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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May 30. 2021

고요한 매일매일, 차(茶)

<차의 기분 / 김인>을 읽으며, 마시고 쓰다

요즘 마음이 참 시끌벅적하다.

이럴 땐 물을 끓이고, 차(茶)를 고른다. 잔을 꺼내 차를 담고 뜨거운 물을 담는다. 그리고. 가만히 우러나는 차를 은근히 바라본다.

따뜻한 차 한잔을 의지해 책상에 앉는다. 고요히 차를 마시고, 글을 쓴다.

다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찻잔에 담긴 찻잎처럼

차를 의지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요즘이다.

마시려고 쓴다. 쓰고 마시다 보면 곧 살만해진다.


'차에 가까운 정서'.

커피, 다른 음료가 주는 것과는 다른 차분하고 고요한 차의 정서를 좋아한다. 차를 마시면 한결 몸과 마음도 고요해진다.


"차는 심심해서 마시기도 한다. 심심함은 물기 없는 외로움이다. 차를 마시면 심심함에 물기가 배면서 외로워진다. "

팍팍, 하던 마음이 물기를 머금자 금세 촉촉해, 진다. 가볍고 경솔하던 마음은 이내 묵직하고 깊어진다.


"차향을 맡고, 차를 마시며, 찻잔의 기원이나 양식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난데없는 허튼짓이, 불가피해 보이던 사태의 맥을 툭툭 끊는다."

아이 문제로 마음은 종일 분주했다. 차분히 차를 마시고 차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찾아 읽고, 꺼내 적었다. 두 가지 차를 번갈아 마시며 맛과 향을 음미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포트에 물을 열심히 끓이고 부지런히 날랐다. 덕분에 분주하던 생각의 맥이 툭 끊어졌다. 다시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어떤 문제로 힘겹고 분주할 때는 차를 마셔야 할 때임을 실감한다.


"차는 뱃속을 채우려고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비우려고 마신다. 채우면 빈다."  마음이 버거울 때가 있다. 뭔가로 가득 찬 머릿속, 이내 불안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불안을 잠재울 때는 차 만한 것이 없다. 찻잔을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을 점점 비워진다. 채운만큼 비워지는 것이 차다.



"시간만큼 다르게 마신다."

같은 하루라도 시간에 따라 마음은 여러 날이다. 아침의 차는 차분함이다. 하루의 시작을 차분함으로 채운다. 그러면 평온하고 차분한 날이 된다. 점심에 마시는 차는 화창한 날의 산책이다. 사부작사부작 낮고 평탄한, 흙과 풀내음 가득한 길을 걷듯이 차를 마신다. 그날은 가뿐하고 화창한 날이 된다.

오후 4시에 마시는 차는 보낸 지난 시간만큼의 여유, 아직 남아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 공존다. 오늘 하루는 덕분에 충분해진다. 해 질 녘 어스름한 거실에서 마시는 차는 하루를 향한 기도다. 무사히 보낸 오늘에 대한 감사, 무사할 내일을 위한 간절한 기도 같은 것.


"터무니없이 한가하게, 찻잔을 들어서 훗훗 불 것, " 내가 사랑하는 구절이다. 차는 모름지기 터무니없이 마시는 차가 최고다. 시끌한 머릿속, 마음속, 할 일, 다가올 일 모두 내려놓고 터무니없이 한가하게 마시는 오후의 차 한잔. 삶이 터무니없는 기쁨으로 차오른다. 아이를 보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털썩 내 자리에 앉아 따뜻하게 우려내 마시는 차 한잔.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어떤 말, 따뜻한 어떤 마음이 된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모두가 고요한 밤의 시간. 책, 펜, 노트, 노트북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와 따뜻한 차를 쪼르륵 찻잔에 따른다.  바로 이 시간, 이 상태. 나에게는 지나치게 좋은 시간이자 상태이다. 조금은 아쉽고 모자란 하루를 이 시간을 채우고 나면 빈틈없이 완벽해진다.

아이가 잠들 시각,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동화책을 읽는다. 숙제, 과제로 바쁜 아이가 잠드는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그만큼 나의 피로도는 높아진다. 침대 맡에서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그만 읽자" "더 읽어줘 " " 짧은 동화책 읽자" "난 이 책 읽고 싶어~"

대략 이런 대화로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다 아이는 잠든다. 사실 다정하지 못한 엄마의 말들, 이 작은 전쟁은 아이의 취침 시간이 늦어질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들지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 못마땅함에서 비롯된 것.  하지만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다 아이 옆에 누운 날은 확연히 몸의 온도가 다르다.

딱 36.5도씨. 엄마의 온도. 차가 싸늘한 몸의 온도를 높여 놨다. 아이는 나의 체온을 느끼며 금세 스르륵 잠이 든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신다. 그리고 글을 쓴다.

" 주변은 친숙한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침묵이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돌아갈 침묵, 나는 차를 마시며, 그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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