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취재하던 무당과는 꽤 깊은 인연이 되어 친해졌다.
그녀의 신아버지를 비롯해 신할아버지뻘 되는 어른 신명들까지 직접 뵐 수 있었고, 굿당과 굿판에서 종종 인사를 나누며 교류했다. 나는 그녀가 무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올리는 큰 굿인 ‘솟을굿’을 마지막으로 교류를 잠시 멈췄다. 끊었다기보다 그녀와 나 모두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내가 현지의 터(지기)와 잘 맞지 않을까 봐 그녀는 걱정이 많았고, 나를 위해 초발원도 상당하게 해준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녀의 대감님, 할머니, 장군님, 애기씨 등 여러 신명(神明)께 귀한 술과 담배, 과자나 사탕 같은 것들을 올리며 정성을 보였다.
특히 이북굿(황해도굿)은 정성이 대단하여 준비하는 인원부터가 많다. 재가집이 굿을 한 번 치르려면 도와주는 무당들만 해도 어림잡아 서너 명은 족히 넘는다. 굿을 총괄하는 최고참 신할아버지가 계시고, 그와 함께 장단을 맞추며 자신의 직성을 풀고 사는 장구 할아버지 등 여러 조력자가 함께한다. 취재 차 방문해 인사드리면 대신할머니께서 금방 알아보시고는 “어디 어디 누구네 집 자손이 왔느냐”며 알은체를 해주셨고,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서 바로 영험한 공수(신의 말)를 내려주시기도 했다.
"지금 살려고 하는 차는 다음에 계약해도 돼, 이사는 3년 뒤에 해야 집이 나갈 거야."
한번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터 주인인 서낭할머니를 뵙게 해주겠다며 나를 기도터로 데려간 적이 있다. 보통 기도는 밤 11시, 자시(子時) 무렵에 드린다. 대개 서낭나무들은 군데군데 주인이 따로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큰 나무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무당들이 치성을 드린 흔적인 술과 고기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올린 것들은 다 치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 기도만 한다고 기도가 들어줄 리 없다).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그 오래된 고목에는 수많은 영가들이 깃들어 있었는데, 거기서 기도를 하면 일반인인 나 역시 그 형상들을 볼 수 있었다.
기도하러 가기 전, 그녀는 서낭할머니께서 드시고 싶어 하는 술과 음식이 무엇인지 맞춰보라며 숙제를 냈다. 술도 여러 종류, 먹거리도 여러 종류 중 한 가지씩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사 가면 여지없이 맞았다. 그녀가 물었다. “여기에 할머니 말고 또 누가 계시는지 기도하면서 한번 보세요.” 나는 큰 서낭나무 옆 담벼락에 어린 소녀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옷을 입었느냐는 물음에 “한복인데 녹색 빛깔 나는 옷이고, 비단 조끼를 입고 있네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오, 맞아요! 누구 같아요?”라며 놀라워했고, 우리는 그곳 기도를 마치고 다른 지역 서낭나무로 이동했다.
“여기서 다시 기도해 볼 거예요. 이 오방기를 줄 테니 기도하다 신명이 보이면 바로 하나를 드세요.”
눈을 감고 기도하자마자 16~1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내가 오방기를 들며 “어, 보여요”라고 하자 그녀가 생김새를 물었다. “노란 저고리에 연녹색 치마를 입고 있어요. 머리는 쪽을 졌고 얼굴이 아주 작고 하얀 것 같아요.”
눈을 감자마자 이렇게 바로 보이는 게 맞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보통 무당들도 그렇게 순간순간 스치는 형상으로 점사를 본다고 일러주었다. 그것을 훈련하다 보면 더 오랫동안 명확하게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어 또 보이는 분이 없느냐는 물음에 나는 답했다. “한 분 더 계신데, 빨간 모자(전립)를 썼고 붉은 옷(홍철릭: 붉은 무관복)을 입은 분이 나무에 매달려서 누가 왔는지 살피고 계시네요.” 그러자 그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아요! 그분이 바로 서낭장군님이세요!”
그럼 아까 본 여자아이는 누구냐고 묻자, 그 여기 서낭나무 바로 옆 무당 도령님의 몸주신이라고 했다. 워낙 고고하도 도도해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기도 중에 보였다는 것은 소원 성취를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신호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내가 기감(氣感)이 좋고 감응이 워낙 발달해 있으니 절대 혼자 기도터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혼자 가서 신을 부르다가 그것이 허주(잡귀)인지 진짜 신령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내게 집에서도 함부로 기도하지 말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무당들의 언어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일련의 행위 속에 있었다. 방울 소리에 익숙해지고 용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교감이 빨라진다. 그녀는 나를 곁에 두고 함께 일하고 싶어 했지만, 대놓고 솔직한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 내가 언젠가 유명해져서 분명 타락할 일이 올 것이니 그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자신을 떠나라고.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사장님(나)이 자기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무당들의 부정적인 이면도 낱낱이 알게 되었다. 무당들끼리 서로 엄청나게 시기하고 질투하며, 옷이나 차가 낡으면 무시하기 일쑤라고 했다. 그들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성형을 하며 외제차를 모는 것이 다 그런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재가집들 또한 무당이 겉으로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신뢰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전하며 그녀는 안타까워했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손님의 답답함을 알아주고 액운을 막아주는 게 무당의 본분 아니냐며 기가 차 했다.
굿당에서 거리를 진행할 때 그녀는 영락없는 신의 모습이었다. 특히 별상거리(작두거리)에서 별상장군이 강림하여 위용을 드러내며 작두에 올라탈 때 보면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단순히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부정을 쳐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두를 잡아주는 아저씨들은 입에 삼각형 모양의 종이를 물고 있고(부정치기), 신아버지는 무당의 발을 씻기며 장군님의 기운이 강림하도록 몰아준다. 장군님이 오시면 재가집이든 제자들이든 그 앞에서 절을 세 번 올린다. 그녀는 작두를 향해 계단을 밟고 뛰어 올라갔다. 온 무게로 짓누르는데도 발은 베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작두날은 아주 날카로웠는데, 그 서슬 퍼런 날에 얼굴을 문지르며 위용을 드러낼 때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온갖 부정한 것들, 액운, 병마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그 위세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작두거리를 하기 전, 시간이 날 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세 번째 작두 타는 날인데, 사장님 혹시 나 작두에 베어서 피 나면 119 빨리 불러줘요!”
그녀가 웃으며 말하길래 내가 “아, 날에 베이기도 하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그럼요, 엄청 많이들 베여요. 베이는 게 당연한 거죠. 저도 지금 얼마나 무서운데요. 하지만 그게 제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신령님이 실리면 저도 모르게 올라타게 되더라고요”라고 답했다.
곁에서 본 무당은 신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머지않아 교통사고 날 수 있으니 비방이라도 칩시다”라며 볶은 곡식을 내 차에 뿌려주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에 레미콘 차량이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골목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사고가 나 큰 화는 면했다.
그녀는 늘 정성이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했다. 신령님은 재가집 형편이 어려운 것도 다 아신다며, 뻔히 없는데 뭘 요구하겠느냐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마음을 읽고 집안 숟가락 위치까지 맞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령님이 하신 말을 무당 본인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그런 말씀 해주셨잖아요!”라고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많은 점사와 공수를 내뱉는데 그걸 다 기억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게 “사장님을 인간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혹여라도 인생에서 낙오되어 절에서 법경이나 읽는 법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나와 교류할 동안에는 전심으로 기도할 테니 사장님도 잘 버티고 견뎌야 합니다”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훗날 인연이 다해 연을 끊고 나서 나는 예상했던 대로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무당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런 상황을 입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 서낭나무 위에서 나를 지켜보던 빨간 모자의 장군님과 그녀의 진심 어린 기도가 생각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