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롯데 말랑카우
- 다녀왔습니다
아직 할머니랑 같이 사는 30대 손자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
- 밥은 먹었냐?
노인네는 손자에게 밥을 물었고, 손자는 먹었노라고 답했다. 실은 일이 바빠 저녁을 거르긴 했지만, 대충 대답했다. 밥 먹었냐는 질문은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에 늘 나오는 별 의미 없는 대답이었으니까.
그런데, 할머니는
- 밥은 먹었냐?
돌아서는 손자에게 같은 걸 또 물었다.
오늘따라 고되었던 회사일에 지친 손자는 그만 울컥 짜증을 낼 뻔 하다가 간신히 참고, 다시 답했다. 밖에서 먹고 들어왔노라고.
일은 이 때 터졌다.
거실을 지나 방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할머니는 결국 같은 질문을 연거푸 또 한 거다.
- 밥은 먹고 왔냐?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써 세 번째. 분명히 또박또박 큰 소리로 답했는데.
대답을 버럭 지를까봐 입을 꾹 닫고 바지를 추켜올리는 손자의 뒷모습에 대고,
- 아가, 할머니가 밥 차려줄꺼나?
손자는 결국,
- 아 먹었다고요! 밥 먹었다잖아요! 대체 몇 번을 물어보세요! 그냥 쉬시라고요!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는 겸연쩍게 말을 흐리며,
- 그려? 난 안 먹은 줄 알고...
말을 흐리며 뒤돌아 뒷방으로 돌아간다.
비닐장판에 질질 끌리는 발바닥이 괜시리 처량했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다.
누구보다 똑똑했고, 누구보다 드세었던 할머니. 공대생 손녀보다 셈이 빨랐고, 헬스장을 다니는 손자보다 팔뚝이 우람했다.
그러나 클리셰. 뻔한 결말.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속절 없이 흐르는 시간에 앞니마저 빠져버리고, 기댈 데 없는 입술은 할머니 입 속으로 무너져 흘렀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상이 변했다. 가끔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쓸쓸한 노인 얼굴. 그게 우리 할머니 모습이 되었다.
그 낯선 얼굴이
손자는 무서웠다.
- 아가, 할머니가 너무 잘 먹었어 야.
10여 년 전, 마트에 못 보던 제품이 하나 새로 나왔었다. 먹어봤더니, 이게 참 오묘했다. 우유향이 찐득한 것이 꼭 유가사탕 같았는데, 식감은 묘하게 보들거렸다. 언뜻 카라멜 같기도 한데, 또 그것처럼 끈적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게 폭신하지는 않은, 한지나 스티로폴 같은 식감이랄까. 생소했다.
하늘색 봉지에 동글거리는 폰트. 이 신상품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지금은 스테디 셀러가 되어버린.
말랑카우였다.
당시엔 딱 들어맞는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냥 말랑거린다고 하기엔 무언가 퍼석거리는 느낌이 또렸했으니까.
그렇지만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할머니 생각이 났다는 사실이다. 이거, 어쩌면 할머니가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한 봉을 샀고,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 머리 맡에 살며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너무 맛있더라고 할머니가 얘기하셨다. 그리곤 물어보셨다. 어디서 샀냐고.
손자는 퉁명스럽게,
- 뭘, 그거, 그냥 슈퍼에서 다 파는 거.
하고 툴툴거렸고,
그 뒤로 할머니 방에 말랑카우가 떨어졌나 몰래 살피며, 때 맞춰 한 두 봉씩 사다 리필해드리게 되었다.
딱 몇 년 정도.
할머니 이가 성할 때까지.
시나브로, 할머니가 맘놓고 드실 수 있는 거라곤 부드러이 부서지는 놈들 뿐이다. 두부며, 비지며, 끽해야 생선찜 따위.
반면 못 드시게 된 놈들은 쎄고 쎘다. 씹을 수록 꼬소하다던 잣과 호두, 느이 엄마가 이건 참 잘한다 하시던 오징어 볶음과 제육볶음, 당신 스스로를 신식 할머니라고 칭하면서 별미로 드시던 피자, 그리고 손자가 때 맞춰 채워넣어드리던 말랑카우까지.
우리 할머니는 늙었다.
치매고,
이도 없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 어쩌면 내가 소리 지른 건 할머니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늙어버린 할머니 모습이 속상해서, 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거듭해도 그 답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슬퍼서.
손주가 사다주는 말랑카우를 드시며, 야 이거 참 맛있다, 하고 웃는 할머니를 이제는 볼 수 없는 까닭에. 그런 할머니를 한 번 껴안아드릴 붙임성도 없는 못난 손자인 탓에.
그런 손자의 끼니가 걱정되어, 힘겹게 몸을 이끌고 굳이 손자를 찾아와 밥 차려줄꺼나를 물어보는 할머니가 괜히 눈물겨워서. 내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까지 아끼시나 싶어서.
애닲아서. 할머니를 향해서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틱틱 거리는 못난 나를 향해서. 할머니를 꺾어버린 무정한 세월을 향해서.
거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던 거라고 변명해본다.
의미 없이 경쾌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마트.
이제 더 이상 할머니가 드시지 못하는
애꿎은 말랑카우를 만지작거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