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자인 프로세스는 규칙이 아닌, 문제를 탐색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2. AI는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습니다.
3. 디자이너의 역할은 화면 제작에서 경험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4. AI가 인터페이스를 생성하는 시대에 디자인 시스템은 인터페이스의 규칙을 정의하는 기반이 됩니다.
5.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가치는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제가 최근에 흥미롭게 본 인터뷰 영상입니다. Figma의 디자인 디렉터를 거쳐 현재 Anthropic(Claude)에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Jenny Wen이 출연한 영상입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죽었다”라는 제목은 다소 도발적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나니, 현재 제품 개발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시 묻는 날카로운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며 수많은 팀과 협업해온 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협업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변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품 디자인은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1. 문제 정의
2. 리서치
3. 와이어프레임
4. UI 디자인
5. 프로토타입
6. 개발 전달(Hand-off)
각 단계는 명확한 산출물을 기준으로 구분됩니다. 많은 조직은 제품 개발의 체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구조를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로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품 개발 환경을 보면 디자인이 항상 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현 과정에서 문제가 다시 정의되기도 하고, 이미 구현된 기능을 기반으로 경험을 다시 설계하기도 합니다. 제품이 빠르게 반복적으로 개선되는 환경에서는 문제 탐색과 해결 과정이 여러 방향으로 오가며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디자인 프로세스는 절대적인 규칙이라기보다 문제를 탐색하고 협업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습니다.
생성형 AI가 UI를 생성하는 능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AI의 발달로 엔지니어들이 7개의 AI 에이전트를 돌리며 순식간에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해보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제 디자이너는 완벽한 목업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변화는 디자인과 개발의 협업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과거에는 완성된 디자인 시안을 기준으로 개발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엔지니어가 먼저 기능을 구현하고 그 위에서 경험을 조율하는 방식도 자연스러운 협업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들이 먼저 구현하도록 내버려 두고(letting them cook),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AI 도구는 제품 개발 속도를 크게 높이지만, 제품 개발의 복잡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즈니스 로직, 기술적 제약, 다양한 사용자 환경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옵션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핵심은 여전히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화면(UI) 제작 작업 보다는 제품 사고(Product Thinking) 중심 즉, 사용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판단하고, 더 나은 제품 경험 설계하고, 빠른 실험과 검증을 통해 실제로 유익한 기능을 도출하는 등 결국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가치는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가에 더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AI가 인터페이스를 생성하는 환경에서는 디자인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보다, 어떤 기준을 기반으로 생성되었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 변화 속에서 디자인 시스템의 역할도 함께 달라지고 있으며,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디자인 시스템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컴포넌트 중심의 자산이었다면, 이제는 인터페이스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참조되는 기준과 구조로 기능합니다. AI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이 없을수록 결과의 품질은 쉽게 흔들립니다. 디자인 시스템은 이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의 방향과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디자인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토큰: 시각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최소 단위의 언어
컴포넌트: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UI의 구조적 단위
UX 패턴: 실제 사용자 경험 흐름을 구성하는 상위 설계 구조
이 요소들은 단순한 재사용 자산이 아니라, 인터페이스 생성 과정에서 적용되는 설계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디자인 시스템은 더 이상 UI 라이브러리에 머무르지 않고, 제품 경험을 일관된 방식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구조적 기반으로 확장됩니다.
이 흐름을 확장하면 디자인 시스템은 점차 하나의 디자인 플랫폼에 가까워집니다. 특정 역할에 한정되지 않고, 아이디어를 가진 누구나 일정한 품질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구조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에서 결과물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찰을 줄이는 것이며, 그 중심에 디자인 시스템이 위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디자이너의 역할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제 디자인의 핵심은 여전히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 있으며, 그 중요도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화면을 직접 제작하는 것보다
어떤 경험을 설계할 것인지
어떤 기준을 만들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제품을 발전시킬 것인지
이러한 판단이 더 중요해집니다.
결국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가치는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제시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AI는 디자인 도구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디자인은 여전히 문제를 정의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다만, 이제 디자이너는 화면을 만드는 메이커(Maker)를 넘어, 제품 경험의 전체 방향을 결정하는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작의 숙련도보다 '판단의 밀도'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