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켰네, 나 그 일 싫어해

난 이 일이 싫은 것 같아

by 이렇게

해외 영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자와 얽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밥줄이 내 손에 달려있기도 한다. 그게 부담이고, 책임이고, 의무로 여겨져서 마음의 부담이 크다.


인도네시아 지사원은 정중하게 내 의견을 묻는다. 하지만 그만의 고집은 있어서 늘 내게 역으로 제안을 건넨다. 그와 통화를 하면 그는 늘 나긋한 목소리로 "Halo?"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와의 통화를 통해 나는 인도네시아어가 얼마나 나긋한 톤을 가진 언어인지, 그리고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하곤 한다. 그는 내게 늘 여유를 준다. 재촉하지만 그는 그래도 나를 쉬게 한다.


태국 지사원은 늘 먼저 연락이 온다. 베테랑인 그녀는 늘 내 의중을 묻고, "솔직하게, 그건 안돼" 라는 말을 붙인다. 그녀는 "솔직하게"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나는 그 말이 사뭇 솔직하게, 진정성있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녀의 의견을 들어주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본사의 입장을 존중한다. 그래서 그녀와의 통화는 언제나 웃음으로 마무리 된다.


인도 지사원은 늘 화가 나있다. 그는 내가 인도 시장을 크게 소중히 여기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에게 그 시장에서 통할 만한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다. 본사 입장에서 마진이 남을만한 판가만을 제안하기 때문에. 그럴 때면 그는 언제나 내게 "여기도 네가 소중히 여겨야 할 네 시장이야"라고 일침을 놓는다. 고객 편만 드는 그가 미워서 어느날은 화가 나서 따져 묻기도 했다. "있잖아, 우리 같은 편인거 맞지?"


그러나 나는 사실 그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저 멋쩍었다. 내가 너의 시장을 크게 사랑하지 않는 것을 너 역시 느끼는 구나. 너는 나보다 큰 책임감으로 그 시장을 담당하고 있구나. 나는 그와 말싸움을 하고나서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해도 너를 이길 수 없으리라고. 왜냐하면 나는 그 시장을 너만큼 사랑하지 않으니까.


영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알았다. 내가 이 일을 그다지 오래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가격을 내고 물건을 팔고 무사히 수출 시키는 일에 큰 흥미가 없다. 내게 그 일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절실하고 소중할 이 자리가 내게는 덧없고 의미 없어서 송구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곳에 있을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자리를 지켜야지. 생각한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또 버텨낸다.


그러나 나는 조금 후회한다. 들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들켜버린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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