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설탕물 같아서 오래 들고 있으면 손이 끈적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땐 더 힘들었지만 어쩌면 가능성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또 하면 됐으니까. 그러나 기대만큼 두려운 것은 여전히 '내일'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 그런 전제가 삶에 덕지덕지 붙어서 우리는 한 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 아닐까.
출판사에 도전하는 일은 어려웠다.
애초에 문창과 출신만 뽑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100권의 책을 정리해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고 몇 군데 두드려본 취업의 문도 좀처럼 열릴 기미가 없었다. 그러다 메일 한 통 속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었다. 문창과 출신을 뽑는 과정에 일반인이 들어온 게 잘못이었다고 했다. 글재주도 없고, 경력도 없고, 그렇다고 작품 하나 없는 내가 그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는 게 그쪽의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칼질도 못하면서 편집자가 되겠다고 설레발친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었다. 네가 다닌 맛집 리스트업이 주방장이 될 실력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딱 잘라 말하는 그런 문장이었다. 그 많은 책들과 파일을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는 말도 있었다. 소중하게 적어주신 욕 한 바가지를 눌러쓰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지성인답게 속으로.
골백 번도 더 울다가 기껏 한 일은 모시조개를 잔뜩 사와 봉골레를 맛있게 해 먹는 것이었다. 날렵한 포크질과 스푼에 얹힌 파스타를 말아 입에 넣자 조금은 기운이 났다. 힘껏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파주 출판도시를 몇 달 동안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북한 공비'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소용없었다. 그렇게 주방을 뛰쳐나와 보니 세상이 얼마나 추운지 깨달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지만
그걸 확인하는 일이 이토록 비참할 줄은 몰랐다. 고마운 건 그때는 ‘현실’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런다.
"야, 니가 현실을 몰라서 그래."라고.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현실을 살지 않은 적이 없다. 현실을 몰라서 못 사는 게 아니라 살 수밖에 없어서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 이 새끼 현실감각 제로네."라고.
수억 마리의 꿈들이 절망에 빠트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런 현실감각 없이 난자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던 이들 아닌가. 눈 떠보니 여기에. 지금 여기에. 이 현실에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그렇게 나는 꿈을 다시 키웠다.
출판사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들어가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 유일한 열쇠가 ‘글’이었다. 출판사의 문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주문으로는 열리지 않았다. ‘열려라 참깨’ 따위로는 아무 소용없었다. 참신한 이야기, 흥미로운 주제, 그리고 구미를 당기는 문장력만이 출판사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지금 이 글 역시 그 문을 열고자 풀어대는 하나의 커다란 열쇠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제는 출판사의 문이 아니라 독자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해 버렸으니까.
‘열려라 참깨’는 결국 ‘열려라 구독’,
혹은 ‘열려라 구매’였던 것이다.
나의 첫 연재소설 [152번은 아직도 달린다]는 라멘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내 인생은 서른두 살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