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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3. 2018

베이징에서 '플라이룸' 박사를 만나다

#단상 #에세이 #초파리 #김우재 #플라이룸


<초파리 마스터를 만난 것에 대한 단상>

    기자들은 많은 사람을 만난다.

    기자들은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 대화 내용, 말소리의 톤, 제스처, 눈빛,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음을 통해 그 사람을 꿰뚫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 데 이 사람들은 묘하다.

    어떤 면이 묘하냐면 약간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강한 자기 확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식지 않은 열정, 미래에 대한 청사진, 바쁜 일상 중에서도 느껴지는 여유,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성찰 등은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의 첫인상은 그냥 본 투 비 아재였다. 언제 산 건지도 모르겠는 후줄구레한 빨간 점퍼를 걸치고 택시 앞에 서 있던 그를 봤을 때 나는 바로 알아챘다.

    '진짜구나. 이 사람'

    때로는 말쑥이 차려입은 것보다 추레한 모습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격의 없는 대화 속에 서로에 대한 탐색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감정의 공명 속에 대화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나와는 정반대 분야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글쓰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우리는 금세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호형호제'

    형이라 부르고 아우라 부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길게 가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했다.

    과거와 현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하고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논하는 것은 누구하고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 이야기, 친구 이야기, 꿈 이야기로 가득 찬 술자리는 허술한 안주에도 풍요롭기 그지없었다.

    내가 그에게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한 2~3년 전쯤이었다.

    저어어기 캐나다 그것도 어딘지도 모를 오타와에 있는 그의 연구실 이야기에 푹 빠져서 매일 그의 담벼락을 들락 달락 했다.

    그가 매일 올리는 초파리가 교미할 때 뭐가 어떻다는 둥, 뭐를 발견했다며 논문에 쓸 참고 자료를 만들었다는 둥 나 같은 문송이는 알 수도 없는 소리를 잔뜩 써놓았지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치열함과 따뜻함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주제는 그의 연구실 학생들의 이야기였다. 그가 자주 자기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권위 없는 교수'라는 말과 다 기울어져 가는 연구실이 빚어내는 에피소드는 그냥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그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도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격의 없음과 시원시원함, 그리고 배려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 오는 그 짜릿함은 매일 글을 보고, 사람을 만나는 기자의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아니 재미라기보다는 차라리 안도감이라 표현해야 맞겠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았던 그의 삶에도 부침과 고뇌, 불안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과 긍정적인 기운으로 꿰매진 그의 삶은 하나의 작품과 같았다. 

    역시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 보면 삶은 언제나 비극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일가를 이룬 사람은 가까이서 본 비극도 희극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을 부리는 뮤턴트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그를 통해 깨달았다.

    그의 실험실 이야기가 좋아서 그의 담벼락을 기웃거렸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의 칼럼이다. 국내 유력 일간지에 그것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진보지에 햇수로 6년 가까이 글을 써오고 있는 그는 '초파리 유전학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글을 맛깔나게 잘 쓴다.

    그리고 무협소설에 나오는 결기와 분기, 의로움의 감정이 글에서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어찌 보면 교수라는 직에 걸맞지 않게 못되지 않고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그 기운이 얼마나 차고 넘치면 '신필' 김용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협'(俠)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겉면을 조금만 들춰내 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그의 모습이 한 눈 가득 들어온다.

    외국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해외에서 '한국 사람' 그러니까 '교민'이란 존재들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한 존재들이다. 옆에 있으면 괜한 구설에 휘말리거나 배신이나 갈등으로 상처를 입기에 십상이지만, 또 없으면 굉장히 그립고, 아련한 존재다.

    저 먼 곳 이름마저 낯선 오타와에서 그것도 이방인 교수로서 가족들과 연구실 식구들을 건사하는 가장으로 사는 그의 삶의 무게는 이야기를 따로 듣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은 육중함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묵직했다.

    치열함이 쌓이고 쌓이면, 허탈한 웃음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포기한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초탈한 것인데 그 선을 넘어온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그 동질감이란 것은 서로 말로 꺼내놓지 않아도 이심전심, 염화미소 그 자체다.

    그를 만나는 이틀 간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그런 삶을 사는 와중에도 40대 중반을 넘은 그가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비주류가 된 초파리 연구'라는 말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아니 읽을 때마다 아니 비주류가 된 초파리 연구에 왜 저렇게 매달려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직접 그를 만나고 보니 그는 '비주류', '인기 없는', '포유류 것들에 밀린'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었지만, 그의 연구분야에 대한 애정과 프라이드가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강했다. 아니 미쳐있다고 해야 맞겠다.

    저러니까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자리를 잡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가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실험실에서만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 미숙한 모습도 있지만, 그의 '협'의 기운은 주변에 사람을 모이게 하고 그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는 요즘 꿈이 있는 사람을 매일 마주하는 행운을 지나고 있다.

    SNS에서, 현실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그들을 정면응시하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을 그리고 꿈꾸든 언젠가 어디선가는 다시 만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꿈이 허황되든, 너무 현실적이든, 남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든 꿈은 간직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거니까.

    오타와에서, 서울에서, 도쿄에서, 베이징에서 '드림캐처'들의 손과 발은 지금도 블랙 설화 새우처럼 고요하지만 바쁘게 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초파리가 교미를 위해 상대를 태핑하고 다니는 것처럼.

#단상 #초파리 #드림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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