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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03. 2021

홍콩의 보이차와 대만, 대륙 그리고 한국의 보이차-2

홍콩의 보이차와 대만, 대륙 그리고 한국의 보이차-2


(1편에 이어)


    대만의 보이차는 어땠나.

    국민당 편에서 국공내전에 패배해 대만으로 물러난 중국인들은 1980년대가 되면서 중국 고향 집을 방문할  있게 됐다.

    당시만 해도 대만에서 직항으로 본토로 가는 항공편이 없었다.

    대만 교포들은 홍콩을 경유해 중국 고향 집을 찾았다.(한국도 수교 전 이런 루트를 거쳐야 했다)

    대만 사람들은 이 시기 홍콩에서 보이차를 맛보게 된다.

    알다시피 대만은 원래 녹차와 우롱차가 유명하다.

    대만 사람들은 보이차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윈난을 찾아 보이차를 주문 제작했다.

    또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계급에 밀려난 노블레스 집단답게 보이차에 고급문화를 덧씌웠다. 여기에 일본의 영향도 첨가됐다.

    그렇게 고급진 대만 보이차가 탄생했다.

    대만 사람의 선구안과 문화적 요소를 보이차에 불어넣은 노력은 보이차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영향은 중국 본토인의 눈을 보이차로 향하게 하며 헬게이트를 열게 된다.


    중국의 보이차는 항일전쟁, 국공내전, 신중국 건국,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굴곡의 근현대사를 지나는 동안 중국에서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보이차를 마시는 차로 보기보다는 나라를 부강하게 해 줄 자원으로 봤다.

    물론 중국 윈난에서도 보이차를 마셨지만, 홍콩과 대만 사람들이 즐기는 후발효된 보이차는 아니었다.

    이들은 집 마당에 심은 차나무에서 잎을 즉석에서 따서 제다해 끓인 보이차를 마셨다.

    생차 그리고 햇차를 즐겼다. 현대 사회에서 선호하는 보이차와는 거리가 있다.


    중국인이 보이차를 즐기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홍콩의 지속적인 수요와 대만의 보이차 러시, 국유화됐던 차장의 민영화 이후에야 보이차는 중국인들의 혀에 닿았다.

    대만의 보이차 열풍에 힘입어 1995년 대만 보이차 애호가 등시해가 쓴 '보이차'와 같은 해 운남농업대 주홍걸 교수가 쓴 '운남보이차'가 출판된 뒤에야 중국에 보이차 붐이 일었다.

    대략 잡아도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개혁개방의 바람을 탄 중국의 자본력은 대단했다.

    보이차가 유명세를 탄지 10년여 만인 2007년에는 천정부지 치솟은 보이차 값이 폭락하는 네덜란드 튤립 투기 못지않은 '보이차 1차 쇼크'가 발생했다.

    대륙에서 분 코인 열풍 같은 보이차 열풍은 홍콩과 대만에 있는 보이차 마니아들에겐 악재였다.

    중국에서 보이차는 투기 수단이자 뇌물용 아이템이 됐다.

    흔히 보이차계를 조소할 때 쓰는 '누구도 마시지 못하는 차'가 됐다.

    금칠을 두르고 고귀한 몸이 된 보이차는 홍콩의 흙수저 차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된 거다.

    

    한국의 보이차는 어떨까.

    한국의 보이차는 여러 모습이 섞여 있다.

    보이차를 굉장히 초기부터 마셨던 엄근진 유생형 보이차 마니아부터 건강을 위해 마시는 웰빙형 마니아, 다이어트를 위해 마시는 다이어터형 마니아 등등 다채롭다.

    초기부터 보이차를 마셨던 사람들은 '생차 제일주의'를 고수하며, 숙차에 대해 조선 성리학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숙차는 가짜 보이차'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진기가 오래된 차가 아니면 상종도 못 할 차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뭐가 됐든 기본 베이스는 홍콩의 보이차에 맞춰져 있다.

    또 한편으로 보이차 생활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중국의 보이차 시장 교란을 목이 쉬어라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보이차의 고장인 중국에서 보면 황당한 일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도 보이차 마니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차 업계에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차에 대한 수요가 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내 생각도 역시 그렇다.

    사람이 먹고살만해지고, 혹독한 현실에 내몰릴수록 신체와 정신 능력을 부스팅 해주는 음료들보다 심신의 안정을 찾아주는 음료를 찾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보이차는 '웰빙형'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배경 아래 '보이차'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자.

    홍콩에서의 보이차와 대만에서의 보이차, 중국에서의 보이차, 한국에서의 보이차.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바라보는 지점도 다르다.

    홍콩과 대만인의 입장에서 보이차는 이제 중국의 자본에 휘둘리는 투기 수단이 됐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보이차를 이제 다시 중국의 것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상품 보이차에 대한 생각도 후발효를 중시하는 홍콩과 보이차 문화를 즐기는 대만, 찻잎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중국이 다를 수 있다.

    중국은 쇄청모차의 품질을 중시할 테고, 홍콩은 창고에서 잘 묵히는 것을 중시할 것이다.


    이 글은 보이차에 대한 나의 여러 스케치 중 하나다.

    정교하지도, 논거가 확실하지도 않다. 다만 느낌을 적은 글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점은 우리가 '보이차'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수용할 때 나와 상대가 어떻게 보이차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이차와 저들이 생각하는 보이차는 다를 수 있다.

    이런 논의는 사실 차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이런 감상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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