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치과 방문기
어쩌다 보니 병원 침대에 두 아이가 나란히 누워있다.
젤리 좋아하는 엄마 덕에 매일 젤리 한 봉지씩 아무 걱정 없이 먹어왔던 탓인지, 여느 엄마들처럼 밥 먹고 간식 먹고 양치질하자며 칫솔 들고 쫓아다니질 않아서 인지, 요즘 엄마들은 다 해 준다는 치실을 해주지 않아서인지.
결국 두 아이의 이에 충치가 생겼다.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엄마는 고작 젤리 한 봉지를 못 먹게 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달콤한 꿈나라를 방해하기 싫어서 사실은 반드시 했어야 했던 양치질을 쉽게도 넘겼었다.
두 아이의 이름을 대고 충치로 진료 예약하는 것도 민망했는데, 살펴보니 설상가상 둘 다 마취주사를 맞고 충치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곱 살 첫째는 신경치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이가 아니라고 두 아이의 치아 관리도 제대로 못 해준 엄마라는 생각에, 부끄럽고 미안하고 창피했다. 양쪽 침대에 한 자리씩 누운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몇 번의 사과를 했는지 모른다.
치과 치료란 그 특유의 약품 냄새부터 소리, 뭐 통증은 말할 것도 없이 어른들에게도 두려운 시련이다.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아플까 싶어, 아이들 머리맡에서 치료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겁을 먹어 치료가 어려워지면 달래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치과에 온 다섯 살 딸아이 먼저 치료를 시작했다.
어금니 쪽의 이는 4학년 때까지 오래 써야 하는 이라 충치를 걷어내고 메꾸든지 해야겠다 하셨다. 그러더니 마취주사로 보이는 가늘고 구부러진 바늘을 둘째 아이 입속으로 넣으셨다.
'지안이는 처음인데. 큰일이다. 너무 놀라 하면 어떡하지.'
라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주사약이 다 들어가도록 아이가 끙 소리 하나 없이 가만히 있는 거다. 혹시 잠들었나 싶을 정도로 소리도 미동도 없는 거다.
그런데.
질끈 감은 아이의 두 눈 뒤로,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침대 모서리를 꽈악 움켜쥔 딸아이의 주먹이 보였다. 아픈 것 같았다. 그리고 두렵고 긴장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는 침묵하며 참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낯선 병원에 오자마자 반기는 건, 흰 가운의 낯선 의사 선생님, 특유의 약품 냄새와 각종 기구 소리,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자동침대, 뾰족한 바늘,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통증이었으니 얼마나 긴장되고 아프고 무서웠을까. 그런데 고작 다섯 살 밖에 안 된 아이는, 그 작은 신음 소리 하나도 내지 않고 그 두려움과 통증을 안으로 안으로 삭히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서가 아니라, 어째서 이토록 참고 있는지가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지레 마음 한구석이 콕콕 찔려왔다.
일곱 살 오빠가 하는 것마다 시샘하며 더 잘하고 싶어 하던 아이, 오빠보다 '잘 해내야'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던 아이, 그래서 취향에 맞지도 않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오빠의 동물도감을 가져와 읽어달라 했던 아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아이의 침묵과 움켜쥔 주먹도, 이토록 아프고 힘든 걸 얌전히 참아내면 엄마에게든 선생님에게든지 '좋은'아이, '착한'아이가 될 수 있다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섯 살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 하나, 미동도 없이 치료가 끝난 후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하셨다.
"와 너 진짜 대단하다. 지안이가 다섯 살 중엔 최고다 최고야. 아니 어떻게 소리 한 번도 안 내니."
선생님들의 칭찬에도, 그 칭찬에 멋쩍게 웃어 보이는 네 얼굴을 봐도, 마냥 엄마가 편하게만 웃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한 사색도 잠시, 아직 일곱 살 첫째가 남아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울먹이며, 두려움과 긴장감에 의사 선생님께 마구마구 반말로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를 보니.
울고 발을 굴러야 하는 녀석은 이 녀석이 아니었는데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결국 홀로 버티게 했던 주먹은 다섯 살 동생의 손이 되었고, 오냐오냐 괜찮다 달래며 잡아준 손은 일곱 살 오빠의 손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지안이에게 말했다.
"지안아, 오늘 한 거 아프기도 했었을 텐데, 어떻게 울지도 않고 참았어?"
"나 하나도 안 아팠는데!"
"아, 정말? 사실 엄마는 예전에 많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었거든. 그런데 지안이는 울지도 않고 소리도 안 내고 너무 잘하는 거야. 그럼 정말 하나도 안 아팠어? 아니면 아프긴 했는데... 지안이가 참아야겠다 생각이 들었어?"
"음.... 그게.... 조금 아프긴 했는데, 난 참을 수 있어요! 진짜 안 아팠어요!"
"응. 그래... 우리 지안이 정말 대단해! 그런데 앞으로는 많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해도 돼. 무조건 참는다고 좋은 게 아니야. 너무 많이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
"응"
아이와의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나는 아이의 조그맣게 움켜쥔 주먹이 자꾸 생각이 났다.
속상하고 무서운 것, 아픈 것들을 또 숨기면 어떡하나, 참기만 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내 몸과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게 먼저인 고작 다섯 살인 아이이다. 아직은 그래도 될 나이려니 하며, 얼마든지 눈물을 닦아주고 달래주며 핑계 김에 선물 하나도 사줄 수 있었는데.
평소 아이에게 '이젠 지안이가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라며 아이의 마음을 돌려주던 말들이 너무했나 싶었다. 애교 하나 없는 잔소리 많은 엄마여서 그랬나 싶고, 내년에 학교 가는 첫째를 챙긴다고 그 아이를 홀로 버텨내게 했나 싶어 미안하고 또 미안해진 순간이었다.
나와 동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첫째가 둘째에게 묻는다.
"지안아, 너 진짜 하나도 안 아팠어? 이야, 진짜 대단하다. 너 어떻게 안 울었지? 우아우아......"
오빠의 그 말에 으쓱해진 둘째의 표정을 보니, 어쩌면 나의 위로보다도 너에게만큼은 항상 일등인 최고 멋진 오빠의 인정이 네겐 최고의 보상이 된 듯 보였다.
우리 딸,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만 덜 씩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