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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초랑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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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Mar 16. 2023

PMS와 강아지

생리주기가 꽤 정확하다. 그런데도 사실 PMS에는 좀 둔했다. 보통 ‘생리전증후군’의 증상으로 이야기되는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이 당기지 않았고 그때라고 특별히 화가 나거나 우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느라 ‘생리전증후군’과 평소의 스트레스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퇴사 후에야 ‘나만의 생리전증후군’을 알게 됐다. 무기력하고 잠이 쏟아지고 손발이 붓고 기름진 음식이 당긴다. 내가 1인 가구라는 걸 가장 저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누나 왜 그래?”

‘생리전증후군‘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 건 최근의 일이다. 산초와의 삶이 1년이 넘었음에도 ‘왜 아직도 힘들 때가 있지?’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함께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내가 느끼는 힘듦이 내가 강아지에게 적응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시그널을 잘 읽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잘 풀어주지 못해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도 그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성이 느껴졌고, 그 기저에는 나의 무기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돌볼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책임감의 한도초과가 나를 괴롭히는구나. 여유가 없고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산초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자꾸만 다그치는구나. 즐거운 마음보다는 ‘왜 그래?’라는 생각을 더 하겠구나. 그리고 대체로 이 무기력은 PMS로부터 오는구나. 그동안 정신적 생리전증후군을 간파하지 못한 건 내가 그때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인간은 왜 이 모양인가,라고 생각하다가도 호르몬 탓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다. 미안함이 사라지진 않지만 이유는 알게 됐으니까. 일단, 생리전증후군 줄이는 영양제나 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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