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나?

우울할 때 남의 SNS를 보면 안 되는 이유

by 닥터맥리


예로부터 크게 되려면 외모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 배웠다.

학창 시절, 이 옷 입었다 저 옷 입었다 하며 거울 앞에 서있으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곤 했다.

용돈을 모아 옷을 사면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찼다.

'학생이 책을 사야지 옷은 무슨...'

나는 많이 궁금했다.

옷을 좋아하는 게 그리 나쁜 일인가?


옷을 좋아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마치 나의 평생의 숙원과도 같았는데

이참에 소비자만 구할 것이 아니라

옷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구하기 위해 패션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생존을 위한 패션

너무나 식상한 얘기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衣, 즉 옷을 제공하는 것이다.

선사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인간은 옷을 입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또한 옷은 신체를 보호함으로써 안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킨다.

특수한 상황에서 착용하는 의복에는 이러한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각각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 일을 수행하기 용이하면서 나를 표현하기에도 적당한 옷차림은 어떤 것일지 고민했을 것이다.

이렇듯 패션은 개인의 자기표현의 도구이기도 하다.

패셔니스타라 불리는 연예인들만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이 먹여 살리는 사람들

개인적 측면 외에 산업적,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떨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옷을 제공하는 양을 돈으로 환산한 것을 글로벌 패션 시장 규모라 한다.

글로벌 패션 시장규모는 2023년 기준으로 6730억 달러, 약 942조 원에 달한다.

2026년 대한민국 국가예산 727.9조 원보다 더 크다.


2025년 한국 패션시장 규모는 49조 6천억, 3만 개의 사업체와 16만 명이 패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패션에 관련된 산업 섬유, 제조, 물류 등에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면 76조 원, 21만 개 사업체, 56만 명이다.

이 얘기는 패션산업의 역할이 단순히 옷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섬유소재, 제조, 유통, 물류 등 연관 산업을 견인하는 것이며,

나라와 가정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패션은 개인적 측면에서나 산업적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션산업이 먹여 살리는 인구가 산업 종사자 56만 명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대략 150만 명 이상이 되고,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훨씬 넘는다)

#OOTD로 자신을 표현하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더 나아가 패션 테라피(Fashion Therapy)는 다양한 원인으로 우울감과 자존감 하락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치유 방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름신 아니고 치유신

그리고 한 가지 더.

쇼핑(특히 옷 쇼핑)은 치유적 효과(Therapeutic effect)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쇼핑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한다.

직장상사에게 깨졌을 때, 친구와 다퉜을떄, 부모님에게 혼났을 때

뭘 사지 않아도 그냥 매장을 구경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쇼핑이 가진 치유적 효과를 활용한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 또한

패션 테라피와 함께 치료의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혹시 리테일 테라피라는게 리테일러들이 만들어낸 말 아닐까?

정말 불안하고 우울해서 기분이 안 좋을 때 리테일 테라피가 효과가 있는 걸까?

효과가 있다면 어떻게 좋지 않은 기분을 개선시키는 걸까?


(또?!) 이 질문에 관심이 있는 후배와 함께 간단한 실험을 준비했다.

실험의 취지를 설명하고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룹 1. 리테일 테라피 그룹

그룹 2. 아무것도 하지 않을 그룹


두 그룹 모두 일단 기분을 좋지 않게 할 자극물을 제공했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사건사고들에 대한 기사들을 충분히 읽게 한 후

긍정적인 기분과 부정적인 기분을 측정해 기사들을 읽기 전 보다 기분이 좋지 않아 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룹 1은 일정시간 동안 온라인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도록 했다.

(관심 있는 제품들을 둘러보며 장바구니에 담는 등 결제 직전까지 쇼핑)

그룹 2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긍정적인 기분과 부정적인 기분을 측정하고 두 그룹을 비교했다.


짜잔!

결과는 쇼핑을 한 그룹의 부정적 기분 개선과 긍정적 기분 고양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룹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리테일 테라피의 효과가 검증되는 순간이다 야호!


그런데 혹시... '온라인 쇼핑'을 해서 기분이 좋아진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뭔가 활동을 했기 때문에 좋아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결과에 의심이 생긴다면 바로 다시 실험에 들어가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 완전히 다른 실험참가자를 모집한 후, 그룹을 나누었다.


그룹 1. 리테일 테라피 그룹

그룹 2. 온라인으로 쇼핑을 제외한 활동(온라인 브라우징)을 할 그룹

그룹 3. 아무것도 하지 않을 그룹

두 번째 실험은 첫 번째 실험과 모두 동일하게 진행하고 딱 한 가지만 달랐다.

그룹 2에게 온라인 브라우징(이메일 확인, SNS 보기, 온라인 검색 등등)을 하도록 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룹 1의 부정적 기분의 개선과 긍정적 기분의 고양이 그룹 2, 그룹 3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리테일 테라피 효과가 학술적으로 검증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기분전환용 쇼핑'이 정말로 효과가 있고

구입하지 않고 구경만 해도 그 효과는 충분했다.

더 나아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고, 그 제품의 상세한 설명을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행동을 하면서

이러한 활동을 잘 수행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효능감까지 증가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러니 옷을 좋아하고 쇼핑을 즐기는 건 혀를 찰 일이 아니라 매우 장려할만한 취향인 것이다.


우울할 때 남의 SNS를 보면 안 되는 이유

그런데 이 실험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재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세 그룹(리테일 테라피 그룹, 온라인 브라우징 그룹,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룹) 중에

부정적 기분의 개선과 긍정적 기분의 고양 효과가 가장 낮은 그룹은

온라인 브라우징 그룹이었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이메일이나 남의 SNS 보지 말고

차라리 그냥 쉬는 게 낫다.


결론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쇼핑을 하자.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아도 당신의 기분은 나아진다.

이메일이나 남의 SNS 볼 바엔

그냥 쉬어라.

별 도움 안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진정성도 통하지 않는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