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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Dec 13. 2022

후각의 박물관

푸른 향

내 작은 기억 상자에 남아 있는 것들은

냄새로 기록된 것들이 많다.


살면서 어떤 향기가 순간적으로 스쳐가면 굳게 닫힌 상자의 문이 자연스레 열린다.

운동장 흙냄새, 등에 업혀 맡았던 외할머니의 살갗 냄새, 늦은 오후 무렵 마을에

퍼지는 장작 타는 냄새, 몰래 떠난 바닷가에서 맡은 물비린내, 동네 베이커리 빵 냄새, 단짝 친구 옷에서 묻어난 세제 냄새. 오래된 종이 냄새.


오랜 시간 상자에 머물던 냄새는 지뢰처럼 어떤 상황이 되면 느닷없이 폭발한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수많은 영상들이 덤불 속에서 튀어 오른다."는 다이앤 애커먼의 말처럼 상자 속 기억들은 튀어 오르듯 냄새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전 박물관 공예실에서도 그랬다.

그 냄새는 분명 색으로 표현하자만 파란 것이었다.

비 갠 뒤의 먼 하늘이 푸른빛으로 물든 듯 은은하게 피어오른 푸른 향을 낮은 의자에 앉아 흠뻑 들이마셨다.

그렇게 그날의 박물관은 푸른 향으로 기억된 작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고, 그날의 나도 푸르고 푸르게 물들었다.


안도했고, 희망했다.

어떤 냄새, 기억, 이야기 덕분이다.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 그러나 그뿐. 그것은 신비로운 거리를 유지한다. 냄새는 수수께끼이고, 이름 없는 권력이며, 성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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