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하늘은 늘 맑지 않다. 구름은 낮게 흐르고, 비는 예고 없이 내린다. 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을 바꾸고, 언덕 위 초원은 바람에 따라 결을 달리한다. 변덕스러워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자연은 흔들리지 않는다. 날씨는 갈팡질팡하지만, 계절은 길을 잃지 않는다. 겨울이 물러날 때를 알고, 봄이 들어설 자리를 정확히 비워 둔다.
대지는 말없이, 자기 시간을 지킨다. 다만 오래 기다리고, 정해진 때에 움직인다.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인간의 시간처럼 앞서가거나 되돌아가지 않고, 오직 자기 리듬에 따라 흐른다. 그래서 웨일스의 봄은 선언처럼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이미 와 있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우리 집에서 봄이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은 크로커스다. 지난 한 달 동안 흙을 밀어 올리듯 잎을 내더니, 며칠 전부터는 꽃대를 세워 조용히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공기에는 겨울의 잔향이 남아 있고, 아침이면 잔디 위로 서리가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봄은 이미 숨결처럼 다가와 있다. 크로커스는 계절을 앞당기지 않는다. 다만, 정확한 순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어느새 봄은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스며들고 있다. 비에 젖은 들판에도, 바람이 거센 해안의 절벽 위에도. 대지는 오래전부터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로커스가 흙을 뚫고 올라오는 순간처럼, 봄은 선언이 아니라 오래된 질서로 도착해 있다. 그리고 곧, 모든 들판과 초원이 숨을 트며 기다림은 말없이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