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짜 윤리적인 소비자인가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윤리적 의사결정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와 세계화 덕분에 소비자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가장 낮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소비자의 집 문 앞으로 배달된다. 생산과 배송과정에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고, 낮은 가격과 효율을 추구하는 서플라이체인에서 누군가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데 주로 가장 약한 고리들이 희생당한다. 우리가 누리는 저렴한 가격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저렴한 가격 때문에 즐겨 찾는 브랜드들이 노동을 착취한 대가로 엄청난 이윤을 얻는다는 것을. 그런데 알면서도 왜? 그 브랜드의 제품을 계속 구입하는 것일까? 모르고 구입하는 것보다 알면서 구입하는 게 더 나쁘다. 왜냐하면 모를 때는 느끼지 못하던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부정적인 감정이다.
나는 죄 없는 소비자들을 죄책감에서 구하고 싶다. 그리고 저임금에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제 몫을 찾아주고 싶다. 그러려면 알아야 한다. 도대체 왜 스스로를 윤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소비들은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일까?
PwC Voice of the Consumer 2024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자의 약 80% 이상이 지속가능하게 생산된 상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으며 지속가능한 제품에 평균적으로 약 9.7%의 추가 가격(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한다고 했다. YouGov 국제 설문 (2023) 결과는 더 구체적인 수치를 알려준다. 지속가능한 포장 식품 및 음료의 경우, 응답자의 53%가 최대 10%까지 더 지불할 의향을 보였고, 21%는 최대 25%까지, 일부는 이보다 더 높은 프리미엄도 고려한다고 했다. 패션제품은 어떨까? 캐피털원쇼핑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전체 소비자 중 약 15%가 친환경(eco-friendly) 패션 제품에 대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을 표명했다. 특히 Z세대 소비자 62%는 패션 포함 다양한 제품에 대해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선호하며, 73%는 지속가능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소비자의 미래인 젊은 층의 윤리적 소비 의향이 특히 높음을 보여준다.
이 통계가 사실일까? 저명한 기관의 조사결과를 의심한 것은 아니고 내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소비자 326명을 대상으로 윤리적 소비주의에 대해 질문했다. 윤리적 소비주의는 ‘긍정적 구매 (positive buying)’ 혹은 도덕적으로 구매를 거부하는 (moral boycott) ‘부정적 구매 (negative purchasing)’ 등을 통해 실현되는 소비자 행동주의의 한 유형이다 (Wikipedia). 윤리적 소비에 동의하는 정도로 윤리적 소비주의를 측정했는데 7점 만점에 평균 5.3점을 나타내 스스로를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수치가 믿을 수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게 할 만큼 가혹하다. 영국을 기반으로 한 공정무역·윤리적 패션 브랜드 People Tree는 2023년 영국사업부를 청산(liquidation)했다. 가혹한 현실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기반 공정무역·친환경 패션 브랜드 Autonomie Project는 현재 운영 중단(Defunct) 상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의심?해야 한다. 첫째, 많은 소비자가 윤리적 제품을 원한다고 응답은 하지만, 실제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태도-행동 간 격차(attitude-behavior gap)다. 이 gap은 소비자행동과 심리학 분야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태도나 의도가 곧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응답자는 설문조사에 100% 진심을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고 하지 않는가. 이는 타인을 의식하는 경향과 그로 인한 '인상관리' 때문이다. 누가 볼지 보지 않을지 모르는 설문조사 응답지에 조차 타인을 의식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답을 적는 그대. 결국, ‘윤리적 소비자’ 임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실은 그렇지 않은, 혹은 생각보다 덜 윤리적인 소비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실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생각, 태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기 보고식 설문을 사용해 연구를 진행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응답자의 더 솔직한 답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암묵적연합검사(Implicit Association Test, IAT)이다.
암묵적 연합검사는 응답자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두 가지의 개념과 두 가지의 속성을 강하게 연합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특정개념과 그에 대한 평가 간의 연합에 대해 응답자가 반응하는 시간(리액션 타임)을 측정하고 비교해서 실제로 그 개념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응답자의 무의식적인 반응 시간으로 해당 개념에 대한 태도를 확인하므로 설문지로 측정하는 것보다 거짓 응답을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으며(Steffens & Schulze König, 2006),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 고백적(self-report) 방법보다 타당성이 높다(Nosek et al., 2009). 이 방법은 우리의 머릿속에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은 유쾌한 단어와 더 강하게 연합되어 있고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은 불쾌한 단어와 더 강하게 연합되어 있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듯, 우리의 신체는 가깝다고 느끼는 개념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그 찰나의 속도가 당신의 진심이다)
컴퓨터 화면에 (1) 유쾌한 단어(예: 행복)가 나오면 오른쪽 키를 누르고 불쾌한 단어(예: 악마)가 나오면 왼쪽 키를 누르게 하는 반응과 (2)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상징하는 자극(예: 꽃이름, 출신지역 정치인 이름)이 나오면 오른쪽 키를 누르고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을 상징하는 자극(예: 벌레 이름, 비출신지역 정치인 이름)이 나오면 왼쪽 키를 누르게 하는 반응을 짝지은 과제(양립가능한 과제)의 반응시간이 (1)과 (3)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상징하는 자극이 나오면 왼쪽 키를 누르고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을 상징하는 자극이 나오면 오른쪽 키를 누르게 하는 반응을 짝지운 과제(양립 불가능한 과제)의 반응시간보다 빠르게 나오는 정도를 측정함으로써, 고정관념, 편견, 또는 태도의 강도를 무의식적 또는 암묵적 수준에서 측정한다 (나은영 2000,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0530&res=y).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https://implicit.harvard.edu/implicit/korea/를 방문하면 다양한 종류의 암묵적 연합검사의 예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윤리적인 소비자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실제 태도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나의 순수한 호기심? 심증?을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계획했다. 소비자들 중에서는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경제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설문조사에서 ‘조금 비싸더라도 윤리적/환경친화적 방법으로 생산된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이익이 중요하다. 실제로는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조금 비싼 윤리적/환경친화적 방법으로 생산된 제품’을 구입할 의도가 낮거나 없지만 설문조사에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응답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소비자들이다. 이러한 소비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253명을 실험대상으로 선정했다.
먼저 암묵적 연합검사를 실시했다. ‘좋음’과 연합되는 단어(기쁨, 사랑, 평화, 훌륭함, 즐거움, 영광, 웃음, 행복)와 ‘나쁨’과 연합되는 단어(고뇌, 무서움, 끔찍함, 추잡함, 사악함, 지독함, 실패, 상처)를 제시해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를 측정하고 ‘도덕적’과 연합되는 단어(옳음, 공익, 이타적, 도덕, 공동체, 선의, 윤리, 정의)와 ‘경제적’에 연합되는 단어 (성과, 물질적, 소유, 경제적, 이익, 생산성, 계산적, 금전적)를 제시해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를 측정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덕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좋음’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 ‘경제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나쁨’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를 측정한다. 반대로 ‘도덕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나쁨’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 ‘경제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좋음’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를 측정한다.
암묵적 연합검사 후, 도덕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중요도를 질문했다.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응답자들은 ‘도덕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좋음’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가 ‘도덕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나쁨’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보다 빠를 것이다. 반면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응답자들은 ‘경제적’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좋음’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연합에 대한 반응속도가 빠를 것이다. ‘경제적’과 ‘좋음’의 연합에 빠르게 반응한 응답자들이 윤리적 소비, 공익 등에 관련된 도덕적 가치에 높은 점수로 응답했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답변을 함으로써 인상관리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분석결과는 흥미로웠다. 암묵적 연합검사 결과, 253명 중 211명이 도덕적-좋음 연합에 더 빠르게 반응했다. 경제적-좋음 연합에 더 빠르게 응답한 응답자는 42명, 응답자의 16.6%에 불과했다. 즉, 응답자의 대부분이 시 실제로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집단의 도덕적 가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응답은 어땠을까? 분석결과는 더욱 흥미로웠다. (편의상 도덕적-좋음 연합에 더 빠르게 반응한 집단을 도덕적 집단, 경제적-좋음 연합에 더 빠르게 응답한 집단을 경제적 집단이라 하겠다) 우리는 앞서 도덕적 집단은 도덕적 가치를 높게, 경제적 집단은 경제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두 집단이 도덕적 가치, 경제적 가치를 묻는 7개의 문항에 7점 만점으로 응답한 점수의 평균점수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도덕적 집단이나 경제적 집단이나 도덕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에 대해 비슷한 평가를 했다는 얘기다. 혹시 두 집단의 응답자 수의 차이가 커서 평균비교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도덕적 집단에서 무작위로 경제적 집단과 비슷한 수의 샘플을 선택해 평균비교를 했는데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보다 실제로 훨----씬 많음을 의미한다. 암묵적 연합검사로도 확인된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은 적어도 실험의 대상이었던 한국 소비자들에겐 디폴트값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문조사에서 ‘조금 비싸더라도 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겠다’에 압도적인 동의가 나타나는 것이겠지. '나는 윤리적 소비자'라는 응답이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소비자가 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태도-행동 간 격차(attitude-behavior gap)' 때문인가? …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의문이 나의 학자적? 학문적? 혹은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제부터 왜 윤리적 소비자는 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안' 사는지 탐구해 보는 여정을 시작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