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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점 Jan 27. 2021

저 비행기, 꼭 타야만 한다구

귀국편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벌인 사투

나는 직업상 해외출장을 많이 다녔다. 평균 1년에 네다섯 번 정도는 간 것 같다. 간혹 3박 4일 짧은 출장도 있지만, 현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4주 이상 걸리는 장기출장이다. 장기 출장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히 귀국일이다. 귀국 날짜가 가까워지면 날짜 세기에 들어간다. 귀국날까지 앞으로 D-x일. 3일 전쯤부터는 시간을 센다. 귀국행 비행기 탑승까지 앞으로 57시간, 56시간, 55시간… 그만큼 귀국일은 중요하다. 귀국 스케줄에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제대 앞둔 말년 병장처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


대부분은 별 탈 없이 귀국한다. 시간 맞춰 공항에 가서 비행기에 오르면 예정된 시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귀가한다. 하지만 열에 한 번 정도는 아슬아슬한 사건이 생긴다. 최악의 경우에는 제때에 귀국을 못하는 일도 있었다.


파리의 폭설


2010년 12월 20일, 스톡홀름에서 50일 출장 끝에 귀국하는 길이었다. 스톡홀름에서는 한국까지 직항이 없다. 프랑크푸르트나 런던, 파리, 헬싱키 등을 경유해야 한다. 내 귀국 편은 에어프랑스로 파리 샤를 드골 공항까지 가고, 대한항공으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스톡홀름에서 파리까지는 비행시간이 2시간 걸린다. 파리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저녁때쯤 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일찌감치 스톡홀름 숙소를 출발했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맑았다. 공항까지는 택시로 40분쯤 걸린다. 내가 예약한 파리발 비행기는 1시쯤 출발할 것이니 시간은 넉넉했다. 중간에 택시기사가 기름을 넣어도 되겠냐고 했을 때도 흔쾌히 허락했다. “I have plenty of time.” 주유소에 들리느라 예정보다 10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시간은 넉넉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평소에 없던 줄을 서고 있었다. 공항 전광판을 보니 내가 타야 할 파리행 비행기가 “Cancelled”로 표시되어 있었다. Delayed가 아니라 Cancelled 였다. 헉. 내 비행기가 취소라니. 이런 날벼락이…


서둘러 에어프랑스 창구로 갔다. 역시나 수십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당시 나는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이었다. 모닝캄 회원은 스카이팀 엘리트 회원과 동일한 자격이 있다. 에어프랑스 창구에는 엘리트 회원을 위한 fast track이 있었고, 다행히 한두 명만 줄을 서 있었다. 덕분에 내 차례는 금방 왔다.


창구 직원이 이야기하길, 파리에 폭설이 내려서 공항이 마비가 되었단다. 내가 탈 비행기가 파리에서 발이 묶여 스톡홀름으로 오질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긴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파리는 눈이 내렸구나. 눈이 좀 내렸기로서니, 공항이 마비되었다니. 21세기에 선진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3일간 내린 폭설로 2010년 12월 20일에는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 공항이 대부분 마비상태였다.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2213056
2010년 12월 폭설로 공항 마비. KBS 뉴스 캡처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타기로 한 비행기가 취소되었으니, 항공사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창구 직원에게 “나는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너네 때문에 파리에서 타기로 되어 있는 한국행 비행기도 못 타게 되었으니, 대책을 내놔라.” 손짓 발짓 해 가며 요청했다. 창구 직원은 어두운 표정으로 컴퓨터를 두드렸다. 잠시 후 표정이 밝아지더니, 당장 핀에어로 가랜다. 무슨 무슨 편을 타고 헬싱키까지 가서 갈아타면 된단다. 그때 시간이, 핀에어 출발 시간 30분 전이었다. “You just saved my life.” 한마디 인사하고, 핀에어 체크인 카운터로 돌진했다.


핀에어 카운터에도 역시나 줄이 길게 있었다. 핀에어는 원월드 소속이라서, 스카이팀 엘리트는 fast track을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급해 죽겠는데,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어디 있나. Fast track에는 한 명만 있었고, 나는 그 뒤에서 기다렸다.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어깨를 으쓱한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내 시간은 타들어가는데, 직원은 느긋하게 거절하니 야속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시 에어프랑스 창구로 돌아갔다. “핀에어는 실패했으니, 다음 솔루션을 내놔라” 하니, 직원은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까와 똑같이 밝은 표정으로, “내일에는 남은 표가 있네요.”라고 한다. 내일이라니. 하루 더 묵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자기가 솔루션을 찾아낸 것이 기뻤던 것일까? 고객에게는 무조건 밝은 표정을 짓도록 훈련된 것일까? 웃는 낯에 더 이상 항의할 수가 없어서, 내일자 표를 받아 들고 발길을 돌렸다. 새 비행기표의 비용은 전액 에어프랑스에서 부담했다. 에어프랑스의 사유로 발생한 일이니까.


그 당시, 우리 팀은 스톡홀름에 아파트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날 묵을 숙소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 늦게 귀국한다는 사실에 엄청 마음이 상했다.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술을 퍼마시고 자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이번에는 별 탈 없이 귀국을 할 수 있었다.


귀국일이 하루 늦어지면서, 택시를 두 번 더 타야만 했다. 첫날 숙소로 돌아갈 때와 다음날 다시 공항으로 갈 때. 이것도 항공사 측의 사유로 발생한 일이므로, 에어프랑스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귀국 후에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택시 영수증을 첨부했다. 며칠 후에 택시비의 70% 비용을 돌려주겠다고 응답이 왔고, 통장에 돈이 입금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정전


2015년 12월 21일, 코펜하겐에서 출장 후 귀국하는 길이었다. 코펜하겐에서도 한국까지 직항이 없기 때문에 경유를 해야 한다. 그날의 일정은, 코펜하겐에서 루프트한자를 타고 14:50 출발, 프랑크푸르트에 16:20 도착.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 10분 대기하다가 18:30에 아시아나를 타고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회사 동료들과 나 포함 세 명이 동행했다.


일찌감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온 탓에, 내 비행기는 아직 전광판에 있지도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라운지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조금 후 드디어 내 비행기가 전광판에 나타났다. 그런데, delayed 란다. 헉. 안 좋은 예감이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오늘 오전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정전이어서 공항이 마비가 되었었단다. 지금은 전기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프랑크푸르트발 비행기들이 전부 연착되었단다. 지금쯤 이미 코펜하겐에 도착해 있어야 할 내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대기시간은 2시간 10분. 만약 내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연착되면,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못 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연말이라서 빈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아찔했다. 하지만 내 비행기가 너무 늦게 오지만 않는다면 예정된 스케줄대로 귀국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내 비행기는,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타고 갈 비행기가 왔다고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 온 승객들 다 내리고, 짐 다 내리고, 연료 채우고, 물자 채우고, 타고 갈 승객들 타고, 짐 싣고 등등, 할 거 다 해야 출발할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이번에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할 거 다 한 비행기는, 16:50에 코펜하겐을 출발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예상 도착시간은 18:20. 아시아나 출발 시간은 18:30. 과연 아시아나로 갈아탈 수 있을 것인가?


택시라면 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조르기라도 할 텐데, 비행기는 그런 거 없이 정해진 속도로 갈 뿐이다. 비행기에서 내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우리는 아시아나가 출발하기 10분쯤 전에 도착할 것이다. 10분 내로 아시아나 게이트까지 가면 간신히 탈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경로를 그려 보았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수십 번 와봤기 때문에 길은 훤했다. 아시아나 게이트까지 이동하는 길은 멀었다. 루프트한자 게이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개 층을 내려간다.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는 지하터널을 300m 정도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개 층을 올라가면 출국심사장이다. 출국심사를 받고 200m 정도를 더 가면 아시아나 게이트이다. 여기까지 10분 만에 주파할 수 있을까? 열심히 뛰면 될 것 같다. 10분이면 부친 짐을 옮겨 싣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짐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까. 아직 희망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이동 경로


드디어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했다. 지상에서 게이트까지 이동하는 10분이 10년처럼 느껴졌다. 게이트에 도착한 시간이 18:20. 아시아나 출발 10분 전.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 셋은 “Excuse me”를 연발하며 사람들 사이로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비상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무빙워크에 서 있을 여유가 없어서 지하터널 300m를 가뿐히 뛰었다. 출국심사장까지 3층도 당연히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출국심사장에 도착한 시간이 아시아나 출발 3분 전. 아직 희망은 있었다.


코펜하겐과 프랑크푸르트는 둘 다 솅겐조약 지역이다. 그래서, 코펜하겐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것은 솅겐조약 지역 내를 이동하는 것이므로 출국심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갈 때는 솅겐조약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출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출국심사장이었다. 평소에는 별로 붐비지 않던 곳인데, 그날따라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을 서 있었다. 아마 오전에 있었던 정전 때문이리라. 줄 길이를 보니 3분은커녕, 30분도 넘게 걸릴 것 같았다. 앞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공항 직원에게 우리 급하다고 사정을 했는데, “그건 너네 사정이고"란다. 쿨한 놈들. 역시 독일인들은 앞뒤가 꽉 막힌 녀석들이다. 아시아나 출발시간은 이제 1분도 안 남았다. 곧 우리를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어떻게 하지?


희망은 별로 없었지만, 줄 서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맨 뒤에 줄을 섰다. 5분쯤 지났을까. 출국심사대 건너편에서 한국어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시아나 직원이 우리를 찾는 것이었다. 엥? 이게 웬일인가? 하늘이 동아줄을 내려주시는가. 알고 보니 우리처럼 선비행기 연착으로 아시아나를 못 타고 있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래서 직원이 그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아시아나 직원은 우리가 출국심사대를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만세!!


20분쯤 기다린 끝에 드디어 출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아시아나 게이트까지 또 뛰었다. 걸음이 느린 나는 맨 마지막에 게이트를 통과했고, 내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비행기 문이 닫혔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0분 늦게 출발했다. 우리를 끝까지 기다려 준 아시아나가 고마웠고, 우리 때문에 늦게 출발하게 된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했다.


도쿄 폭우


2019년 10월 25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금요일이었다. 도쿄에서 출장 후 귀국하는 길이었다. 귀국 편은 나리타공항 19:25 출발 아시아나였다.


프로젝트 때문에 매주 금요일에는 오후 1:30부터 협력업체와 컨퍼런스 콜을 했다. 그 날은 내가 도쿄에 있었으므로, 도쿄역 근처에 있는 협력업체 사무실에 직접 가서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도쿄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를 타면 한번에 쉽게 갈 수 있다.


오후 3:30분쯤 회의가 끝났다. 도쿄역으로 가서 나리타 익스프레스 표를 파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오늘은 폭우 때문에 운행을 안 한단다. 엥? 뭐라고? 이게 웬 날벼락? 지진도 아니고, 폭설도 아니고, 고작 비 좀 온다고 운행을 안해? 비행기도 아니고 기차가? 재난 선진국 일본에서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몇 주 전부터 도쿄 인근에는 태풍과 폭우로 비가 엄청나게 왔었다. 이 날도 21호 태풍 ‘부알로이'가 도쿄 근처를 지나가면서 많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도쿄 근처는 평평한 지형이라서, 폭우가 오면 물이 천천히 빠진다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1026019800073


일본인 직원에게 SOS를 치니까, 스카이라이너는 운행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천만다행이다. 바로 우에노역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현재시간 16:20.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전철 안에서는 한국인 여자 두 명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다. 의도치 않게 대화를 엿들으니, 그들은 버스로 공항에 갈 예정이었는데, 폭우로 버스가 끊겨서, 나처럼 스카이라이너를 타려고 우에노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차,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겠구나.


우에노역에서 내리자마자 케이세이우에노역으로 뛰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표를 사려는 줄이 이미 길게 서 있었다. 줄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사람이 표를 파는 창구의 줄이고 하나는 무인판매 줄이었다. 둘 중 어디가 빠를까 고민하다가 무인판매 줄에 섰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인판매 줄이 더 빨랐다. 10여분 줄을 선 끝에 내 차례가 왔다. 17:40에 출발하는 기차에 자리가 있었다. 현재 시각 17:00. 40분 뒤에 기차에 타면 18:30에는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비행기 시간에는 늦지 않을 것이다.


표를 내고 기차 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승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뭔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안내방송이 반복해서 나왔다. 폭우 때문에 기차가 계속 연착된다는 내용이었다. 헐. 17:40에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세 대의 기차를 보낸 다음에야 내 기차가 오는 것이었다. 내 기차가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는 거 아니야?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아시아나에서 보낸 것이다. 19:25 출발 예정이었던 내 비행기가 20:10 출발로 연기되었단다. 오예~~ 비행기 연착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하늘이 돕고 있구나.



내 기차는 19:00 쯤에야 왔다.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표를 끊었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공항에는 19:50 쯤에 도착할 것이다. 체크인하고 검색대 통과하고 출국심사 통과하고 게이트까지 20분 안에 가면 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루하듯 뛰면 된다. 슬라이딩해서 세이프를 만들면 된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중간쯤 갔을까?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아예 멈춰 선다. 헐. 얘가 왜 이래?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왔다. 폭우 때문에 기차가 잠시 멈췄단다. 출발했으면 끝까지 가는 거지, 중간에 서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얼마나 서 있겠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째깍째깍,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주룩주룩,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공항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건가?


20여분 지났을까? 드디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시 멈춰 섰다. 헐. 아주 사람을 쥐었다 놨다 하는구먼. 불안감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문가에 놓아두었던 트렁크를 가져왔다. 뛸 때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백팩을 트렁크에 넣었다. 검색대 통과 시간을 1초라도 아껴볼 심산으로, 주머니에는 핸드폰, 여권만 넣고 나머지 소지품도 몽땅 트렁크에 넣었다. 조금 후, 다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기차 문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손에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기차는 터미널 2, 3에서 먼저 들른 후에 종착역인 터미널 1로 간다. 아시아나 항공은 터미널 1에 있다. 이윽고 터미널 2, 3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문이 닫히고 기차가 터미널 1로 출발했다. 재빨리 문가로 가서 기다렸다. 터미널 1에 도착하면 내가 맨 처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각 20:15. 비행기의 출발 예정 시간은 20:10. 이미 시간은 지났다. 내 비행기는 벌써 떠났겠지? 혹시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빨리 체크인하는 곳으로 가는 것뿐이다.


드디어 기차가 터미널 1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뛰었다. 기차 승강장은 지하 2층. 아시아나 체크인 카운터는 4층이다. 중간에 만나는 계단은 트렁크를 들쳐 메고 뛰어올랐다. 트렁크는 노트북, 개발장비, 옷가지 등에 백팩까지 20kg가 넘었지만 그런 무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헉헉거리며 아시아나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했다. 그때 시각이 20:30. 여권을 내밀며 물었다. 비행기 아직 있나요?


진짜로 하늘이 도왔을까? 내 비행기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직원 말로는 또 딜레이 되어서 21:10에 출발 예정이란다. 오예~~ 딜레이 만세!!! 연착 만세!!! 공항은 의외로 한산했다. 표 끊고 출국심사까지 일사천리. 이제는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남은 한숨을 돌리며 라운지에서 잠시 여유까지 부리고 탑승했다. 두 시간 뒤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의 날씨는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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