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소설의 차이
마션을 봤다. 책을 먼저 보았고, 영화도 보았다. 신작도 읽었다. 결론적으론 이렇다. 책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면 영화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작의 존재를 알면 원작을 봐야 하는 습관이 있고, 그래서 영화가 좋지 않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마션'은 훌륭한 연기와 훌륭한 연출이 잘 버무려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가 없다.ㅜㅜ
비닐이 흔들리면서 잠에 들지 못하는 장면도, 감자가 다 얼어버리고 나서 로버에 들어가 신을 부르짖는 장면도, 감자 싹을 매만지는 장면도, 지구에 돌아가서도 새싹을 마주하는 장면도. 적어도 나에게는 전부 정말 좋았다.
엔딩 장면도 정말 좋았다. 궤도처럼 도는 와트니와 대장님. 태양과 지구처럼, 지구와 달처럼, 원으로 돌다가 천천히 가까워지는 연출은 정말 좋았다. 완벽한 직선이 아니었고, 완벽한 맞닿음은 아니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줄은 몇 번이고 칭칭 감겼다. 오렌지색 줄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어지럽게 떠있는다. 그 꼬이고 얽혀서, 결국에는 와트니를 붙잡아내는 생명줄은, 지구에서부터 이어진 노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와트니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 소중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알지 못하지만 살았으면 하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화성에 남겨진 단 한 명의 지구인을 구하기 위해서 이어진 노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취향에 근거해서, 딱 한 장면만 더 꼽자면 러닝타임이 1시간이 되기 직전에, 헤르메스에서 대장님에게 떨어지던 빛을 꼽겠다. 고개를 숙이고 마크니를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어둡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담담히 자신의 죄책감을 인정할 때 그녀의 얼굴에 빛이 비친다. 군인이자 과학자인 대장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 다른 대원들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고, 자신의 결정이었고, 자신의 책임이었다. 그녀의 얼굴 반쪽에 분명하게 떨어지는 빛처럼 그녀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든 있었든, 그녀가 그를 두고 왔다. 사실을 인정한다.
다시 어둠이 떨어진다. 빛이 거두어지고 나서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유튜브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 부분의 클립 영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장면이 아니긴 했다. 어쩌면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선원들이 서있었으므로 장소는 당연히 헤르메스에서 중력이 있는 선실이었다. 헤르메스 외관을 여러 번 비춰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회전으로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단지 그 설정에 충실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가 반복된 것뿐일지도 모른다. 대사와 조명의 타이밍이 완전히 맞았다는 것도 우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우연도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 장면은 우울하지만 아름다웠다. 진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름다웠다. 이성에 얼굴이 있다면, 꼭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멋있었다.
어찌 되었든 내 눈에 연출은 좋아 보였고, 서사는 좋다 안 좋다 할 것 없이 간단하다. 화성에서의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든 살아나 지구로 갈 테야! 얼마나 단순하고 멋질까. 악역도 없다. 존재하는 거라고 광활하고 사악한 화성 환경과 걸핏하면 발을 잡는 사건 사고들이다. 사고가 나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면 다시 사고가 생긴다.
하지만 원작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간단한 서사에 붙은 과학지식의 설득력 때문이다. 앤디 위어는 천재다! 뭐? 이 사람이 호킹도 아닌데 왜 천재냐고? 이 사람은 17세(미국나이일 테니까 한국 나이로 바꾸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19세)에 국립 연구소에 취직한 사람이다! 나같이 (좋았든 싫었든) 평범한 자연계 대학생이 보기엔 천재다! 그 나이에 학자로서 연구소 취업이라니! 앤디 위어 천재!
그러니까 소설가가 과학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과학자가 소설을 쓴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엄청나게 치밀한 감정선이나, 엄청나게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는 않다. 이 원작의 포인트는 유머와 사실적으로 보이는 과학지식이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들이다.
물론 책에도 과학적 오류가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엄청난 모래폭풍은 희박한 화성 대기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밖에도 분명 이야기 진행을 위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도 넣은 요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자를 기르기 위해 지구 박테리아를 번식시키는 것도, 태풍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태양광에너지 손실률을 측정하는 것도. 이 책은 적어도 일반인이 읽기에는 충분히 과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고가 생겼을 때 욕하고, 어이없어하면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공에게 호감이 간다. 어쩔 수 없이 호감이 간다.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빌게 된다. 내가 세운 계획이 틀릴지는 아닐지 고민된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계획을 짜진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짠다. 와트니의 경우처럼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사건에, 수도 없이 변경되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계획을 짠다. 나는 와트니의 그러한 노력에 공감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과학지식이 책에서보다 훨씬 더! 무너진다. 종종 책과 영화를 합쳐서 마션이 사실적이고 낙천적인 SF라고 하는 글들을 보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책은 정말 SF였다. 일반인 수준에서는 이렇게 사실적일 수가 없다. 낙천적인 것도 그렇다. 마크 와트니가 피타고라스는 심술쟁이라고 말만 해도 빵빵 터졌다. 그렇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과생이었다. 젠장.
하지만 영화에서는? 우주복에 구멍을 내서 우주복 내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걸 추진력 삼는다. 근데 여기서 한쪽 팔에만 구멍을 뚫는다. 정말 미세하게 계산해서 뚫는 것도 아니다. 그냥 푹 뚫는다. 하긴 사람 힘으로 선외 우주복을 사이즈까지 조절해가면서 뚫긴 어렵다.
그리고 아이언맨처럼 날아오른다. 참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머릿속으로 '아 진짜 말도 안 된다. 이 장면 왜 넣었지? 이거 없어도 감동적이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지나갔던 것만 빼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아니, 사각형도 한쪽으로만 힘을 받으면 당연히 돌아간다. 이건 돌아가다가 멈출 수가 없다. 우주는 진공이다. 마찰력을 받지 않으니까 관성이 그대로 유지된다. 심지어 계속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추진력이 붙는데 그게 멈춰진다? 물론 우리는 그래비티에서 우주에서 빙빙 돌던 사람이 멈추는 걸 본 적이 있긴 하다. 근데 그래비티에서는 관성에 의해서만 돌고 있었다.
물론 장면은 좋았다. 위에서 썼듯이, 화성에서 자력으로 떠나는 화성인. 그리고 애타게 닿지 않던 줄을 어떻게든 감고, 지구와 달처럼, 태양과 지구처럼 서로를 향해 도는 동료.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리고 중간에 헤르메스가 화성으로 돌아가면서 노래와 함께 보여주는 장면들은 정말 좋았다. 보는 내가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노력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마션의 낙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우주선 무중력 공간에서는 가급적 물방울을 안 만든다. 물방울이 아주 작게 쪼개져서 기계의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뭐, 아닐 수도 있다. 나사에서 TV 정도는 우주선에서 고장 나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로버에 에어 로크가 없던데, 기계들은 화성 대기와 그 극저온에 노출되어도 되나 보다. 물론 이건 영화 러닝타임을 잡아먹기 때문에 생략한 부분일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많다. 긴 장편 소설을 하나도 빠짐없이 넣어올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 '마션'은 으레 각색 영화가 그렇듯 책에서 많은 부분을 잘라냈다. 그리고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장면을 많이 넣었다. 솔직히 영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아름다웠다. 절제되었지만 즐거웠고, 슬펐고, 외로웠고, 절망스러웠고, 고마웠다. 책에서는 조금 덜 느껴지던 와트니의 절망감과 우울이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었다. 낙천적인 유쾌함도 잘 표현해주었다. 아무리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맞지 않아도, 둥둥 떠다니면서 동그란 물방울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사람은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영화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과, 화성에 남겨진 사람의 고독을 보여준다.
그리고 덕트 테이프는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위대했다. 결국 이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덕트 테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