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oy Theatre!
사보이 극장을 네이버에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준다.‘1881년 10월 개관(開館)되었으며, 20세기 초엽까지 길버트 공연으로 명성을 떨쳐 사보이 오페라’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그 후 바커에 의해 셰익스피어극과 B. 쇼의 희곡 등을 공연하다가 1929년 개축을 거쳐 1930년대 중반까지 ‘사보이 오페라’를 부활 공연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희극을 상연한다.
감히 말하건대 내 문화의 숙주도 사보이 씨아터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할리우드 키드였던 그때 나는 런던 문화에 젖줄을 대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들의 극장 등급 분류법은 다음과 같다. 대구 동성로의 만경관은 일류. 송죽극장은 이류. 자갈마당 동아극장은 삼류. 대명동 미도극장은 사류. 비산동 오스카(오오... 오스카라니!) 극장은 오류. 서문시장 부근, 바로 문제의 그 사보이 씨아터는 등급 외, 단독 명사를 가졌다. '싸보이 극장은 오류에도 못 드는 따라지 극장'
국민학교 고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운동장 철봉대에 나방 고치처럼 거꾸로 매달려 뒤집혀 달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인생이니, 석양이니, 뭐 그런 가당찮은 단어들을 떠 올리다가 슬슬 발길을 옮겼던 그 따라지 극장, 동시 상영 두 뿌로에 일금 30원. 싸보이 씨아터.
30원을 매번 끊을 능력은 안되었을 테고 월담 치기, 개구멍 치기, 창문 치기 등등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야 나지만 그 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치고.
어떤 땐 잘못 뛰어들어 검표원 떡대 아저씨한테 쫓기다가 미로 같은 극장 복도, 화장실, 헥헥거리며 돌고 돌다가 스크린 뒤편으로 튕겨 들어갔을 때.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스크린 뒤쪽으로 투영되던 뒤집혀진 황홀경. 벌렁거리는 심장, 후들거리는 발길 조심스레 옮겨서 마침내 객석까지 진입했던 그 희열. 악착같이 색출하지 않고 그쯤에서 슬그머니 사라져주었던 검표원 떡대 아저씨.
객석 뒤쪽에 관람석(?)이라는 것이 양쪽에 있었다. 세 개의 계단을 올라가 객석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감옥의 파수대 같은 공간이었다. 대개는 경찰이나 학생주임 교사들의 감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싸보이 극장은 치외 법권 지역 이었다. 난 그 파수대에 앉아서 스크린보다는 객석의 움직임에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난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 드믄 드믄 앉은 십여 명의 남자 관객들.
그 극장은 모두 남자만 있었다. 좌측 끝 사내가 슬슬 우측으로 이동한다. 우측 끝 남자도 낌새를 느끼고 좌측으로 이동한다. 둘은 잠시 어깨를 기대는가 싶더니 우측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그러면 이번엔 뒤쪽 남자가 좌측 남자에게로 다가가고 잠시 영화에 시선 뺏겨 있다가 객석을 내려다보면 어느새 남자들의 위치는 많이 바뀌어있다.
사랑이 시작된 커플. 큭큭큭, 소리 죽여 흐느끼는 남자. 거절당한 남자의 또 다른 시도. 게이 바가 따로 없었던 시절, 동성애자들의 유일한 해방구였던 대구 싸보이 극장.
나도, 십여 명의 남자 관객들도 아무도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곧추 세운 안테나로 부지런히 짝짓기에 열을 올렸던 그 남자들. 빛이라곤 스크린과 비상구 등, 금연 탈모 등만이 깜빡이던 그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리운 반쪽을 향해 몸부림쳤던 그 남자들.
파수대의 나는 헤아려본다. 오늘은 몇 쌍이나 성공하여 손을 잡고 나갈까? 켜켜이 묵혀진 밀도 높은 지린내. 쉼 없이 삐걱대던 의자 소리. 쭈웁쭈웁 극장 안을 가득 채웠던 절실했던 키스 소리. 오랜 세월, 내 기억을 공명 시키는 그 소리와 냄새들.
대구 유일의 이반 공간 싸보이 극장. 누추하고 슬픈 사랑의 공간. 대구 Savoy 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