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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Dec 17. 2020

이 험난한 시대를 어루만져 줄 영화

[프리뷰] 영화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요즘 같은 때에는 어딜 가도 몸부터 긴장하게 된다. 이럴 때 영화 언론시사회를 가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나 기대보다 마스크는 잘 썼는지가 우선순위가 된다. 안전하게 잘 보고 가야 할 텐데…라는 걱정과 불안함이 머리에 둥둥 떠다닐 무렵,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환한 스크린을 보면서 몸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17일 개봉)에서 네 남매가 모두 모여 엄마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첫 장면부터 온기가 느껴져 좋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릿하게 골고루 마주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장남인 장피에르(장 폴 루브)는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나눠줄 줄 아는 사람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둘째 여동생에게 소질이 있다고 말해주고 소심한 셋째 남동생의 연애를 걱정해주고 관심을 둔다. 사진가를 꿈꾸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넷째 여동생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주고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해준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조용하면서도 따뜻하게 채워나간다.


그렇게 가족에게 힘을 주지만 가족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남매들끼리 좀 더 뭉치자고 말했지만 귀찮다는 말이 들려오거나 여동생과 말다툼을 하다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욕을 자기가 먹을 때다. 하필이면 이럴 때 젊은 시절 함께 연극을 했던 옛사랑에 연락이 온다. 접어야 했던 청춘 시절의 꿈과 이뤄지지 않았던 옛사랑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그는 깊은 생각의 고뇌에 휩싸인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노력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처참하고 외롭다. 장피에르도 그랬던 것 같다. 장피에르가 밤에 짙은 푸른빛을 받으며 어딘가를 응시하는 장면이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삶의 허무함과 후회, 아쉬움을 얼굴과 눈빛 깊이 가득 머금은 채로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카메라는 1분이라는 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장피에르를 가만히 비춘다. 이 장면을 함께하며 나도 마음으로 흐느꼈다. 가족을 위해 한마디를 더 건네고 미소를 보냈지만 그 이상의 부담감도 짊어져야 했을 그의 어깨가 보였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피에르의 앞선 긴 인생을, 우리 주변인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유추해보게 된다. ‘당신은 지금은 괜찮으세요?’라는 물음을 던져보고도 싶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슬프고 아픈 영화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따스함이 더 컸다.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한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부를 묻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함께 하려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는 임신에 실패해도, 사진가를 꿈꾸지만 생활비에 허덕여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망설일 때가 있어도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생의 큰 슬픔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참 생기 있다.


겨울이다. 겨울엔 역시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를 저절로 기대하게 된다. 심지어 올해는 안녕하지 못하고 서로 멀어져야 안전한 지독한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더 냉혹한 계절이 되었다. 바로 이럴 때 이 영화를 만났다. 이 험난한 시대를 겪어내고 있는 수많은 장피에르와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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