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보이차와 대만, 대륙 그리고 한국의 보이차>-1
최근 마친 지유명차 스터디 모임과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라는 책을 완독하고 든 생각은 용어 정의의 필요성이다.
우리는 중국차의 대명사로 흔히 '보이차'를 떠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 토픽 뉴스에 가끔 'ㅇ억', 'ㅇㅇ억' 경매 최고가 경신이라는 헤드라인을 봤거나 중국 좀 다닌다는 지인이 선물해 준 보이차를 마시며 짝퉁 보이차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짧은 경험으로 우리가 '보이차를 안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대상에 대해 '안다'라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삶에서 우리는 보이차뿐 아니라 많은 것들에 대해 '알고' 지낸다.
중국에서 차를 마시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차는 역시 보이차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이차.
그러거나 말거나 제대로 된 보이차는 참 좋은 맛을 낸다. 물론 건강에도 좋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유명차를 다니며 내가 느꼈던 바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보이차와 한국에서 인식되는 보이차, 지유명차에서 바라보는 보이차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홍콩, 대만, 중국, 한국에서 보는 보이차가 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보이차를 그저 '보이차'라고 퉁쳐서 부르고, 각자의 인식을 바탕으로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교류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보이차 마니아가 생각하는 보이차는 '홍콩의 보이차'에 가깝다.
요약해보면,
'진기가 오래된 보이차를 높이 쳐주고, 오래된 노차에서 나는 진향과 이를 카피하면서 발전한 고품질의 숙차를 즐긴다.'
나 역시 그런 기준 하에 보이차를 품평해왔던 것 같다.
물론 몸이 유약한 내 경우 숙차를 주로 즐겼지만, 누가 오래된 노생차를 준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가 마셔보려고 노력했다.
이유는 '좋고 귀한 차'라고 인식해서다.
홍콩의 보이차는 위에서 언급한 이런 특성이 있다.
호급차, 홍인, 녹인 등등 이런 용어도 노차에 대한 선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짧은 공부의 결과 이런 홍콩 보이차의 기원은 그리 고급스럽지도, 엘레강스하지도 않다.
홍콩에서 보이차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애용됐다.
대략 1850년대부터 윈난과 광둥에서 홍콩으로 보이차가 수출됐다고 하니 150년도 더 넘은 셈이다.
당시 홍콩에서 보이차는 한국 함바집에서 내놓는 보리차 수준의 차였다.
본토에서 몰려든 노동자들과 현지인들이 차루(茶樓)에서 아침으로 딤섬을 먹을 때 공짜로 내주는 차였다.
그래서 홍콩으로 간 보이차들은 8~9등급의 거친 잎으로 만들었다.
어린싹이나 1~2엽으로 만든 차들은 본토에서 소비됐고, 차의 블랙홀이라고 불렸던 티베트 역시 7~8등급 잎으로 만든 차를 더 선호했다.
차가 없으면 고원지대에서 영양 불균형과 병치레를 해야 했던 티베트인들에게 보이차는 말 그대로 우리의 쌀과 같은 생필품이었다.
잠시 티베트 이야기를 하면 티베트의 막강한 시장이 윈난의 보이차를 발달시키기고 명맥을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로 올라가면 티베트는 윈난 지역의 대리국과 한족이 자리한 중원에 전투력의 바로미터인 말을 공급하고, 필수품인 차를 수입했다. 그 유명한 차마교역이 바로 이거다.
현대로 따지자면 군수 공장을 돌려 식량을 산 셈이다. 그래서 티베트의 보이차는 버섯 모양을 한 긴차였고, 좋은 잎을 사용하는 고급 차일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보이차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홍콩 보이차의 태생은 이렇듯 흙수저였다.
그런 홍콩이 시간이 지나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며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다.
공사판에서 공구리를 치던 노동자도 삐까뻔쩍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불어났음에도 고생하던 시절 마시던 보이차의 향수를 버릴 수 없었다.
또 차의 특성 중 하나인 '인 박힘'도 홍콩인의 보이차에 대한 수요를 지속하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가다판에서 마시던 보이차 정도의 공짜차는 마시기 싫어졌다.
홍콩 자본은 보이차 원료인 쇄청모차가 나는 윈난으로 몰려갔고, 본인 입맛에 맞는 차를 주문 제작하기에 이른다.
또 한편으로 홍콩에 들어온 보이차를 창고에 넣어 본인들 입맛에 맞게 잘 숙성을 시켰다.
이전에는 보이차가 들어오면 그해에 죄다 소진을 시켰다. 비싼 홍콩의 부동산값 때문에 공짜차인 보이차를 보관할 창고를 운영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홍콩 지하 창고에서 습기를 먹고, 곰팡이를 피운 보이차는 지상 창고로 다시 올려져 통풍이 잘되고 건조한 창고에서 곰팡이가 사라질 때까지 잘 익혀졌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묵힌 차들이 시장에 나왔다.
보이차 좀 마신다는 사람들의 입맛 스탠더드는 이렇게 홍콩 보이차의 역사와 결을 같이 하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