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집으로 가는 길, 두 번째
2. 집으로 가는 길, 두 번째
처음이었다, 그런 느낌은. 뼈저렸다. 죽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 순간 죽음은 나한테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느꼈다. 너무 가까웠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리였다. 받아들일 준비를 미처 갖출 새도 없이 성큼 다가와 있는 죽음 앞에서 나는 모든 자신감을 잃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거부해야 할지,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다가와 버린 죽음은 누워 있는 내 얼굴 위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높이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느닷없는 맞대면. 어떻게 해주랴? 지금 바로 데려가주랴? 아니면, 하루이틀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주랴? 죽음은 그렇게 나한테 묻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마취약이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감고 싶었지만, 감는 순간 죽음이 그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나를 데려가라는 뜻으로 알아들을지도 몰랐다. 겁이 났다. 무서웠다. 하지만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었을 뿐, 내 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그게 맞다.
입원도 처음이었고, 수술실도 처음이었다. 한없이 낯설었다. 그렇다고 그저 낯설기만 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어떤 극한의 느낌이 섞여 있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 암흑으로 가득 찬 무한한 우주공간의 냄새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냄새. 다른 차원, 다른 공간의 냄새. 인간이기를 그만둘 때 비로소 맡을 수 있는 냄새. 은하계 저편의 외계인들이나 하늘나라의 천사들만이 늘 맡으며 살고 있는 냄새. 떠도는 공기의 질이 달랐다. 분명히 서늘한데 공기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서늘하다기보다는 차라리 따뜻한 느낌에 가까웠다. 벌꿀만큼이나 끈적끈적한 질감의 기체가 구석구석 가득 차 있었다. 숨쉬기가 버거웠고, 발걸음 옮기기가 힘겨웠다. 앞으로 잘 나아가지지 않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튼튼한 밧줄로 포박당해 거동이 몹시 불편한 상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그저 고분고분 따르는 것뿐이었다.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마음가짐. 나는 한없이 위축돼 있었다. 내가 그토록 순종적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도 그 순간의 나보다 더 고분고분할 수 있을까.
의사는 말했다. 아주 천천히 회복될 겁니다.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정확히 얼마 만에 몸을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달이면 한 달, 두 달이면 두 달, 아니면 그 이상. 하지만 의사는 내가 원하는 답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의사 본인도 정확히는 모르는 게 아닐까. 아니면 환자마다 격차가 너무나 커서 그 기간을 특정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어렵사리 추측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인내심이라는 말이었다. 인내심이 필요한 만큼의 기간. 내가 인내심 없이 견딜 수 있는 기간은 어느 만큼일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게 고통이 될까. 아니, 고통이기만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었다.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회복은 된다는 것. 그러니 기다리라는 것. 의사의 그 말 앞에서 환자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믿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퇴원 이후였다. 대책이 필요했다. 아주 실질적인 대책, 인내심이 필요한 동안의 대책이. 집으로 오너라. 어머니가 말했다. 같이 있자. 니 힘으로 밥 먹고, 니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만 나하고 같이 지내자. 그게 옳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었다. 아내더러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내 병수발을 들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사님의 배려로 명목상 처리되기는 장기 휴직이었지만, 급여가 끊기는 셈이니 나는 사실상의 사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아내 쪽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유일했다. 생업이란 줄일지언정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 한 순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아이가 둘인 형편에 따로 돈을 들여 사람을 쓰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속절없는 노릇이었다. 발 들여놓고 싶지 않은 동네, 얼굴 맞대고 지내기 싫은 아버지였지만, 감수할 수밖에. 체념. 나는 어머니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세상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아지리라는 것을 전혀 예측 못한 시절에 조성된 골목이다. 주차 공간이 충분할 턱이 없다.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나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을 양이면 숫제 들어서지 않는 편이 낫다. 자칫 앞뒤로 차량끼리 마주치기라도 하면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처음부터 밝혔다. 행여 기사의 비위를 거스를까 싶어 한껏 다소곳한 목소리로. 죄송하지만 환자가 있으니 골목 안까지 좀 들어가 주실래요? 보통은 골목 초입에서 내려 걸어가야 할 테지만, 처지가 처지인지라 나는 잠자코 있었다. 비좁고 굴곡진 골목을 조심스레 지나느라 차가 이리저리 자꾸 기우뚱거린다. 몸이 새로 긴장한다. 차창 밖 풍경이 갑갑하다.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주택들에 가려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기사도 조금씩 언짢아하는 기색이다. 나는 그의 뒤통수만 힐끗거리고도 그걸 안다.
택시가 완전히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연다. 바깥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생각보다 서늘하다. 내리려고 몸을 열린 문 쪽으로 돌리려는데 번개같이 시술받은 부위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인다. 잠시 잊었다. 하나의 동작을 수행하는 데 몸 전체가 동원되는 메커니즘을 나는 다시 한번 소스라치며 깨닫는다. 한 가지의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의 시작. 처치를 받고 입원실로 실려 온 다음부터 내 몸은 아주 간단한 움직임 하나를 위해서도 많은 사전준비를 해야 했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식사를 하려고 윗몸을 일으키는 동작 하나에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온몸의 협동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힘은 내 몸 구석구석으로 고루 나뉘었다. 아니, 온몸 구석구석이 고르게 자기 힘을 내놓았다. 하지만 고통은 온전히 시술받은 부위의 몫이었다. 협동과 고통. 고통은 결코 나뉘지 않았다. 내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온몸의 모든 부위가 아낌없이 힘을 합쳤지만, 고통만은 결코 분담할 뜻이 없었다. 내 뱃가죽은 난생처음 홀로였고, 외로웠다.
나 혼자 힘으로 두 발을 땅에 딛고 내려서야 한다.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작이 아니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몸의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힘을 나누어 보낼 수가 없다. 오로지 통증이 일렁이는 곳으로만 힘이 몰린다. 거기에만 힘이 필요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맹목적인 착각이요 확신이다. 힘이 몰릴수록 통증은 더욱더 새파랗게 날을 세운다. 억지로 힘을 흐트러뜨려 본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허리를 펼 수 없다. 벌써 요금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린 아버지가 꼼짝 않고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 눈길을 느낀다. 안쓰러워하는 눈길일 테지만, 나는 그걸 질타로 느낀다. 걸음마 하나 제대로 못해? 등신이 따로 없구나. 환청이다.
아버지와 딱 한 번 제대로 마주 앉아 장기를 둔 적이 있다. 아니, 바둑이었던가. 초등학교 때였다. 장기든 바둑이든, 생판 처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와 일대일로 마주 앉은 자리라서인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내가 아버지와 그런 걸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뜻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감히 아버지와는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그랬을 리는 없으니까. 그때 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버지를 이길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웬만큼은 둘 줄 아는구나, 하는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따져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한 수를 두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이것저것 바삐 머리를 굴리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참다못한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찬물을 끼얹듯 쏟아져 내렸다.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 시간 다 보낼래? 이놈, 이거 바보 아냐! 그다음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머릿속이 그만 하얗게 되고 말았다.
그때 그 목소리가 새삼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몸이 또 긴장한다. 내 의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눈길을 나는 의식한다. 의식하려는 나와 의식하기를 싫어하는 나. 그 둘이 충돌한다. 승리는 언제나 의식하려는 쪽의 것이 된다. 그 눈길이 나를 함부로 부추긴다. 아버지의 말 없는 눈길은 언제나 나를 떠다민다. 대책도 없이 떠밀리는 그 느낌이 싫다. 추궁의 느낌, 꾸중의 느낌, 질타의 느낌. 그런 느낌들이 하나의 굵고 거친 포승줄이 되어 나를 제멋대로 휘감는다. 그렇게 떠밀려서 나는 마침내 두 발을 땅바닥에 딛고 택시 밖으로 내려선다. 그래도 지팡이 짚은 노인네처럼 꾸부정한 자세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반듯하게 서지질 않는다. 내 척추 속에 딱 그만큼 구부러진 철근이 세로로 길게 박혀 있는 것처럼. 한심한 기분이 든다. 억지로 허리를 펴려다가 그만 폭풍처럼 휘몰아쳐 오는 사나운 통증에 굴복하고 만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호흡이 가쁘다. 한데도 이상하게 땀은 나지 않는다. 내분비계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그럴 수밖에. 내 몸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어지럽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비행기에서 기압 차이로 귀가 먹먹해질 때 마른침을 꿀꺽 삼켜 고막 안팎의 균형을 맞추듯이.
아버지는 나를 부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내 눈치만 살피며 우두커니 서 있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늘 그랬다. 그게 아버지다. 나머지는 어머니 몫이었다. 어쩌다 결정이 자기 책임이 되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일을 망쳤다. 신기하게도 망치는 쪽으로만 결정을 내리는 그 끔찍한 일관성. 뒷수습은 마땅히 또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는 망치고 어머니는 수습한다. 고약한 구도다. 아버지는 이웃과 불화하고, 어머니는 성난 이웃을 달랜다. 사죄도 한다. 아버지는 돈을 날리고, 어머니는 허리끈을 졸라맨다. 아버지는 밥상을 집어던지고, 어머니는 밥을 다시 짓는다. 나는 그걸 속수무책 구경만 한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다. 처리할 방도가 없다. 그렇게 일을 망가뜨린 아버지가 숨을 곳은 어머니 등 뒤밖에 없다. 망가뜨리는 쪽과 숨겨주는 쪽. 저지르는 쪽과 정리하는 쪽. 어지럽히는 쪽과 청소하는 쪽. 그러니 우리 집은 기껏해야 현상유지였다. 살림은 좀처럼 나아질 틈이 없었고, 이웃 간에 평판은 나빠져만 갔고, 내 감정은 자꾸만 헐어갔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낙으로 그걸, 그 세월을 견뎠을까.
옆에서 누가 황급히 내 팔을 붙잡는다. 어머니다. 보지 않고도 안다. 나는 그 손을 슬며시 뿌리친다. 혼자가 더 편해서다. 어머니는 내 뜻을 금세 알아차리고 물러난다. 마침내 집을 바라고 걷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