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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환 Aug 14. 2022

얼죽남 - 얼어죽어도 남극세종기지를 찾는 야생조류들

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7)

  누군가 '세종기지의 장점은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나는 산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세종기지의 산책은 졸린 오후를 깨우는데 제격이다. 기지의 앞은 바다, 뒤는 산봉우리가 있어 배산임수 풍경이라 산책할 때 볼거리가 많다. 어떤 날은 유빙으로 뒤덮인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가 하면, 어떤 날은 낮은 언덕에 올라가 기지를 내려다보며 새침한 마음으로 사색에 잠기곤 한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보면 저기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물체들이 보일 때가 있다. 기지를 찾아온 야생조류들이다.

겨울철 세종기지 풍경. 앞은 바다, 뒤는 눈 덮인 산으로 배산임수 요건을 갖췄다. 맑은 날 산책하며 풍경을 바라보면 잡생각과 고민이 사라진다.

  남극의 겨울인 8월에는 모든 동물들이 따뜻한 서식지를 찾아 떠날거라고 기대했지만, 대원들과 함께 바톤반도를 지키고 있는 야생조류들을 만날 수 있다. 기지 근처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야생조류는 칼집부리물떼새이다. 칼집부리물떼새는 몸 전체가 흰색을 띄고 몸길이가 40cm 정도되는 조류이다. 칼집부리물떼새는 비둘기처럼 걸을 때마다 머리를 앞뒤로 움직여 앙증맞고 귀엽다. 칼집부리물떼새는 여름철 펭귄마을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펭귄의 배설물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새가 펭귄의 똥을 먹고 산다니.. 하필 왜 남의 똥을 먹게 진화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은 독특한 식성 때문인지 쉴틈없이 펭귄 사이를 뛰어다니며 새끼들에게 먹일 똥을 구한다. 펭귄들은 자신들의 둥지 근처를 뛰어다니는게 얄미운지 칼집부리물떼새가 가까이 다가오면 부리로 내쫓는다. 하지만 칼집부리물떼새는 여유롭게 펭귄의 부리를 피하며 유유히 펭귄 사이를 돌아다닌다. 겨울철 펭귄들이 따뜻한 곳으로 떠나면 칼집부리물떼새는 종종 세종기지 주변을 찾아온다.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쓰레기 소각장과 연구동 지붕 위이다. 펭귄이 떠난 뒤 먹이를 찾다가 세종기지까지 방문한 그들에게 마음같아선 닭고기라도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연구동 지붕 위의 칼집부리물떼새. 갑자기 지붕이 시끄러울 때가 있는데 항상 칼집부리물떼새가 범인이다.

  남극가마우지도 겨울철 세종기지 근처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남극가마우지는 언뜻보면 생김새가 펭귄과 닮았다. 그래서 멀리서 봤을 때 펭귄인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곧장 날라가는데 그제서야 남극가마우지임을 알게 된다. 생김새뿐 아니라 바다 속을 잠수해서 먹이사냥하는 것도 펭귄과 닮은 점이다. 이들은 남극반도와 남셰틀랜드 군도에서 번식하는데 이 지역들을 떠나 멀리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극가마우지는 세종기지의 부둣가, 암초, 떠내려온 유빙 위에서 무리지어 휴식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기지 앞 작은 암초 위에 무리지어 휴식 중인 가마우지. 멀리서 언뜻보면 펭귄처럼 생겼다. 

  바람이 10m/s 이상 강하게 부는 날이면 남극도둑갈매기와 갈색도둑갈매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람부는 날 연구실 창문 밖을 보면, 두 종의 도둑갈매기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개짓을 하지 않은채 맞바람을 맞으며 호버링하는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호버링을 하다가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멋지게 날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활강하는 갈색도둑갈매기. 날개짓을 하지 않고 바람을 느끼며 날아가는 갈색도둑갈매기 모습은 언제나 경외감이 든다.

  기지근처는 아니지만 펭귄마을 입구를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남방큰풀마갈매기도 겨울철 바톤반도를 지킨다. 4, 5월까지만해도 남방큰풀마갈매기 새끼들이 덜 자라서 부모 품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부모와 분간할 수 없을정도로 커졌다. 7월 말부터는 하늘에서 남방큰풀마갈매기들 십 여 마리가 단체로 비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성체가 된 새끼들이 비행연습을 하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같은 비행이더라도 남극도둑갈매기가 날쌔고 강한 F-22 전투기와 같다면 남방큰풀마갈매기들은 우아하면서 웅장한 보잉 747 여객기처럼 보였다.

어느덧 훌쩍 비행연습을 할만큼 커버린 남방큰풀마갈매기들. 새끼일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남극에서의 시간도 그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들 외에도 흰풀마갈매기, 윌슨바다제비, 남방큰재갈매기 등 기지 근처를 가끔씩 드라이브하듯 지나친다. 야생조류들을 만나면 반가움과 동시에 겨울철 바톤반도에 사는 동물이 인간만은 아니구나, 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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