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어른의 얼굴

by 장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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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통해 인간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는 KBS <최고의 이혼>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장현(손석구) 곁에는 꽤 많은 여성이 있다. 그가 부인을 두고도 서로 다른 여성을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최우리는 장현이 만나는 여성 중 한 명, 유지현을 연기한다. 편의상 ‘주변인물’로 분류되는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다 합쳐도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우리는 장현과 그를 걱정하는 듯 힐난하는 석무(차태현)에게 어른의 문장을 뱉으며 시선을 붙든다. “시시한 소리를 하시네요. 머리로는 알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살짝 나른하지만 제 안의 강단이 느껴지는 이성과 감성이 모두 담긴 어른의 목소리.


무대에서 최우리를 보아온 관객이라면 그의 이런 모습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2004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해 14년간 무대에 선 그는 주로 대책 없이 밝은 금발 여성일 때가 많았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과 하이 톤의 보이스는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그는 금발 여성을 향한 작품의 클리셰에 성실히 복무하면서도 인물의 진심에 다가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브렌다와 <리걸리 블론드>의 엘 우즈가 가진 단호한 선택에 힘을 주었고, <톡식히어로>에서는 장애를 넘어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솔직한 여성을 그려냈다. 가발을 벗고서도 <웨딩싱어>의 홀리와 <오 캐롤>의 로이스는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주변을 변화시켰다. 최우리가 그려낸 여성들에게는 자기 안의 결핍을 똑바로 마주하고 웃으며 나아가는 힘이 있었다.

07_최우리_조제호랑이그리고물고기들1_ⓒCJ문화재단.JPG

그럼에도 최우리는 아이돌 가수의 상대역 혹은 더블 캐스팅이 유난히 잦았고, 언제나 제 안의 어떤 것을 극대화하는 캐릭터를 맡아왔다. 배우 개인의 노력이나 매력과는 별개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 마냥 해맑은 캐릭터는 한계로 남았다. 그런 그가 “클래식 연주회를 다니며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감정”(<뉴시스>)을 되찾고, 자신을 지키는 시간들을 겪으며 일상에 닿는 캐릭터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캐릭터의 설정에 맞는 과한 목소리 대신 낮고 차분한 최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린 것은 2017년에 공연된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였다. 그의 조제는 이전의 캐릭터들이 그랬듯 사랑스러웠지만, 현실에 발을 딱 붙인 아주 평범한 연애를 통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감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니 “사람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라는 짧은 문장의 힘은 지난 시간들의 경험 끝에 도출한 최우리만의 대답이기도 했다.


이런 2018년의 최우리는 KBS <천상의 컬렉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뮤지컬배우로서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잠들어 있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최우리는 두 번째 방송에서 조선 후기 서민들을 울고 웃겼던 한글 소설의 목판본으로 만들어진 보석함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작아도, 보석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가 되자.” 자신이 가진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연결해 배우를 넘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각인하는 것. 느리지만 단단하게. 최우리는 그렇게 어른답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