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나는 학부를 졸업하기도 전에 패션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지금은 패션의 여러 분야 중 한 분야의 PH.D.이며 패션 관련 학과의 교수다.
패션을 좋아하고 그날그날의 아웃핏을 선택하는 것은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관심 있는 브랜드의 신상품 쇼핑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모든 것들이 회의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아래 이미지를 봤을 때이다.
패션산업 그중에서도 패스트 패션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따라 소비자의 기호가 바로바로 반영돼 빨리 바뀌는 패션 브랜드,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소비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널드에 비견되어 맥 패션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어떤 것들인지 다들 잘 아실 테니 언급은 생략하겠다. (이런 브랜드를 SPA 브랜드, 스파 브랜드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표현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스파라고 하면 온천 혹은 목욕탕인 줄 아니까 주의하자)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들의 의류소비행동을 바꿨다. 여기 C대학 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가 있다. 옷을 구매하는 빈도가 한 달에 1-2번으로 매우 자주 구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떼'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한 달에 1-2번 옷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저렴한 가격에 매주 새로운 옷을 매장에 전시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 덕분이다. 패스트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과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80% 이상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옷을 사서 1-2개월 소비하고 버린다. 다음 해에 그 옷을 입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소비행태는 사진 속의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만들어낸다. 매년 1000억 톤의 의류가 만들어지고 330억 톤이 버려진다. 이 옷들은 대부분 폴리에스터, 나일론과 같은 썩지 않는 섬유로 만들어졌고, 분해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린다. 버려지는 옷들은 점점 지구의 큰 면적을 뒤덮고 있으며, 수백 년이 걸리는 분해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또 한 번 내 세계관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013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라나플라자가 무너졌을 때이다.
라나플라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사고 전 이 건물은 흔들리고, 단전과 누수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지만 건물주는 공장을 멈추지 않으려 안전진단을 하지 않았다.
안전이 의심돼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노동자들을 억지로 공장으로 들여보내기까지 했다.
이 사고로 130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내 쇼핑의 즐거움을 위해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난 너무 괴로웠다.
이러한 문제점이 계속 나타 나자 패션기업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환경과 근로자의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의 패션브랜드 'G-star'는 가수이자 디자이너인 퍼렐 윌리암스와 협업해 바다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단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H&M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의류를 선보이고,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의 H&M 생산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공표했다. 유니클로는 대량 판매한 제품을 수거해 다시 제품생산에 사용하는 리사이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디다스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팔리'라는 소재를 사용해 신발을 생산하고 판매량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그런데 … 이 활동들이 정말 실제로 패스트 패션 때문에 파괴되고 있는 환경을 보호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낮은 임금으로 목숨을 걸고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들일까?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환경을 보호하는데 왜 어려운 사람들은 계속 어렵고, 환경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걸까?
그건 기업들이 매출의 극히 일부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사용하면서 마치 어마어마한 금액을 사용하는 것처럼 홍보하기 때문이다. 퍼렐 윌리암스와 G-star가 바다에서 건진 폐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지는 바다에 떠다니는 1억 4,000만 톤의 플라스틱 중 단지 9톤을 건져냈다. 전체의 0.000006%다. H&M의 컨셔스 컬렉션은 겨우 89개의 플라스틱병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결의서에 서명하겠다 했지만 정당한 임금이 얼마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아디다스 팔리 에디션은 아디다스 전체 판매량의 0.5%에 불과하다.
이렇게 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 과장하여 광고·홍보·포장하는 행위를 환경을 뜻하는 'green'과 세척의 'washing'을 합성한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한다. 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친노동적 특성을 허위 과장하여 광고·홍보·포장하는 행위는 블루워싱(Bluewashing)이라 한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기업이 CSR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과장해서 홍보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그린워싱, 블루워싱이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진정성을 가지고 CSR을 행하는 기업까지도 '환경을 보호하는 척', '노동자를 위하는 척'만 하는 기업으로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기업이 '착한 척'만 하는 걸 소비자는 알까 모를까? 윤리적 소비자들이 기업의 그린워싱, 블루워싱에 속아서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답을 얻기 위해 늘 그렇듯 실험을 설계했다. 소비자는 CSR 활동을 보면 그 활동을 실행하는 기업의 선의를 지각한다. 선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넘어서서 상대에 대한 좋은 일을 하려는 의지, 염려, 돌봄으로 정의되는 이타적 선의이다 (Jarvenpaa et al. 1998). 상대방에게 뭔가 조건/대가/기대 없이 베푸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2. 상대방에게 뭔가 기대하는 바 -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잘해주겠지 하는 - 가 있어 베푸는 상호적 선의이다. 이는 상호 간의 실용적인 동기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다소 계산적이다(Nguyen 2010).
기업은 순수하게 상대에 대한 좋은 일을 하려는 의지, 염려, 돌봄으로 자선적 책임을 실행하기도 하지만 충성도, 기업 이미지의 개선, 태도의 변화와 같은 이익을 얻고자 자선적 CSR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기업의 CSR은 두 가지 차원의 선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가 CSR에 대해 인지하면 그 기업/브랜드의 선의를 지각한다. 그 선의는 두 가지이다. 무조건 베푸는 이타적 선의, 후에 뭔가 보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베푸는 상호적 선의. 소비자가 CSR에서 선의를 인지하면 그 기업/브랜드에 대한 구매의도는 올라간다. 선의를 지각하면 다른 감정도 생긴다. 기업/브랜드가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호혜의 감정이 그것이다. 주로 그 기업/브랜드의 제품/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보답하게 되므로 구매의도는 증가한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이 과정이 실재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소비자 3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조건 없이 베푸는 이타적 선의의 경우, 응답자의 이타적 선의에 대한 인지만으로도 구매의도는 유의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타적 선의를 인지하고 그로 인해 호혜의 감정을 느끼고 구매의도가 증가하는 경로도 유의미했다. 이타적 선의에서 구매의도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과 이타적 선의가 호혜를 유발해서 구매의도를 증가시키는 정도를 비교하는 수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검증해 본 결과, 이타적 선의가 구매의도에 미치는 직접적인 효과와 호혜지각을 통해 미치는 효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소비자가 패션기업/브랜드의 CSR을 보고 이타적 선의를 인지하면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체로도 구매의도를 증가시킬 수 있고, 그러한 활동으로 혜택을 받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감사와 보답을 표하기 위해 구매의도가 증가하는 경로가 비슷한 정도의 강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호적 선의는 어떨까? 그 자체만으로 구매의도를 유의하게 증가시키지만 그 강도는 매우 약했다. 이타적 선의의 효과와 산술적으로 비교하자면 (이것 역시 수학적인 방법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이타적 선의가 구매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상호적 선의보다 4배 강력했다. 그리고 호혜의 감정을 통한 구매의도 증가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소비자가 패션기업/브랜드의 CSR에서 뭔가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상호적 선의'를 인지하면 구매의도를 약하게나마 증가시킬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소비자가 감사의 마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 결과에서 우리는 식상한 얘기지만 ‘진정성’이 CSR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소비자가 패션기업/브랜드의 CSR에서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돕고 싶다는 진정성을 느끼면 이타적 선의를 지각하게 되고 이는 구매의도를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증가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구매의도 증가가 아니다. 그 기업/브랜드에 대해 감사와 보답의 정서(호혜)를 느낀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비자가 기업에 대해 감사와 보답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반면 진정성이 없어 그 CSR에서 상호적 선의를 강하게 느낀다면 아주 미미한 구매의도의 증가만이 있을 뿐이다.
이상의 실험의 결과에서 보면 소비자들은 이타적 선의와 상호적 선의를 구별할 수 있고, 진정성 유무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똑똑하다. 그렇다면 그린워싱/블루워싱에 현혹되어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계속 구입하는 것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런데 확률이 높은 정도가 아니라 확실히 아닌 것이라 확인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이 또 나의 연구자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구자적 호기심이 자극되었다는 건 ... 뭔가 또 다른 실험을 준비한다는 의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