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했어, 엄마

아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by 베로

지안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사실 이것도 내 욕심이고, 내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을 덜고 싶어 이러는 것이라는 걸 안다.


온전히 너의 생각과 마음을 듣고, 함께 느끼고, 얘기할 수 있었던 지용이와는 달리, 둘째인 지안이와는 그게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지안이는 태어나자마자 항상 앞서 서있는 오빠가 최고이고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지안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너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숨겨진 원석과도 같은 귀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를 갖고 너를 위해 마련했다는 시간은, 결국 또 엄마의 시간이 되었다. 너를 위한 시간을 의식하여 만들려는 엄마의 노력 자체가,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너를 또 엄마인 나의 기대에 맞추려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았다.




항상 오빠가 하는 것만을 쫓고, 오빠가 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지안이에게, 오빠가 아닌 지안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함께 놀고 싶었다.


무엇을 하며 놀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어제 지안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 온 종이 장난감을 보여주며 좋아하길래, 집에 가서 더 만들어보며 좋겠다 싶었다. 지안이도 재미있겠다며 좋아하였다.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동물이나 캐릭터 그림을 그리고, 빨대와 실을 붙이기로 하였다. 지용이는 지안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려주기도 하고, 지안이는 직접 귀여운 도마뱀도 그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큰둥해진 지안이는, 부엌 서랍에서 빨대 다섯 개를 들고 오더니,


"이게 모두 필요해 엄마, 나 싹둑싹둑 잘라야 해."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지안이의 싫증난 눈빛과, 함께 하고 있던 것들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감지했던 나는, 되려 지안이에게 서운해지고 화가 났다.


"무슨 빨대가 다섯 개나 필요해, 두 개만 써!"


라고 말하고선 남은 빨대를 넣고 돌아섰다.

그렇게 만들던 종이 장난감은 지용이와 내가 마무리를 하였고, 그렇게 저녁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알다가도 모르겠는 지안이의 마음이 서운했고, 매일매일 엄마인 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힘들었다. 남편과 얘기하다가, 불현듯 그 빨대 다섯 개가 생각났다.


그렇다, 지용이가 다섯 살 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함께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지용이가 빨대 다섯 개를 들고 와 자르며 놀고 싶어 했다면,


"오 좋아! 열심히 잘라서 무얼 만들 거야?"

"우리 줄무늬 사탕이라 할까? 스파게티 할까? 맛있겠다~"


라며, 우리가 만든 또 다른 새로운 놀이에 재미있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여유, 그리고 아이의 말과 행동을 향한 온전한 관심과 수용 대신, 이미 내 머릿속에는 엄마인 나의 계획과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서운함을 느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지안이였다.


예전과 달라진 나의 모습, 그리고 그 탓에 엄마의 온전한 관심과 수용을 받지 못했다는 지안이의 생각에 목이 메어왔다.


빨대 다섯 개가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지안이가 '지금' 하고 싶었던 건, 어린이집에서 만들었던 종이 장난감을 다시 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빨대를 갖고 새로운 놀이를 하고 싶었던 거다. 평소 가위로 무엇인가를 오리기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날도 줄무늬가 그려져 있는 예쁜 종이 빨대를 오리며 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시큰둥한 너의 반응과 예상치 못한 행동에, 또 지레 실망하고 겁을 먹고선 제 풀에 화가 났다. 사실 나의 잘못이었지만, 나름 애를 써온 내 잘못이 아니었으면 했다.




핑계를 댈 수 있다면, 지안이와 나 사이에도 온전한 너와 나만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엄마인 내가 그 누구도 눈에 들이지 않고 비교하지 않은 채, 너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둘째의 숙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그게 너무 속상했다. 다른 사람, 다른 것들을 함께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첫째인 지용이가 어렸을 때처럼 모든 걸 똑같이 해주지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


그리고 너만의 것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서 내가 찾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의 계획이 아닌 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빨대 다섯 개를 갖고 놀고 싶었던 네가 보이지가 않았던 거다.


너의 그 맑고 티 없는 눈으로,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아닌, 네 마음속을 기울여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너의 것, 너만의 것,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기뻐할 때, 순수하게 함께 격려하고 나누고 기뻐하고 싶다.


엄마는 지금보다 더 마음을 덜어내고 너를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 네가 네 자신으로서 표현해내는 모든 것을, 구김 없이 순수하게 받아내며, 네가 아닌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너를 눈에 담도록 할 것이다. 아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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