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젯밤 너를 꿈에서 만난 것 같아.
스포가 있습니다.
코코를 봤다. 조금 진부했다. 솔직히 많이 진부했다. 기대를 엄청 하고 봤지만 진부했다. 존경했던 사람이 악당이고 함부로 대한 이가 진짜였다. 익숙하고 뻔한 전개다. 미구엘이 델라 크루즈가 고조할아버지라고 믿을 때부터, 속으로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매끄러운 전개와 아름다운 화면까지, 정말 좋은 영화일지 모르지만, 솔직히 성인이 보기엔 뻔한 전개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다시 보러 가고 싶은 이유는
내가 울었기 때문이고,
왜 울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은 이들이 백미로 꼽는 엔딩씬이었다. 보이지 않더라도 가족이 다 함께 하는 장면은 행복했다. 물론 우리는 그 사이에 죽음이 놓여있기 때문에 조금 서글픔을 느낀다. 나는 그 서글픔과 눈 앞의 행복한 장면 사이의 차이 때문에 눈물이 났다. 이미 가버린 이가 다시 돌아와 함께 하는 것. 소중한 이를 보낸 사람이라면 다들 꿈꾸는 장면일 것이다. 코코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늘 바라던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종종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이가 우리를 지켜볼 거라고 믿는다. 미구엘은 이제 헥토르(헥터)를 보지 못하지만, 그가 함께 있다는 걸 안다. 미구엘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Amor verdadero nos une por siempre, en el latido de mi corazón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언제나 하나로 묶어줘, 내 마음속에서부터.
Ay, mi familia, oiga, mi gente, canten a coro nuestra canción
내 가족, 내 사람들, 우리 다 같이 노래 불러요.
(의역입니다...ㅜㅜ스페인어 제대로 배우고 싶네요.)
이 작품은 꿈과 가족을 대립시키고, 꿈을 쫓아가면서 놓치는 것은 없는지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해석을 나는 정말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코코는 죽음을 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의 픽사 작품들이 상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 작품은 그럼에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미구엘은 헥토르를 만났지만, 코코는 죽기 전까지 헥토르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헥토르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저승에서도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다. 마마 코코가 자신의 아버지를 한순간도 미워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언제나 그리워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사실 그녀가 젊었을 적에는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미워했을 게 분명한데도, 영화에서 그런 언급은 전혀 없다. 영화에서 분명한 건 코코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고, 평생 만나지 못하면서 큰 상처를 얻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마마 코코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다. 상처가 남아서일 수도 있고, 보지 못한 한일 수도 있고, 더 복잡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딸에게 아주 큰 잘못을 한 헥토르를 대신하여, 미구엘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너에게 아주 큰 상처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너를 사랑한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도 만나지 못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하고, 잊고 놓아버리면 될 텐데 쉽게 잊어버리지 못한다.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오히려 고맙다. 어차피 잊기 어렵다. 이 영화는 헥토르의 얼굴로 코코에게, 어차피 잊으려면 평생이 걸릴 우리에게, 용서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억해서 힘들어한 시간을 위로해준다. 코코가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추억한다. 때로는 슬퍼서 외면했고,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영화 코코는 말하고 있다. 그런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죽은 이들도 좋아할 거라고.
결국 모든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이 그렇듯, 코코는 산 자를 위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이름은 코코다. 헥토르가 딸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고, 마마 코코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헥토르의 입장에서 본다면 코코는 꿈을 위해 포기했던 것, 끝내 상처를 주고 만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마 코코 그녀 자체로 본다면, 자신을 두고 간 아버지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잊지 못했던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조금 잡다하게 이야기해보자면, 헥토르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는 걸 미구엘이 깨닫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저는 할아버지가 제 가족이어서 자랑스러워요! 아이의 목소리로 말하는 말은 의심이 없다. 저 사악한 델라 크루즈보다는 헥토르가 가족인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자랑스럽다고 말하지만 듣는 이는 둘 말고 아무도 없다. 나도 네가 가족이어서 자랑스럽다고 소란스럽게 말하는 가족만 있다. 그뿐이다. 그 둘을 제외하고는 투명한 물과 하늘에서 애처롭게 쏟아지는 달빛뿐이다.
한 가지의 이야기에도 오백 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서 내가 느꼈어야 했던 것은 청량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럼에도 빠듯하게 차오르는 기쁨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주의가 주제라면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픽사는 텅 빈 공간을, 애처롭게 비추는 달빛을,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결코 즐겁게 연출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굴곡져있다. 외우고 다녔던 명언은 살인자의 모토였고, 가족을 버리고 갔던 조상은 결국 친구의 배신에 실패했다. 음악은 아름답고 모두가 원하는 것이었으나, 미구엘에게는 이제 남은 것이 없다. 텅 빈 공간은 미구엘의 내면적 상실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손을 내민 것은 음악을 사랑했지만 가족을 택했던 이멜다였다.
코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정말로 다행이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뒷맛은 씁쓸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너무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음악을 꿈꾸던 미구엘이 그동안 추구했던 걸 잃어버린 뒤에는, 음악 대신 가족을 택한 이멜다가 나오고, 자신과 이어졌다고 생각했던 음악가 할아버지는 후회하며 가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도 못했으며, 가족으로 돌아가는 것마저도 실패하고 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다. 그럼에도 미구엘은 엔딩 장면에서 노래를 한다. 어째서일까? 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코코가 과거를 만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화가 그렇듯, 굴곡진 인생과 만만치 않은 삶의 진실과, 가슴 미어지는 아름다움을 황홀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텅 빈 동굴을 픽사는 즐겁게 그려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 영화는 곱씹으면 씁쓸하지만, 그전에 말랑거린다.
길게 썼지만 결국 나에게는 좋았다는 말이다. 명작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야기는 원래 받아들이는 사람의 것이다.
*'가슴 미어지는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은 다음 인터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샬롯의 거미줄 작가인 케이트 디카밀로의 칼럼이다. 원문은 http://time.com/5099463/kate-dicamillo-kids-books-sad/ 이곳이고
어떤 친절하신 분의 번역은 https://starlakim.wordpress.com/2018/01/25/why-childrens-book-should-be-a-little-sad-kate-dicamillo/ 이곳이다. 오늘 읽은 글이었고,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픈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출처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