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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별 May 16. 2020

소외되고 고립된 도시인의 쓸쓸한 자화상

도서 '무진기행'을 읽고

근대적 발전과 도시화가 주는 고독과 소외


모든 사회에 있어서 물질적 경제적 변화는 그 사회가 놓여진 시대의 사상적 철학적 변화를 유도했고, 그렇게 변화된 사상적 철학적 변화는 해당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지각과 생각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근대화라는 이름의 경제적 발전 뒤에는 자연을 타자화 하여 이를 정복하려는 근대 합리주의 철학이 있었고, 그러한 근대 합리주의 철학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타자화 함으로써 그 타자를 극복하고 정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는 와중에 근대 사회를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은 자기가 타자화한 모든 타자들에 둘러싸일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느끼는 고독과 소외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김승옥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6.25전쟁 이후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국가와, 국민을 비롯한 모든 조직이 조국 근대화를 향해 총력전을 펼치던 때였고, 근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도시화와, 그 도시내에서 살아가던 소시민들은 스스로 정신적 파편화, 원자화를 절감하면서 스스로를 엄습해오는 고독과 소외 현상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승옥 작가의 다수의 단편선에서는 도시안에서 고독하게 살면서 자신이 서있는 장소와 시간이 주는 압박감과 고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내고, 그 고통을 하루하루 근근히 속으로 삭혀내는 도시인의 자화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고독한 주인공들은 자신의 고향(‘무진기행’에서)으로, 또는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타인에게 몸을 맡기는 탈선의 방식(‘야행’에서)으로, 또는 자신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과 술과 말을 섞고 의미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 방식(‘서울 1964년 겨울’에서)으로서 ‘현재, 여기’로부터 끊임없는 탈주를 시도한다. 


‘현재, 여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탈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결국 다시  ‘현재, 여기’로 돌아올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결과에 대하여 그들은 허무함과 현실의 불가피함을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도시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그리고 다시 도시적 일상으로..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은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적 삶의 번잡함을 잊고자 자신의 고향인 ‘무진’으로 돌아오지만, 그가 진정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은  ‘안개’와 따뜻한 ‘바람’과 같은 자연일 뿐 ‘무진’에 계속 살고 있던 자신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아니었고, 그들은 자신과 일체가 될 수 없는 ‘타자’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타자화’라는 일상성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 돌아간 고향 또한 ‘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는 거기서 도시에서 느끼는 일상이 여전히 그를 포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진’에서 정신적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여선생을 만나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러한 일탈행위 조차 도시에서 자신의 아내가 보내온 ‘전보’에 의하여 유지할 수 없었고 결국은 그 일탈의 즐거움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무진기행>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라고 쓴 팻말을 보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고독과 소외로 점철되고 타자로 둘러싸인 도시를 떠나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무진’으로 왔고, 거기서 또 다른 ‘나’를 찾았으나, 그러한 여유를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강탈당한 것에 대한 무력함과 그 무력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 원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팻말은 주인공이 꿈꾸고자 하는 곳에서 주인공은 영원히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시켜준 상징이었으리라.


도시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일 때문에 만나는 사업상의 파트너,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만나는 계산원, 술집에서 우연히 합석하여 이야기를 누고 헤어지는 기억나지 않은 사람들. 일시적이고 깊이 없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도시 생활의 상당부분을 구성한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주인공과 ‘안’은 서로 일면식도 없다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아무런 의미도 없거나 자신이 실체적으로 소유할 수도 없는 공허한 대상을 주제로 말놀음을 하다가, 우연히 죽은 아내의 시체를 종합병원에 팔아넘기고 괴로워하는 책 외판원을 만나서 하루를 보낸다. 


세 사람의 만남 자체는 우연적이었으며, 그 만남의 깊이 자체 또한 깊다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안’과 주인공은 하룻밤만 같이 하자는 책 외판원의 부탁을 뿌리치지는 못하고 한 여관에서 각 방을 쓰지만,  결국 괴로움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책 외판원의 주검을 보고 여관으로부터 도망치고 만날일을 기약할 것도없이 헤어진다. ‘안’은 경제적인 걱정없이 대학원을 다니는 대학원생, ‘나’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고졸 공무원, 그리고 책 외판원은 경제적인 쪼들림에 버티다 버티다 못해 아내의 주검마저 장례치러주지 못하고 팔아넘긴 사람이다.  


책 외판원의 괴로운 삶에 주인공은 공감을 해주고 그를 위로해주려 하나, ‘안’은 그러한 책 외판원의 그러한 태도와 주인공의 태도에 영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고 냉소하는 ‘안’을 보면서, 도시 안에서 살면서 자신의 일 이외에는 무심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외된 상태에 빠져 절대고독에 빠진 ‘책외판원’은 ‘안’의 전형적인 도시인의 특징을 명확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이며, 주인공인 ‘나’는 완전하게 도시화 되지 못하고 ‘안’과 책외판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결단력 없이 매사에 질질 끌려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적 일상생활의 의미

  

이 책에서는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 를 포함한 총 10개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0개의 모든 소설이 동일한 주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절반 이상의 소설이 도시 내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고독과 소외를 포함한 실존적 고뇌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1960년대의 도시의 삶이나,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도시의 삶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구성해나가는 도시에서의 삶이란,  끊임없이 타자를 양산해가고, 그 타자들에 둘러싸임으로서 고독과 소외를 피할 수 없으며, 그 고독과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을 탈출하려 노력해도,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삶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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