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 앞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하기 싫은 일 투성이다. 자판기 쯤 될까 싶은.
나는 몰랐지, 해외 영업이 이런 일인 줄.
영업일을 하고 싶어서 손을 들어 왔건만 내가 신이 나서 하는 일은 스탭스러운 일이다.
아마도 나는 아직 스탭의 일이 훨씬 익숙하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익숙하게 하는데에는 확실히 시간이 걸린다.
나는 새로운 일 앞에서 큰 힘을 비축하고 한번에 해결하려는 패턴을 가졌다.
긴장되는 상황 앞에서, 혹은 새로운 일 앞에서
특정 수준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응축해서 터뜨려가며 일을 해결한다.
지금까지 그런 패턴을 지닌 내 삶의 결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응축과 터뜨림의 패턴은 그 자체로 부자연스럽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하면 될 것을 처음부터 뒤집어 엎고, A부터 Z까지 하려고 아등바등 하기에 들이지 않아도 될 에너지가 쓰인다.
In the mud of work.
전임자가 내 상황을 고객에 설명할 때 내가 일의 진흙 구덩이에 있으니 양해 바란다고 저렇게 메일을 썼더랬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심지어 잘 알지 못하는 일을 보며 확실히 나는 그 일을 진흙 덩어리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긴 연휴를 마친 내 앞에 산적한 이 일들 역시 나는 진흙 더미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 두렵고 어렵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그 진흙 속으로 손을 푹 넣었을 때
혹시 건질만한 뭔가가 잡히지 않을까. 어디 내다 팔아볼 만한 것들이 잡히지 않을까.
때론 그게 쓸모 없는 쓰레기일지라도 손을 넣어 확인 하는 것과 그저 진흙 더미로 두는 것은 명확히 다른 일이다.
적어도 이 mud 속에서 조금은 clear한 삶으로 옮겨갈 수 있을테니까.
그 안에 어떤 귀한 것들이 들어있는지, 혹은 쓰레기가 박혀 있는지 알게 뭐람.
그저 쳐다 보기 싫고 들춰보기 싫고 모르겠는 이 마음에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진흙덩어리는 내 앞에 산적한 일이 아니라, 일에 대한 내 막연한 두려움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저항을 멈추고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
적응할 수 있는 일과 적응할 수 없는 일
잘하는 일과 잘 하지 못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될지 모르겠는 하루가 또 이렇게 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