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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2. 2018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뭐가 되고 싶니

#단상 #에세이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고민하는 것에 대한 단상>


    '넓고 얕게? 좁고 깊게?'


    대학을 졸업하고 현업에 뛰어들게 되면 누구나 고민에 빠지는 문제가 있다.

    특히 순환 보직을 하는 업의 경우는 이런 고민이 깊어지게 되는 데 바로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다.

    기자들은 순환 보직 직종 중에서도 최고의 순환 보직을 하는 직종으로 보통 출입처를 2년에 한 번꼴로 바꾼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기 때문에 다들 의도치 않게 제너럴리스트의 길을 자기도 모르는 새 걷게 된다.

    전문직 중에서도 기자들이 가장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어떤 주제를 가지고도 어느 정도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는 게 가능한 세상 쓸모없는 재주를 갖게 되는 이점도 있긴 하다.

    다른 업들도 케이스가 정도만 다를 뿐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상황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막 뛰어든 초년병 때야 이것저것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알아보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런 고민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10년 차 정도, 그러니까 딱 내 연차쯤 되면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지금처럼 이것저것 조금씩 넓게 알았던 지식을 전 분야에 걸쳐 깊이를 좀 더 더하는 '진짜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 아니면 특정 분야를 진짜 깊게 파고들어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나갈 정도의 전문가 반열에 올라서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지 말이다.

    기자들은 대게 10년 차를 기점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게 된다.

    분야별로 크게 나눠보면 정치부, 법조, 사건팀(검·경), 경제·산업, 국제·외교, 문화·예술, 스포츠 정도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력 부서로 사건팀을 6년 반 정도 했고, 국제부와 외교부 합쳐 2년 정도 했으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분야는 사건 또는 국제·외교 분야다.

    물론 이때까지야 기본기를 닦은 것이니 아예 새로운 분야를 정해도 상관은 없다.

    베이징에 오기 전까지 나의 정체성은 명확했다.

    언론계 표현으로 하면 '사츠마와리'.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사건기자'. 

    나는 경찰에 하도 몸을 푹 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 조직의 중간 관리자 첫 직급인 경위(무궁화 하나) 정도로 여겨질 만큼 경찰 조직과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사건기자는 경찰 사무실에 놀러 가는 것이 일이라 가끔 친한 경찰 사무실에 찾아간다. 이때 막 임용이 돼 솜털이 보송보송한 순경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면 군기가 바짝 든 순경이 내가 하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니까 경찰 선배인 줄 알고 인사를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한참 날아다닐 때는 내 출입처였던 전북경찰청의 경감(무궁화 두 개) 이상 인사들에 대해서는 입직 경로(순경, 간부후보, 경대 출신), 나이, 출신학교, 고향을 좔좔 외우고, 누가 누구와 친한지도 빠삭하게 알았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에는 '준경찰' 대접을 받고 지냈다.

    '아니. 그 정도면 그냥 사건기자로 후벼 파면 되지 않나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건기자는 사실 기자의 기본기를 닦는 출입처로서 의미가 더 크다.

    사건이라는 것이 애매한 게 이걸 전문 분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기사로 다뤄지는 모든 일은 대부분 경찰로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일부 사건은 좀 심각하면 송사로까지 가기도 하지만, 어쨌든 경찰을 거쳐서 가니 결론적으로 대부분 사회 이슈는 사건팀에서 담당하는 셈이다.

    사건기자는 그만큼 광범위 분야를 다루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전문성을 갖기가 어렵다.

    예전만 해도 사건기자를 오래 한 기자들이 사회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이 되기도 하고, 더 인정을 받으면 임원 코스를 밟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회면이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기자의 꽃'이라 불리던 사건기자의 입지가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언론의 사건에 관한 사실 전달 기능이 현대 사회의 정보 공개 범위 확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 등 미디어 환경변화로 인해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에이 그럼 진즉 다른 분야로 가시지 뭐한 거에욧'이라고 나를 힐난할 수도 있지만, 사건기자 시절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자의 모든 기본기를 갈고 닦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해서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 매일 아침 경찰서 강력계를 돌면서 무뚝뚝한 형님들을 뚫어서 친해지고, 정보를 얻는 피상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만들어 가는 지난한 과정이란 기자 생활에 있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이다.

    보통은 그게 싫어서 화려한 출입처를 찾아 떠나게 되고, 반대로 사건기자의 맛을 안 기자는 정권지르기를 매일 연마하는 무술 고수처럼 그 지난한 과정을 하루하루 힘겹게 견디며 이어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처음부터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특정한 분야에 천착한다면 남들보다 빨리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나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둘을 놓고 본다면, 제너럴리스트가 먼저 돼야만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아니. 아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더니 이제는 또 제너럴리스트가 먼저라고요?'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초급 단계의 제너럴리스트와 거의 스페셜리스트에 준하는 진짜 제너럴리스트는 사실 약간 다르다.

    '뭔소리 당가?'하고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 하겠다.

    그러니까. 초급 단계의 제너럴리스트는 대학생으로 치면 예과 과정을 막 마친 뭐든지 될 수 있는 싹을 틔우기 직전의 씨앗이라고 보면 되고, 진짜 제너럴리스트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 있던 시멘트 구조물 위에 심긴 덩굴과 같이 넓지만, 또 어느 정도 깊숙한 지식을 지닌 사람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면 이과적으로 좀 더 설명을 해보겠다. 그러니까 초급 단계 제너럴리스트가 넓이가 400㎡에 깊이가 1m 정도인 내공을 갖고 있다면, 진짜 제너럴리스트는 넓이가 1600㎡에 깊이가 4m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이해가 좀 되는가? 

    다시 스페셜리스트와 진짜 제너럴리스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둘 중 뭐가 됐든 다음 단계로 진화하고 싶다면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인접 분야까지 4∼5시간 정도는 막힘없이 대화나 썰을 풀 수 있는 초급 단계의 제너럴리스트가 먼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경험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초급 단계 제너럴리스트만큼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존재도 없다.

    기자들의 경우는 사건기자를 하면서 현장의 감각, 기사의 기본 틀, 취재 방향에 맞춘 취재 스킬, 다양한 이슈의 넓은 배경 지식 등을 익히는 데 이런 기본기는 어느 분야를 가서든지 든든한 자산이 된다.

    간혹 이 단계가 너무 힘이 들어 슬금슬금 피해 다니거나 발을 살짝만 담갔다가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로 떠나버리는 선후배들을 보는데 그런 경우 십중팔구는 제 몫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스페셜리스트를 표방하지만, 자신의 지식만큼 기사로 아웃풋이 나오지 못하는 황당한 케이스가 엄청 많다.

    그러니까 본인이 어느 직장에서 막 꽃을 피울 시기가 돼간다면, 장차 스페셜리스트가 되든 제너럴리스트가 되든 기본기가 잘 갖춰졌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점검한 뒤에는 부족한 부분은 메우고, 잘하는 부분은 조금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다듬어 전문가로 발전할 가능성을 키워 놓아야 한다.

    이런 것도 갖춰지지도 않았는데 스페셜리스트네 제너럴리스트네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나는 뭐가 되고 싶냐고? 나야 당연히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이다. 

    난 욕심쟁이여서 모든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 못지않은 덕력을 발현할 때까지 끊임없이 정권을 질러 댈 거니깡. 택! 권!

#단상 #제너럴리스트 #스페셜리스트 #기본기부터충실히 #정권지르기시작 #태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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