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Solva)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좁은 길을 따라 세인트 데이비드(St Davids)로 향했다.
남편은 대학 시절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조용히 풀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는 곧 마주할 도시에 대한 설렘을 더욱 키웠다.
St Davids는 인구 2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영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화려한 빌딩도, 북적이는 번화가도 없지만, 웨일스 사람들에게 이곳은 특별하다. 신앙의 뿌리이자 마음의 고향 같은 곳, 작지만 깊고, 소박하면서도 오래된 숨결이 깃든 도시다
이곳의 역사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일스의 수호성인 성 다윗(St David)이 이 외딴 반도에 수도원을 세우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2세기에 장엄한 대성당이 들어섰고, 교황 칼릭스투스 2세는 “세인트 데이비드를 두 번 순례하면 로마 순례 한 번과 같다”고 말하며 그 신성함을 인정했다. 그 말에 이끌려 수많은 순례자들이 바다를 건너왔다. 병의 치유를 구하는 이도, 죄의 용서를 비는 이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이도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작은 가방을 멘 채, 허리에 조개껍질이나 십자가를 달고 걸어온 발걸음은 성당의 돌바닥에 고스란히 남았다. 성 다윗의 유골이 안치된 채플 앞에 무릎을 꿇던 순간, 이곳은 그들에게 세상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을 것이다.
19세기에는 도시 지위를 잃고 작은 마을로 남았지만,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 청원 끝에 199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시 도시의 지위를 돌려주었다.
영국에서 ‘도시’라는 이름이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지를 보면, 이 사연을 더 이해할 수 있다.
중세에는 “대성당이 있으면 도시”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래서 규모가 작아도 성당이 있는 곳은 당당히 city라 불렸고, 반대로 인구가 많아도 대성당이 없으면 단순한 town으로 남았다. 세인트 데이비드처럼 인구 2천도 되지 않는 곳이 도시 지위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인구와 경제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대성당만으로 도시를 정의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세기부터는 군주의 칙허(Royal Charter)가 도시 지위를 부여하는 공식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영국에는 대성당이 없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대성당이 있어도 여전히 ‘마을’로 불리는 곳도 존재한다. 도시의 이름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건물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라 할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세인트 데이비드 대성당(St Davids Cathedral)을 찾았다. 바닷가 사암으로 지어진 성당은 겉모습은 소박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웅장함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나를 압도했다.
⇲ St. Davids 대성당
성당 내부와 회랑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웅장함을 넘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순간이 찾아온다. 중세에는 이곳이 로마나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순례지로 꼽혔다. 교황 칼리스투스 2세의 선언처럼, 수많은 순례자들이 바다를 건너 이 작은 도시에 발걸음을 옮겼고, 그 발자취가 켜켜이 쌓인 공간에 서 있자 나 역시 오래된 순례길의 끝자락에 닿은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성당 곳곳에는 중세 성경 필사본과 초기 인쇄본이 보관되어 있어, 단순한 종교서적을 넘어 웨일스 중세 교회의 신앙과 학문, 문화적 유산을 엿볼 수 있다. 정성스레 필사된 성경을 바라보며, 수백 년 전 사람들의 간절한 손길과 마음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졌다. 은제 성배와 성구함, 나무로 조각된 성가대석과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며, 어둑한 성당 안에 부드러운 빛과 신비로운 평온이 스며들었다.
성 다윗의 성소가 있는 공간에 서자, 오래전 순례자들이 느꼈을 경외와 긴장이 내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드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세기를 이어온 신앙과 인간의 발자취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서 발걸음을 옮겨, 주교 궁전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다른 시대로 들어가는 통로 같았다. 돌담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니, 햇살에 반짝이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웃는 소리가 그곳을 채우고 있었고, 그 명랑한 풍경은 곧 맞이할 주교 궁전의 고요함과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 개울가에서 만난 아가들을 대성당 어귀에서 다시 만났다. 뒷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렇게 잠시 웃음소리에 발걸음을 묶이다가 길의 끝에 다다르자, 눈앞에 마침내 주교 궁전(Bishop’s Palace)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지붕이 사라지고 벽만 남아 바람과 풀꽃이 드나드는 폐허이지만, 그 자리에 서니 한때의 장엄함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웅장한 홀에서는 주교와 귀빈들이 연회를 열고, 회랑과 뜰은 순례자들을 맞아들이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그 찬란한 날들을 허물었지만, 무너진 아치와 창문 틈새는 여전히 과거의 숨결을 담고 있었다.
⇲ 주교 궁전(Bishops Palace)
주교 궁전을 둘러본 뒤, 우리는 마을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다리를 건너 좁은 돌길을 지나자, 햇살 속에 옹기종기 늘어선 서점과 기념품 가게, 바닷바람을 머금은 카페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행자들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 벤치에 앉아 있고, 현지인들은 서로 안부를 건네며 장바구니를 들고 오갔다. 북적이지 않지만, 잔잔한 일상과 느린 시간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처럼 이어주는 듯했다.
⇲ St Davids High Street
세인트 데이비드는 펨브록셔 해안국립공원(Pembrokeshire Coast National Park) 안에 자리해, 바다와 언덕, 절벽이 어우러진 장대한 풍광을 품고 있다. 여름이면 화이트샌즈 베이(Whitesands Bay)에 서퍼들이 몰려들고, St David’s Head에서는 신석기 무덤과 철기 시대 요새의 흔적이 여행자를 맞는다.
⇲ Whitesands Bay
바다와 바람, 성당의 종소리와 순례자의 발걸음이 겹쳐 울려오는 세인트 데이비드.
가장 작지만,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도시였다.
해안 절벽 위로 날아드는 바닷새, 바람에 물결치는 히스랜드, 종소리로 하루를 여는 성당. 모두, 이곳 사람들이 지켜온 마음이 빚어낸 풍경이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함께 숨 쉬게 하며 다음 세대에게 건네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