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날아온 봄소식

화성 남자의 멋지더라와 금성 여자의 만 가지 상상력

by 봄이


한국에서 약 9,000km 떨어진 런던, 그곳에 지금 나의 '화성인'이 머물고 있다.

웨일스 집을 잠시 떠나 런던 딸아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헨리 8세의 화려한 궁전을 거닐고 집 앞 체리블라썸 사진을 보내오는 남편의 연락은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금성인인 나에게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해독'이 필요한 암호문 같다.

화성인들은 목적 중심적이다. 그들에게 보고란 사실의 전달일 뿐이다.

딸과 함께 헨리 8세가 살았던 햄프턴 코트 궁전에 다녀왔다는 남편에게

"정원에 봄꽃이 많이 폈지?"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단 두 마디다.


“멋지더라. 꽃도 많이 피었고, 궁전이 정말 크고 멋지더라고.”


이것이 화성식 표현의 전부다. 헨리 8세의 파란만장한 역사나, 튜더 양식의 붉은 벽돌이 주는 중압감, 혹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미로 정원의 경이로움 같은 수식어는 화성인의 언어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멋지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 모든 감각을 압축해 버리는 그들의 효율성이란...


반면, 금성인인 나는 남편이 보낸 사진 한 장을 붙들고 나만의 우주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사진 속 런던의 길가, 흐드러지게 핀 체리블라썸을 보며 나는 그곳의 공기를 상상한다. 살짝 차가우면서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바람, 딸아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풍경을 담기 위해 서툴게 휴대폰을 들었을 남편의 뒷모습까지.

특히 햄프턴 코트 궁전의 목련이 활짝 핀 사진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 우리 웨일스 시골집으로 향했다. ‘지금쯤 우리 집 올라가는 길목의 거대한 목련 나무도 환하게 불을 밝혔겠구나.’ 주인 없는 빈 집 뒤뜰에 혼자 고고하게 피어났을 우리 집 목련.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릿하다가도, 남편이 보내준 런던의 봄 사진 위에 웨일스의 목련 향기를 겹쳐본다.

내가 한국에 머무는 사이, 내가 없는 그곳의 봄은 얼마나 찬란하게 피고 지고 있을까. 직접 그 꽃그늘 아래 서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남편의 무심한 사진 한 장 덕분에 내 상상 속 런던은 어느새 웨일스의 봄까지 품은 거대한 정원이 된다.

'멋지더라'는 그 짧은 문장 너머로, 나는 남편과 딸이 나란히 걸었을 정원의 감촉과 화려하게 수놓아진 튤립의 색깔을 마음껏 덧칠한다. 어쩌면 화성 남자의 간결함은 금성 여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배려(?) 일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 나는 런던과 웨일스의 봄을 내 마음대로 가장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


비록 남편의 후기는 두 문장으로 끝났지만, 괜찮다. 내 상상 속의 봄은 이미 수만 가지 꽃향기로 가득 차 있으니까.


"남편, 다음엔 '정말' 앞에 '진짜 진짜'라도 한 번 더 붙여줘요. 내 상상력이 더 풍성해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