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힘들어 2022-1-17
“너 힘들지?”
별 것도 아닌 말이었다. 어쩌면 인사치레로라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속 뭔가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올해 나는 팀이 바뀌어 새로운 업무에 적응 중이다. 늘 그렇듯 괴로움에는 그것을 설명할 이유가 필요하다. 나는 늘 삶이 주는 괴로움 앞에서 이유를 묻곤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유는 나였다. 일종의 희생양, 타깃. 나는 내 삶의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 못해서….’
이번에도 그럴 참이었고 그러고 있었다. 근데 웬걸 내 상황을 아주 짧게 얘기한 식사 자리에서 친구는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를 툭 내뱉은 것이다.
“너 힘들겠다…. 힘들지?”
팀이 바뀐 지난 2주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저 내 몫이라고 내가 더 잘하면 된다고 다그쳐 왔을 뿐이다. 놀랍게도 나의 어머니처럼 나는 마치 도망칠 길 없는 사람처럼 아니 내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인간
나는 어릴 적 어머니를 생각하면 비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내가 우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신 덕분에 나는 혼자 우는 법을 아주 어릴 때부터 익혔다. 아주 크게 다쳤을 때도 혼자 환부를 감쌌을 뿐이다. 엄마는 나의 약함을 허용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였고, 여느 아이들처럼이나 취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어머니는 때론 내가 취약하여 자기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늘 나를 취약한 사람으로 정의하면서 정작 내가 취약할 때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내 어머니는 내 친어머니이며 나를 무척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내가 너무 힘들다’고 얘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어머니의 기나긴 우울증도 이러한 이유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무수한 밤을 나를 이해하기 위해 보냈다. 이해할 수 없는 무력함 무기력함 슬픔 우울 그것들을 끌어안고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도 그랬을까. 나를 숙고할수록 그 끝에는 내 어머니가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힘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내 마더 랭귀지에는 힘들다는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외국어를 전공했지 않은가. 아마 곧 또 배울 수 있으리라. ‘나도 힘들어’라는 그 짧은 한마디를.
나와 내 어머니가 잃어버린 혹은 소유해 본 적 없는 말을 찾아서 이 글을 쓴다.
조금은 견딜만한 하루를 만들어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