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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윤 May 02. 2016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대만 타이페이에 ‘요상한’ 카페가 있다.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는 곳. 돈을 내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다만, 현금거래 대신 ‘교환법칙’만 가능하다. 당신에게 적당한 물건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노래나 이야기로도 교환은 가능하니까.

글 월간<커피앤티> 차은희 기자 ㆍ 사진제공 찬란


영화는 한 자매, 특히 언니 두얼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남긴 유산으로 언니 두얼은 학업을, 동생 창얼은 세계여행을 선택했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자매는, 그러나 서로를 부러워한다. 두얼은 창얼의 자유로움을, 창얼은 두얼의 안정적인 삶이 부럽다. 감독은 관람객에게 ‘선택’의 양쪽 측면을 말한다. 어떤 것을 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하는.
좋은 회사를 다니던 두얼은 돈이 벌고 싶어 카페를 열었고, 창얼은 그곳에서 ‘교환’을 시작한다. 하나씩 교환하다보면 자동차를 얻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창얼이 처음 교환한 것은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책 한 권과 막혀서 뚫릴 줄 모르던 카페의 하수구 수리. 교환이 입소문을 타면서 카페에는 더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많아진 사람들, 정체불명의 물건들. 난잡한 분위기가 두얼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물건을 교환할 때마다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서히 두얼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어느 날, 35개국에서 산 35개의 비누를 다른 무언가와 바꾸고 싶어 하는 한 남자가 카페를 찾아온다. 그의 비누는 다른 것과 교환하기에 작았다. 남자는 비누에 그것을 산 나라의 이야기를 더했고, 두얼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다. 35개의 이야기가 끝나자 35장의 그림이 완성됐다. 그동안 비누를 사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비누가 자신의 ‘기억’이라고 여겼다. 그는 35개의 이야기가 담긴 35개의 비누 그리고 35장의 그림을 가지고 떠났다. 창얼은 그림까지 가져간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 두얼은 그림이 결국 남자의 기억을 그린 것일 뿐,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곧 기억이고, 기억은 곧 인생이란 깨달음이다. 곧 두얼은 자기만의 이야기와 기억, 인생의 부재를 알게 된다.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겠지. 그 그림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야.”
감독은 두얼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만의 ‘첫 번째 이야기를 찾으라’고 말한다. 영화 속 두얼은 자신의 일상이 너무 평범하고 지루해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두얼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카페에 온 이들의 이야기를 서로 교환하며 그저 재미있게 듣기만 했던 두얼에게도 이젠 이야기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다른 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준비가 된 셈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인생을 두고 전할 이야깃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픈일일 것이다. 실존하는 모든 사물은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 하물며 인간의 인생은 오죽하겠는가. 이야기를 찾기 위해 두얼처럼 정처 없이 떠날 필요까지는 없다. 어디에 있든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면 된다.
돈을 벌고 싶던 두얼은 떠났고, 세계여행을 원했던 창얼은 자동차를 얻었지만 카페에 남았다. 창얼은 이제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그녀는 카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았다.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단지 아직 서로를 못 찾았을 뿐이에요.”
아직 찾지 못한 ‘나’의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나의 첫 번째 이야기. 영화는 자신의 새로운 위치를 찾은 두얼과 창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감독은 엔딩크레딧까지 줄기차게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당신도 찾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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