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땅을 적시던 날, 뒷가든으로 나갔다.

잠시 영국 집을 떠나며...

by 봄이

이 글은 지난 2월 17일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기록된 글 입니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흙 속에서, 명이나물이 조심스레 새순을 올리고 있었다. 서양배 나무 아래 심어둔 명이 하나는 반쯤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성질급한 아이는 벌써 잎 하나를 펼쳐 빗방울을 머금은 채 반짝이고 있다.

돌담 위에는 머스카리(Grape Hyacinth)가 포도송이처럼 모여 작은 보라색 보석알을 터트리면서 빗물에 젖은 꽃잎과 잎사귀 사이로 봄의 향기가 스며들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꽃송이마다 은은한 생기가 돈다.


애기 수선화도 며칠 전 꽃송이를 열었고, 튤립도 봉우리를 올려 새 계절의 기운을 기다리고 있다. 앞뒤 가든은 이미 젖은 봄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계절의 시작에,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다녀오면 꽃들은 이미 만개해 빗줄기에 흔들리고, 지지대 없이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돌보지 못하는 빈자리에 미안함이 스며들고, 떠나는 발걸음마다 아쉬움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동시에, 빗물과 축축한 흙, 땅과 시간 속에서 꽃들이 스스로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켠을 채운다.


짧은 순간이지만, 봄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다.
젖은 흙 냄새, 빗방울을 머금은 보라색 꽃봉오리, 성급히 열린 수선화 잎사귀까지, 모든 것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떠나는 나는, 그 작은 생명들에게 다정한 시선과 미안함, 그리고 ‘잘 견디라’는 속삭임을 남긴 채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날, 다시 봄을 맞이할 때, 나는 그들이 빗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피어 있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