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부족이 아니다

근원을 향해 기울어질 때 생기는 틈에 대하여

by 김정락

책상 모서리에 손바닥을 올리면 나뭇결의 온기보다 정해진 길의 단단함이 먼저 만져졌다. 그 위에서 질문은 늘 미끄러졌다. “공부만 해.” 그 말은 충고가 아니라 넘어서는 안 될 절벽이었고, 상상은 그 절벽 앞에서 매번 자신을 지웠다. 선택은 내 것이 아니었기에, 역설적으로 복종은 나의 유일한 생존 능력이 되었다.


나는 한동안 내가 결핍이 없는 사람이라 믿었다. 욕망도 갈망도 없으니 평온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충만함이 아니라, 비어 있음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설계된 의식의 가사 상태에 가까웠다. 무언가 원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를 때마다 내 안의 검열은 타인의 문장을 빌려 나를 꾸짖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돼. 지금 그럴 때야.” 그렇게 결핍이 태어날 자리마다 봉인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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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의 숫자가 늘어나고 칭찬이 쌓일수록, 기묘하게도 내 안의 나는 야위어갔다. 레일 위에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달릴수록 마찰열은 뜨거워졌지만, 그 열기는 나를 데우지 못했다. 외부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내면의 적막은 비정상적으로 무거워졌고, 마침내 그 무게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견고하던 레일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낯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모든 성취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아무리 달려도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다는 자각, 그 마찰의 고통이 비로소 나를 잠에서 깨웠다. 연결 고리가 끊긴 듯한 막막함은 기능으로 살던 내가 주체로 넘어가는 최초의 진통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결핍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흔히 결핍은 부족함이라 불린다. 자원이 적거나 능력이 모자라서 생기는 구멍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결핍은 없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지는 것이다.


길이 너무 선명하면 다른 방향이라는 감각은 발아하지 못한다. 완벽한 레일 위에서는 근원을 향해 몸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핍은 빈곤의 증거가 아니라, 삶이 표면을 뚫고 본질을 향해 고개를 들 때 생기는 틈이다. 뿌리가 땅속 깊은 샘을 향해 뻗어나가듯, 우리 영혼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질 때 비로소 결핍이라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결핍을 나의 흠집이 아닌 주체가 태어나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시키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질문은 무엇을 덜 잃을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주체는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묻는다.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나의 안락함을 기꺼이 지불할 것인가?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 대신,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단호하다. 이 한 칸의 이동, 복종에서 선택으로, 기능에서 의미로의 재배치가 비로소 나를 나로 만든다. 결핍은 고통인 동시에 방향이다. 내가 오랫동안 결핍을 느끼지 못했던 건 평온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비스듬히 고개를 들 기회조차 박탈당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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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이란 더 많은 것을 소유해 구멍을 메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더 자주, 더 깊은 틈을 허락하는 일이다. 그 틈이 생길 때 우리는 익숙한 레일을 건너 다음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건너감 속에서 주체는 마침내 제 이름을 얻는다.

근원을 찾는 주체의 근원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바탕을 향해 열려 있는 그 틈, 바로 그 틈이 우리를 다음으로 건너가게 만든다.


#결핍의재발견 #존재의의미 #주체적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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