, 올해 <매염방>은 꼭 보고 싶었다.(그러려면 뉴 커런츠를 두 편이나 보지 말았어야지;;) 그래서 폐막식은 좀 느지막하게 들어갔고, 거의 폐막작만 봤음.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홍콩 연예계를 세밀하게 복원해낸 영화로, 그곳을 유영하는 매염방을 정말 매력적으로 그린 영화임. 매염방에 대한 감독의 존경과 사랑이 듬뿍 담긴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야외상영관에서 136분짜리 영화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재밌게 봤음. 정말 폐막다운 폐막작이었다고 생각함.


매염방이 나오는 홍콩영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라면 세상 반가운 그녀, 그리고 장국영. 사실 홍콩영화의 주조연 정도로 알았던 그녀가 실제로는 홍콩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뮤지션이라는 걸 알게 해준 영화. 그리고 40세에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언제나 홍콩의 딸이자 큰언니이자 말 그대로 스타였던 그녀. 후대의 홍콩 천문학자가 새로이 발견한 행성에 매염방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마저 너무나 드라마틱한 엔딩. 그냥 그 시대의 홍콩 스타들의 사진, 아카이브 영상, 공연실황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감을 줬던 영화. 그러나 영화도 잘 만들었음. 늘 폐막작은 뭔가 아쉽다 했었는데 올해는 만족. 이쯤에서 정리해보는 관람한 폐막작들. 갱스터의 월급날(2014년), 산이 울다(2015년), 검은 바람(2016년), 엽문 외전(2018년), 매염방(2021년).


영화제 결산?


사실 영화제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관람이기보다 체험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영화제 뽕을 맞은 듯한 기분으로 하루에 1~4편의 영화를 보며, 영화 스케줄에 쫓기며 영화관 사이를 이동하고,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못하며 관람을 계속 이어가야 하고, 중간중간 눈과 뇌를 쉬어줄 시간 없이 풀로 눈과 뇌를 가동해야하며, 같은 시간대의 여러 영화 중 그 영화를 픽한 나 자신의 선택에 흡족하기도 후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놓쳐버린 영화가 두고두고 후회되기도 하고, 아쉽지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


여튼 이번 영화제에서 화제작, 인기작은 매표 자체를 포기했으니까 미련이 없는데, 컨디션 난조 혹은 둘 중에 뭘 볼까 고민하다 포기했거나 끝내 표를 못 구해서 아쉬운 작품들을 나열해 본다.


- 1,2회차라 못 간 영화들 : 강변의 무코리타, 홀드 미 타이트, 감독은 부재중

- 같은 회차의 다른 영화 보느라 포기한 영화들 : 거대한 자유, 나의 집은 어디인가(두 작품은 평이 좋은 LGBT 작품이라 더 미련이 남을 뿐이고;;)

- 영화제 후반에 알음알음이 평이 좋았으나 표를 못 구한 영화들 : 복사기, 매스

- 못 봐서 아쉬운 다큐들 : 성덕, 무지의 밤, 카우, 자화상 : 47KM 마을의 동화   


늘 영화제가 끝나면 못 본 영화들 개봉하면 봐야지 다짐하곤, 사는 게 바빠서 잊곤 하는데 그래도 남겨보자. 엄청 많다;;


- 올해 개봉예정 영화

레오 카락스 <아네트>, 쥘리아 뒤쿠르노 <티탄>,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 개봉이 확실시 된 영화

폴 버호벤 <베네데타>, 웨스 앤더슨 <프렌치 디스패치>, 에드가 라이트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도미니크 그라프 <파비안>


- 감독이 유명하니 개봉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

아스가르 파르하디 <히어로>, 난니 모레티 <일층 이층 삼층>, 미아 한센 로브 <베르히만 아일랜드>, 프랑수아 오종 <괜찮아, 잘 될 거야>, 가스파 노에 <소용돌이>


- 누가 수입 좀 해줬으면 싶은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 <우연과 상상>, 유호 쿠오스마넨 <6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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