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을 중심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저출생 고령화와 노인 혐오가 심화되는 요즘, 더욱 실감이 되는 말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고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럼에도 혹자들은 복지 부담의 원흉으로 노인을 지목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선거권을 뺏어야 한다거나 노인이 되면 빨리 죽어야 한다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망각한 발언도 인터넷 상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플랜 75>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낸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 <플랜 75> 줄거리
영화 <플랜 75>는 노년층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심화된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청년층의 복지 부담이 심각한 정도로 커졌고, 비용 부담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에 일본 정부는 노인 인구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75세가 된 국민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를 시행한다. 신청자에게는 '10만 엔의 준비금, 장례 서비스, 전담 상담사를 통한 심리 상담' 등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플랜 75'의 핵심은 노년층은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사회적 비용 방지에 도움을 준다는 것인데, 문제는 서양 사회에 비해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사회적 관계와 남들에 의한 평가가 비교적 중요한 사회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죽을 시기와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과연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안락사에 관한 논의가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진행될 때, 개인주의보단 집단주의적 성향이 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식들 눈치보고 다른 사람들 눈치보느라 죽음을 강요 당할 것이 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즉,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사실상 강제된 죽음이 권리로 포장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플랜 75>와 대법원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는 금지하되, 존엄사는 허용하고 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에는 크게 '존엄사와 안락사' 두 가지가 있다. 존엄사란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하는 행위를 말하고, 안락사는 환자가 겪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물 등을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는 '김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하여 허용하게 되었는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할머니의 가족이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접어든 환자의 경우, 자기결정권에 근거하여 연명 치료 중단을 국내 최초로 인정했다. 이후 병원은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김할머니는 그 후에도 자발호흡으로 연명하다 2010년 1월 사망했다.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이하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 한다)에 이루어지는 진료행위(이하 ‘연명치료’라 한다)는,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치료에 불과하므로, 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와는 다른 기준으로 진료중단 허용 가능성을 판단하여야 한다.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되므로, 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여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 한편,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주치의의 소견뿐 아니라 사실조회, 진료기록 감정 등에 나타난 다른 전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등]
김할머니 사건과 위 대법원 판결은 '연명의료결정법'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법이 정하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 즉, 존엄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존엄사만 허용하고 있는 것일 뿐, 누구나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안락사까지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의사의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안락사 허용 법안이 발의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영화 <플랜 75> 후기
영화 <플랜 75>는 10년 후 혹은 빠른 시일 내에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서늘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단순히 '플랜 75'라는 제도가 아니라, 그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짐짝 취급했던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법원의 '김할머니 사건' 판결과 연명의료결정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테두리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정비된다 한들, 서로를 '비용'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플랜 75'의 비극은 현실이 될지 모른다.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늙어간다는 것 그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본질보다는 성과와 효율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취업을 못하는 청년, 오래 다니던 기업에서 해고당한 후 재취업에 실패한 중년, 노후 소득이 부족해 가난에 허덕이는 노년에게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달린 댓글 하나가 큰 공감이 되었다.
노약자에게 요청된 죽음.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홀로코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