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재환 Sep 21. 2022

27년 만에 세종기지를 방문한 귀한 손님

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8)

오랫동안 연락이 뜸하던 귀한 손님이 세종기지를 방문했다. 

유난히 졸렸던 어느 날, 바람 쐴 겸 바닷가인 세종곶으로 걸어갔다. 막상 세종곶을 가려고 하니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다. ‘계속 갈까? 지금이라도 들어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멀리서 반가운 얼굴, 펭귄이 보였다. 남극의 추운 겨울을 피해 펭귄들은 몇 달 전 이미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었다. 그래서 한동안 펭귄을 볼 수 없었기에 펭귄 형체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웠다. 멀리서 봤을 땐 펭귄이 어떤 종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연히 펭귄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젠투펭귄이라고 예상했다. 젠투펭귄은 주황색 부리와 눈 주위의 선명한 흰 무늬가 특징이라 멀리서도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세종기지 근처 펭귄마을에 서식하는 젠투펭귄. 아담한 크기, 주황색 부리, 눈가의 흰 무늬가 특징이다. (출처 : 노윤탁 의료대원)

그런데 세종곶 근처로 올라온 이 펭귄은 눈 주위에 흰 무늬도 보이지 않고 부리도 내가 알던 주황색이 아니었고 젠투펭귄의 부리보다 길어보였다. 눈 주위가 검은색이라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으며 목 근처가 약간 노르스름했다. 젠투펭귄은 키가 50cm 근처로 무릎 높이 정도인데 이 펭귄은 가까이 다가가니 배꼽 높이까지 올 정도로 매우 컸다. 그렇다, 이 개체는 펭귄 중 가장 큰 황제펭귄 또는 임금펭귄이다.

세종기지에서 황제펭귄을 보다니! 처음에는 생김새가 유사한 임금펭귄과 구분하지 못했다.
육중한 몸매의 황제펭귄. (출처 : 노윤탁 의료대원)

황제펭귄은 뭐고 임금펭귄은 뭔가? 두 펭귄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개체 크기에 차이가 있다. 두 펭귄의 이름이 붙여진 내막이 재밌다. 임금펭귄은 킹펭귄(King penguin)이라고도 불리며 원래 가장 몸이 큰 펭귄이었다. 임금펭귄이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당시에 발견된 펭귄 중 가장 몸이 커서 ‘펭귄의 왕', 즉 임금펭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임금펭귄은 ‘펭귄의 왕’으로 장기집권해왔다. 하지만 60년 후, 남극대륙에서 임금펭귄보다 몸이 더 큰 펭귄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펭귄은 임금펭귄보다 더 큰 펭귄이라 황제펭귄(Emperor penguin)으로 명명됐다. 황제펭귄은 지금까지 몸이 가장 큰 펭귄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쪽이 황제펭귄일까? 답은 오른쪽이다. 왼쪽은 임금펭귄. (출처 : 극지연구소 블로그)

황제펭귄과 임금펭귄은 이름뿐 아니라 생김새도 유사하다. 그래서 세종곶에서 황제펭귄을 발견했을 때, 황제펭귄인지 임금펭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곧장 연구동으로 뛰어가 두 펭귄의 차이점을 알아봤다. 두 펭귄 모두 얼굴과 등이 검은색이고 배가 흰색이다. 귀와 목 주위는 뚜렷하게 노란색을 띠고 있다. 크기는 황제펭귄은 최대 120cm에 22~45kg이고, 임금펭귄은 90cm에 몸무게가 16kg까지 나간다. 역시 황제펭귄 이름답게 몸집이 훨씬 크다. 하지만 황제든 임금이든 처음 본 개체라 크기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두 펭귄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건 목 주위의 무늬이다. 황제펭귄은 무늬가 열려있고 임금펭귄은 무늬가 연미복처럼 닫혀있다. 기지를 방문한 펭귄은 무늬가 열려있는 황제펭귄이었다!

황제펭귄과 임금펭귄은 목 주위 무늬로 구분할 수 있다. (출처 : 색연필로 그리는 귀여운 새, EJONG)

황제펭귄의 서식지는 남극대륙이다. 그래서 남극대륙의 로스만에 위치한 장보고기지 주변에서는 황제펭귄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에는 황제펭귄 서식지가 없기 때문에 비록 1마리이지만 황제펭귄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2019년에 길 잃은 황제펭귄이 6000km 넘게 헤엄쳐 뉴질랜드에서 발견된 기사를 보고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가능한 일이었다. 6000km 까지는 아니지만 세종기지에서 남극대륙은 100km는 넘게 떨어져 있다. 아주 먼 곳에서 방문한 손님이라 더욱 반가웠다. 마음같아선 먼 길 오느라 지쳤을 손님에게 맛있는 먹이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연구 윤리상 불가능해서 아쉬웠다.

먼 길을 헤엄쳐 왔음에도 황제펭귄은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출처 : 노윤탁 의료대원)
황제펭귄 키는 사람 앉은키와 비슷하다. 

황제의 근엄함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람이 다가가면 곧장 달아나는 젠투펭귄과 달리 황제펭귄은 2~3m 앞까지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았다. 역시 황제는 다르다. 약간 귀찮다는 듯이 다른 곳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조금 더 다가가니 날개를 펼치고 휘젓길래 더 가까이 가진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찰했다. 긴 부리는 꽤 위협적으로 보였고 육중한 몸매 덕에 발걸음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멀리 갈 때는 배를 깔고 썰매를 타며 미끄러지듯 나아갔는데 정말 귀여웠다.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대원들을 불러 관찰하며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다.

황제는 팬서비스도 좋다. 젠투펭귄과 달리 도망가지 않고 얌전해 함께 사진 찍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종기지에 황제펭귄이 마지막 방문한 것은 27년 전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사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27년 만에 귀한 손님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월동 생활을 훌륭하게 보답받은 느낌이었다. 이왕 먼 길 온 김에 며칠 남아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다음 날 아침 세종곶을 가보니 귀한 손님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동족들 찾아 헤매던 와중에 잠시 숨을 고른다고 하룻밤 보냈나 보다. 

대원들과 사진을 찍어서 지친 탓일까. 대원들이 돌아간 뒤 황제펭귄은 배를 깔고 잠을 청했다. (출처 : 노윤탁 의료대원)

이탈리아 남극연구소(IAA)의 생물학자 마르셀라 리베르텔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30~40년 후 황제펭귄이 멸종될 수 있다고 한다. 매년 1만 4천~3만 3천 마리의 개체 수를 유지해온 황제펭귄이 2015년 극심한 엘니뇨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절반 가까이 개체 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이 때 죽은 새끼 펭귄만 1만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기후변화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종기지에서 황제펭귄을 만난 마지막 차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귀한 손님과의 만남을 가슴에 새겼다.

황제펭귄과 악수 청하는 대기대원. 기후변화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세종기지에서 이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출처 : 노윤탁 의료대원)


김재환 소속 남극세종과학기지 직업 연구자
구독자 28
작가의 이전글 얼죽남 - 얼어죽어도 남극세종기지를 찾는 야생조류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