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 TOMS 슈즈는 왜 어려움에 처했는가?
'이 제품을 구입하면 이익금의 일부가 결식아동의 식비지원에 기부됩니다'
'이 제품은 100% 재활용된 페트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제품은 생산자에게 적절한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물건을 구입할때,
서비스를 이용할 때,
커피를 마실 때 등등 이러한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때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다니, 정말 착한 기업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인데 이렇게 좋은 일을 그냥 할 리가 없지'라고
기업의 선의를 의심할 수도 있다.
패션에 민감하지 않더라도 30세 이상이라면 웬만하면 다 아는 신발 브랜드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TOMS 슈즈 되시겠다. TOMS 슈즈 한 켤레를 사면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학교에 가는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증할 수 있었던(1 FOR 1), 많은 사람과 기업에게 선한 의도를 실행하면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어 사회적 기업의 시초와도 같았던 TOMS 슈즈. 그 브랜드의 선한 의도에 동감해서이건, 그냥 신발이 예뻐서이건 이 신발은 한때 매우 핫한 아이템이었다.
TOMS 슈즈를 신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 의식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고, TOMS 슈즈 ceo와 직원들이 산더미 같이 쌓인 신발을 남아메리카까지 비행기에 싣고 가,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하나하나 신겨주는 'Giving trip'을 매년 진행했다. 이 감동적인 이벤트는 많은 PD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어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Giving trip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 전 세계에서 참가신청을 하고, 오디션을 통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한 의도를 실행하면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어 사회적 기업의 시초와도 같았던 TOMS 슈즈는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이 기업의 CEO는 본인은 'CEO'가 아니라 'CEG(Chief Executive Giver)'라고 소개할 정도로 진정성 있는 기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어려움을 겪었다. 2019년에는 채권단 공동관리(채무 재조정) 상태가 되었으나 최근 새로운 CEO(제시카 알싱) 부임 이후 브랜드 재도약을 추진 중이다.
TOMS 슈즈는 왜 어려움에 처했을까? 기부에 치중하다 보니 이익률이 낮아지고 경영난이 온 것일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진정성이 제일 중요하다더니 진정성만큼은 세계 최고인 TOMS 슈즈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가?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TOMS 슈즈의 주요 제품인 알파가타 이후 새로운 제품이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파가타 외 다른 제품을 내놓기는 했지만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신발 외 다른 제품(안경, 커피)으로 확장을 시도했지만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그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산업의 측면에서 파악된 원인 외에 더 '딥(deep)'하고 학술적이며 과학적인 이유를 파악하고 싶고, 그래야만 한다.
산업의 측면에서 바라본 원인은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TOMS 슈즈를 선택하지 않아서'이다. 두 번째 이유, 소비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학술적이며 과학적인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TOMS 슈즈를 선택해서'이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다시 말하면 소비자들이 ‘나 말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탐스 슈즈를 신음으로써 1 FOR 1을 실천했는데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도덕적으로 행동했으니 나는 덜 도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심리를 대리허용효과(vicarious licensing effect)라 한다.
대리허용효과(vicarious licensing effect)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행인을 붙들고 물건을 사달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상대방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며, 외면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 마침 현금이 없어서, 약속에 늦어서, 한 번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등등. 불편한 감정은 그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지속되고 다음날, 혹은 며칠씩 계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때가 있다.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언제일까? 바로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보았을 때’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이미 선한 일을 했으니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이러한 대리허용효과는 CSR을 실행하는 기업과 사회적 기업들이 풀어야 하는 매우 골치 아픈 숙제이다. 홍보가 잘 되고, 착한 제품이 많이 팔리면 일단은 좋지만 그 이상 확산되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심리가 원인이다. 이 심리를 줄어들게 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진정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성을 약화시키는 대리허용효과를 관리하는 방법은 있다. 이러한 대리허용효과로 인한 구매의도 저하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결과가 있다. (물론 나의 연구다) 나는 아래 그림과 같은 모형으로 그 효과를 검증하고자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호혜’라는 개념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좋은 일을 한 기업 or 사람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이 마음을 호혜라고 한다. 기업의 CSR을 보고 호혜의 감정을 느낀 소비자는 그런 좋은 일을 한 기업의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기업에 보답하고자 한다. 즉, 호혜가 구매의도를 직접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호혜가 직접적으로 구매의도를 증가시키기도 하지만 ‘기업이 저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나도 거기 참여하고 싶다’는 참여의도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 구매의도가 증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리허용효과는 호혜의 감정이 구매의도를 증가시키는데 이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대리허용효과는 또한 호혜에 의한 참여의도 증가도 방해한다. 즉, 대리허용효과 때문에 구매의도, 참여의도가 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TOMS 슈즈의 CSR에 대한 정보를 접한 소비자들은 감동을 받는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인데 이윤을 희생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 하다니…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일이다. 이 브랜드의 진정성에 감동하며 그 선행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앞서 언급한 호혜인지이다), 결국 그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그 브랜드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선행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동참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라?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탐스슈즈를 신고 있는데? 이건 이미 많은 신발들이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의미이다. 굳이 나까지 신발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대리허용효과가 작용한다. 결국, 그 브랜드의 선한 행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도, 그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의도는 줄어든다. 이 가설이 맞는지 검증한 결과는 어땠을까?
검증결과, 실제로 호혜가 구매의도/참여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대리허용효과가 감소시키는 것이 확인되었다. 위 그림의 숫자들은 영향력의 크기를 나타낸다. 파란색 화살표에 숫자가 대리허용효과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인데 부호가 마이너스이다. 이건 강도를 약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즉, 호혜가 구매의도에 0.248의 강도로 영향을 미치는데 대리허용효과가 이 영향을 0.190만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대리허용효과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남이 확인된 순간이다.
그렇다면 CSR은 하나마나 다 소용없는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위 그림에서 호혜가 참여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호혜가 참여의도에 미치는 영향은 0.415, 호혜가 구매의도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강하다. 이 경로를 대리허용효과가 감소시키는 정도는 0.152로 구매의도의 경우보다 다소 약하다. 즉, 기업이 소비자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저 활동에 내가 참여해야 뭔가 일이 제대로 되겠군’ 하는 생각을 자극해야(참여의도를 자극해야) 대리허용효과의 방해를 뚫고 구매의도가 증가한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기업이 나를 대신해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면 좋은 일을 하고도 그에 대한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진정성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 것인가' 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의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역 1번 출구에는 ‘건강 계단’이 있다. 계단을 밟으면 피아노 건반 소리와 함께 LED등이 반짝거린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이 계단은 서울시청, 이태원, 왕십리 등 서울시내 16곳에 설치돼 있다. 이 출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계단을 밟을 때마다 10원씩 기부금이 쌓인다. 바로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단을 이용하는 행인들은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773382#home) 왜 이렇게 복잡한 CSR을 실행할까? 그냥 현금으로 기부하면 끝날 일을 왜 계단을 설치하고, 사람들에게 이용하게 하고, 밟은 계단 수만큼 기부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까?
연구결과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 것인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