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이라는 마취제와 잃어버린 실천의 야성(野性)
인류의 정신사는 거대한 망각의 역사다.
오늘날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저렴한 영성(靈性)은, 사실 고대 이집트의 헤르메스주의와 인도의 베다 철학, 그리고 19세기 신지학의 대모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복원하려 했던 ‘인간 의지의 연금술’을 가공하고 정제하여 유통시킨 조악한 복제품에 불과하다.
이 법칙이 현대인들에게 이토록 매혹적인 이유는, 그것이 니체가 선언한 ‘하나님의 죽음’ 이후 갈 곳 잃은 나약한 자아들에게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가장 손쉬운 환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의 근육이 거세된 대중이 열광하는 이 달콤한 복음은, 사실 고대의 비전(秘傳)이 가르쳤던 ‘우주적 인과율’에 대한 모독이며, 실천 없는 관념이 만들어낸 형이상학적 도주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 왜곡의 시원을 추적하기 위해 바울이 설계한 ‘기독교’라는 거대한 제도적 감옥을 직시해야 한다. 갈릴리의 개방된 지평 위에서 고대의 약초학적 신비(Muraresku의 가설_[불멸의 열쇠])와 동양의 지혜를 융합하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했던 혁명가 예수는, 바울에 의해 박제되어 유대교적 제사 시스템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예수는 신화다]의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겐디가 통찰했듯, 본래 예수라는 상징은 인간 내면의 에고가 죽고 신성이 부활하는 심리적 드라마이자 의식 확장의 매뉴얼이었다. 그러나 제도권 종교는 이 역동적인 ‘신이 되는 기술’을 압수하고, 그 자리를 ‘문자적 교리’와 ‘수동적 순종’으로 채워버렸다. 그 결과 인류는 우주와 직접 공명하는 법을 잊었으며, 이제는 그 잃어버린 기술의 조각들을 ‘끌어당김’이라는 이름의 상업적 패키지로 재구매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영적 아노미 상태에서 현대인이 매달리는 ‘과학’이라는 잣대는 더욱 기만적이다. 대중은 “그것이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모든 깊은 사유와 신비를 조롱하지만, 정작 현대 물리학의 정점에 선 신비주의적 과학자들이 발견한 우주의 실체—관찰자가 현실을 결정한다는 양자적 진실—는 읽어내지 못한다. 질문을 거세당한 대중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권 정치 아래 복종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유명인의 큐레이션이나 집단 무의식의 노예가 되어 ‘국룰’이라는 저급한 기준 뒤로 숨어버린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고전의 담론을 비웃는 이 ‘무식한 신들’은, 자기 수준의 욕망이 우주의 법칙과 공명하기를 기다리며 사이비 종교와 가짜 성공학의 늪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다.
니체가 한탄했던 ‘하나님의 죽음’ 이후의 풍경은 이토록 참혹하다. 스스로 기준을 세울 능력이 없는 자들이 신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들이 내뿜는 것은 창조의 에너지가 아니라 결핍과 요행의 비명뿐이다. 재래종교가 수천 년간 유효했던 이유는 그것들이 가진 ‘거대 담론’의 힘, 즉 옹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무장된 인과의 엄중함 때문이었다. 콩을 심어야 콩이 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 즉 ‘업(Karma)’의 법칙은 현대의 끌어당김이 놓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한 조각이다. 씨앗을 고르고 흙을 일구는 고통스러운 ‘훈련’ 없이, 오직 풍성한 수확을 시각화하는 것만으로 현실이 바뀔 것이라 믿는 퇴행적 사고는, 결국 자신의 수준 낮은 존재론을 우주 전체로 확장하려는 오만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지적 유희와 형이상학적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마주해야 할 최후의 심판관은 오직 실천이다. “JUST DO IT.” 이 투박한 명령은 나약한 자아들이 쌓아 올린 모든 변명과 기도의 탑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고전의 파괴력이다. 힌두교의 ‘산칼파’가 의도하는 성취도, 불교의 ‘사신족’이 가리키는 신통력도, 결국은 관념의 파동을 물리적 행동의 궤적으로 전환했을 때만 발생하는 사건이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한 적도 없는 환영이다. 우주는 간절히 원하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현실의 궤적 위에 묵묵히 내리꽂는 자의 발자국 소리에 반응한다.
결국 진정한 끌어당김이란 우주를 향한 구걸이 아니라, ‘훈련된 주체’가 자신의 운명을 직접 조각하는 가혹한 노동이다. 시류에 휩쓸려 국룰을 찾고 유명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무지를 감추는 나약한 자들에게 우주는 침묵할 뿐이다. 이제 관념의 유영을 멈추고 대지를 딛어야 한다. 신화가 가리키고 약초가 일깨우며 과학이 증명하려 했던 그 모든 진리는,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실행’이라는 단 하나의 문으로 수렴된다. 닥치고 행하라. 그것만이 당신이 이 혼돈의 시대에 가짜 신들의 난장판을 넘어 진짜 그리스도, 진짜 초인으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이다. 삶은 명상이 아니라 투쟁이며, 우주는 오직 그 투쟁의 현장에만 자신의 열쇠를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