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책방지기의 서평 #8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30년전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 되었던 나는 하루키의 초기 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인데, 간결하고 압축적인 문체와 뭔가 허무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슬픈 외국어>, <먼 북소리>,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과 같은 하루키의 초기 에세이는 생활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면모를 보여주는데, 이 점이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30년전만 하더라도 작가는 뭔가 사회적 이슈를 파고드는 진지함(?)과 스케일이 있어야한다는 사회적 편견이 팽배해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대한 반항감에 더욱 하루키를 좋아했었던 것 같다.
그러던 하루키가 좀 더 역사에, 사회 문제에 천작하며, 진지함(?)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태엽감는 새> 였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중 일어난 아내의 실종과 기묘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일본이 1, 2차 대전 당시 치뤘던 전쟁들을 통해 폭력과 전쟁 트라우마를 직면하게 된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바로 그 전쟁에 참여해서 폭력을 목격하고, 저지르고 그로 인해 내면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하루키의 아버지와 하루키와의 관계에 대한 에세이다. 하루키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전쟁으로 얼룩졌던 자신의 젊은 날을 보상받고자 하지만, 전후 고도 경제 성장기에 태어난 하루키는 음악과 문학을 통해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고, 이들은 충돌하여 20년 이상 한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이 둘은 화해하게 되고, 아버지의 사후 아버지의 젊은 날의 흔적을 쫓던 하루키는 전쟁도, 폭력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모든 역사 속에서 '나라는 인간이 나라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짧지만 하루키의 지난 날의 여정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던 에세이였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무리카미 하루키
번역: 김난주
출판: 비채
발행: 2020. 10.16
카테고리: 외국에세이
쪽수: 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