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집으로 가는 길, 첫 번째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
1. 집으로 가는 길, 첫 번째
환자가 있으니 조심해 달라고 어머니가 미리 부탁을 해둔 탓인지 운전기사는 과속방지턱을 되도록 부드럽게 넘어가려 애쓰고 있다. 그게 느껴진다. 그래도 때마다 시술받은 부위가 울려서 통증이 이는 것은 속절없는 노릇이다. 진통제 처방을 받았는데, 약기운이 떨어진 모양이다. 하긴 아직 점심 약을 먹지 않았으니까. 다음 외래진료 날까지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약에는 항생제도 포함돼 있다. 이 정도로 수술 부위가 덧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위로한다.
이면도로가 길다. 지름길임을 알지만 과속방지턱이 생각보다 제법 많다. 운전기사도 이런 문제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겠지. 참는 수밖에. 어머니 눈치를 살피고, 기사의 눈치도 살핀다. 아픈 내색을 할 수 없다. 환자가 성한 사람들 눈치를 보자니, 힘겹다. 드러누울 수가 없어 자세를 어떻게 하고 있어도 불편하다. 왼손을 엉덩이 밑에 집어넣고 몸을 버티면서 조금이라도 차의 진동을 줄여본다. 거북하다. 오래는 못한다. 체념한다.
고개를 뒤로 젖혀 좌석 등받이 운두에 머리를 얹는다. 몸이 그것을 눈치채고 당장 늘어지려 한다. 몸이 요구하는 대로 아주 힘을 빼고 후줄근히 기대고 싶지만, 통증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 좀처럼 알맞은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몸이 또 긴장한다. 그 느낌이 싫다. 그런데도 긴장은 강렬한 자석 둘레로 모여드는 쇳가루처럼 내 몸 구석구석에 단단히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감기몸살로 열이 날 때처럼 몸이 어슬어슬하다. 택시에 막 올라탔을 때 에어컨을 꺼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오른손 중지 끝으로 단추를 눌러 차창을 살짝 내린다. 이마와 목덜미에 와닿는 바람이 따스하다. 느낌이 좋다. 확실히 몸이 허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닥쳐올 더위를 견디기에는 차라리 이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 가운데서는 제일 희망적인 생각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들이 짙푸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숨 쉴 틈 없이 반짝이는 햇살이 눈부시다. 여름의 문턱이다.
이상 징후는 진작부터 있었다. 내가 똑똑히 냉큼 알아차리지를 못했을 뿐이다.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나 있었다. 그런 성격의 상태가 아니었다. 화학과 물리학의 차이라고 하면 될까. 그래도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었다. 담당의는 CT사진을 확인하자마자 금세 결정을 내렸다. 내가 보기에도 증세는 너무나 확연했다. 그냥 두기에는 덩어리가 너무 컸다. 입원 수속을 마치기 무섭게 수술실에서 호출이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런 준비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수술실은 구경조차 한 적이 없었다. 팔에 링거주사를 꽂은 채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입원실에서 수술실까지 걸어서 갔다. 그동안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순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어려운 시술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따위 위로의 말은 누구의 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런 기대 따위 어울리지 않았다. 환자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와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누구한테도 불평할 수 없었다.
시술 과정에 대한 설명은 담당의의 몫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꼭 담당의가 설명을 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어려운 시술이 아니거나. 한눈에도 나보다 일여덟 살쯤 어려 보이는 의사였다. 전공의 같았다. 그들끼리는 선생으로 불렀다. 이름 뒤에 붙은 선생이라는 호칭만으로는 그렇게 불린 의사가 병원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 자리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아 나는 조금 불안했다. 시술은 어쩌면 실습 차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환자를 빙자한 실습도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 젊은 의사가 수술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조그마한 여자는 어머니였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을까. 실은 두 사람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남자가 아버지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그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얼마 만인지 얼른 가늠되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간호사를 앞세우고 나타나기가 무섭게 앉아 있던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다가오는 두 분의 모습이 기분 탓인지 조금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내색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눈빛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설명될까. 거꾸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두 분이 있어야 할 자리가 뒤바뀌어 있었다. 이게 아닌데. 껄끄러웠다. 낭패스러웠다.
젊은 의사가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순간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의사인 자신만의 것이라는 듯 당당하게.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나는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조명에 의사의 정수리 부분이 허옇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석회 가루를 한 줌 흩뿌려놓은 것 같았다. 이 친구, 어쩌면 생각보다 나이가 더 든 게 아닐까. 아니면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일까. 하기야 업무가 과중하지 않을 리 없지. 그제야 나는 의사가 나보다 키가 작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 서서 그 의사를 본 적이 없었다.
의사의 말은 명쾌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그렇게 하면 인사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간단한 시술이라는 것일까. 의사는 들고 있던 차트의 하얀 여백에 기어이 볼펜으로 그림까지 그려서 보여주었다. 의사는 나더러 수술실 앞의 양쪽 벽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의사는 선 채로 설명했고, 나도 우두커니 서서 의사의 건조한 설명을 들었다.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걸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진료실에서 들을 때보다 한 옥타브쯤 높아진 목소리. 그렇죠. 칼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배꼽 옆 한 뼘쯤 되는 자리에 구멍을 뚫습니다. 크지 않아요. 기껏해야 볼펜 심 정도 굵기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의사는 손에 쥐고 있던 모나미 볼펜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물론 국부마취를 할 거니까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뱃가죽과 콩팥 사이에 놓여 있는 이 복강에 가느다란 터널을 만들어 그리로 얇은 관을 밀어 넣는 겁니다. 여기까지요. 그러면 콩팥과 뱃가죽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거지요. 이렇게요. 의사는 볼펜으로 콩팥과 뱃가죽을 잇는 직선을 쭉 그었다. 이 관을 통해서 콩팥의 물혹에 고인 이물질을 밖으로 빨아내는 겁니다. 이게 전붑니다. 흉터도 별로 안 남아요. 간단하지요? 의사는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쩐지 목이 잠겨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역시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구멍을 뚫고 속엣것을 빨아내고 뒤처리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삼십 분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설명을 끝내면서 의사는 싱긋 웃어 보였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웃음인지, 자기 설명에 스스로 만족했다는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의사가 말한 뒤처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물어 확인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수술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떠올랐다.
수술실 문이 닫히기 전에 딱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몇 발짝 더 멀어졌다고 벌써 표정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아서 좋을 것도 없었다. 두 분 뒤 저편으로 성큼성큼 멀어져 가는 젊은 의사의 흰색 가운이 힐끗 엿보였다. 홀가분한 걸음이었다. 그럴 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투명한 수술실 유리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의 머리가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잠이 든 것이다. 야윈 목덜미가 바짝 마른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금세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다. 요즘 들어 차만 타고 앉으면 저렇게 비루먹은 병아리처럼 시도 때도 없이 꾸벅꾸벅 존다고 옆에 앉은 어머니가 핀잔하듯 한 마디 쏘아붙인다. 그 나지막한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나는 눈을 감는다. 역시 아버지도 세월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뜻인가. 늙어가는 것이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헷갈린다. 아버지처럼 잠들어버리고 싶은데, 몸이 불편한 탓일까. 잘 안 된다. 어차피 잠시 뒤에는 내려야 한다. 마음을 접는다.
익숙한 풍경이 나타난다. 십수 년째 보초를 서듯 우직하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허름한 파출소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왕복 사 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맞은편 길가에 비좁은 운동장을 끼고 들어앉은 아담한 중학교 교사도 세월을 무시하듯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서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하면 바로 집까지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머리 위 높은 곳에서 거대한 이무기의 몸통 같은 길고 두꺼운 그림자를 위압적으로 드리우며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는 내부순환도로를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풍경이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동네. 개발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동네다. 재산증식 차원에서 별 매력이 없는 변두리라서일까. 집값도 십수 년째 제자리걸음이다가 최근에야 뉴타운 사업의 여파로 마치 길고 긴 겨울잠을 자던 곰이 따스한 봄을 맞아 슬며시 눈을 뜨고 오래도록 굳어 있던 뼈마디를 힘겹게 우두둑거리며 기지개를 켜듯, 비로소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글쎄, 주민들은 이 사태를 진심으로 반기고 있을까. 모든 것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불확실한 앞날임을 그들이 모를 턱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동네였다. 집에 있을 때나 골목을 걸을 때나 늘 깊은 늪 속에 가라앉아 있는 듯 숨이 막히고 정체되는 기분이었다. 폐의 건강에 안 좋은 농도 짙은 습기로 속옷까지 늘 축축하게 젖어 있는 듯한 불쾌감. 집도 떠나고 싶었고, 동네도 떠나고 싶었다. 가족도 싫었고, 동네 사람들도 싫었다. 나쁜 균이 온몸에 스며들어 신진대사가 방해받는 느낌, 그래서 몸이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병드는 느낌. 달아나야 한다. 그게 내가 살 길이다. 그렇게 스스로 닦달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겨우 떠났나 싶었는데, 이제 꼼짝없이 몸이 회복될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이대로 영원히 주저앉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몸조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지막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함정에 빠진 기분이다.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다. 이 동네의 기운이 나와 맞지 않는다. 상극이다.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나한테 경고를 보내온다. 금지의 신호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든 감각의 항의를 달래야 한다. 숨쉬기가 버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