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집으로 가는 길, 세 번째
3. 집으로 가는 길, 세 번째
등 뒤로 택시가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듣는다. 통증이 일까 두려워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엔진음이 퉁명스럽다. 어쩌면 지금쯤 기사는 후면경으로 이쪽을 힐끗거리며 한두 마디 욕설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불친절한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많다. 이걸 알면 어른이고, 모르면 어린아이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기 시작한다. 집은 차가 더는 들어올 수 없는 좁다란 일직선의 골목 끄트머리에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벌써 대문 앞까지 가 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정확히 백스물다섯 걸음이다. 이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는 입맛이 없을 때 밥알을 헤아리듯 발걸음 수를 세곤 했다. 그래도 백스물다섯 걸음은 금세 끝나버려서 나를 곧잘 실망시켰다. 그 얼마 안 되는 거리가 지금 나한테는 한없이 멀고 멀다. 아무리 걸어도 자꾸만 늘어나는 마법의 길처럼. 두 걸음 걷고 쉬고, 또 두 걸음 걷고 쉰다. 이상하게도 한 번에 두 걸음까지는 걸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한 호흡에 두 걸음밖에는 못 걷는다는 뜻이다. 더는 안 된다, 정말로. 한 걸음만 더, 하고 욕심을 내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온다. 어느새 내 몸이 마련해 둔 규칙이다. 내 뜻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제멋대로 만들어놓은 규칙. 몸이 강요하는 규칙. 따를 수밖에 없는 규칙.
의사들과 같은 초록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여인이 내 주변을 서성거리며 자꾸 말을 붙였다. 간호사 같지는 않았다.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업무영역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수술실 안에서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수술대 위에 누운 채로 여인의 말을 들었다. 하나같이 쓸데없는 말들이었다.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또 했다. 처음에는 귀찮게 왜 자꾸 말을 거나 싶었는데, 같은 질문을 거듭해서 듣는 동안 비로소 그 또한 여인의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근무 지침이다. 여인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인이 다시 묻는다. 이동식 침대에 눕혀서 데려오라고 했을 텐데, 걸어오게 하던가요? 벌써 세 번째다. 목소리는 친절하다. 나는 두 번째부터 대답을 했다. 짧게 한 마디. 예. 더는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은 질문하는 걸 그만둘 기세가 아니었다. 내가 심리적으로 꽤나 위축되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은 네 번째로 연거푸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이구나. 겨우 이해했다. 여인이 하는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 받는 동안 정말로 마음이 안정되고, 신기하게도 공포가 사그라졌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수술대 위에 눕자마자 의사는 몸을 뒤집으라고 하고는 내 엉덩이에 주사를 놨다. 왼쪽에 한 번, 오른쪽에 한 번. 무슨 주사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한 마디. 나른하실 겁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거든요. 은근하고 친절한 말투인데도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다. 무슨 경고나 엄포처럼도 들렸다. 수술실에서는 모든 게 기본적으로 차갑다. 의사의 말은 거짓도 과장도 아니었다. 주사를 맞자마자 정확히 삼 초 만에 온몸이 따스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한여름의 엿가락처럼 온몸 구석구석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지없이 편안하기는 한데,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살갗에 와닿는 수술실 공기는 차가운데, 내 몸은 따듯했다. 정신은 각성 상태인데 몸만 마취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시술에 들어가진 않을 텐데. 준비다. 국부마취에 대한 준비. 나는 그렇게 규정했다. 그 모든 순서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똑똑히 기억해두고 싶었다. 뜻대로 잘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술실로 들어서던 순간이 떠올랐다. 기껏해야 오 분에서 십 분쯤 전일 텐데도 벌써 까마득히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그 입구와 이 수술실 안까지의 거리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었다. 갈림길이었다. 왼쪽과 오른쪽. 어떤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나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왼쪽이었다. 오른쪽에는 먼저 온 다른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였다. 기척을 느끼고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초록색 작업복을 입은 여인의 안내를 받아 내가 막 왼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그것처럼 한없이 맑고 깊고 착한 눈이었다. 거기에 어려 있는 무거운 근심, 짙은 불안, 깊은 공포, 그리고 약간의 희망. 내 또래로 보였다. 앙가슴이 뻐근했다. 문득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싶었다.
그제야 내가 거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보다 더 간절히 기도할 만한 상황도 없을 텐데, 이상했다. 가슴이 서늘했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어쩌면 이천 년 전에 예수님도 병자들을 보는 순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병자가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예수님의 마음은 그 병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다짜고짜 미어지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의 나처럼.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자들을 단 한 번도 물리치신 적이 없다. 수술실의 그 갈림길에서 나는 서 있었고, 내 또래의 그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반쯤 틀어 그를 내려다보았고, 그는 고개를 반쯤 꺾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내가 예수님이라면 그 환자가 자기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매달리지 않아도 내 쪽에서 알아서 그에게 다가가 그가 앓고 있는 병을 고쳐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병이든,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설사 내 병이 낫지 않더라도 그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기쁠 것 같았다.
집도의는 여자였다. 목소리로 알았다. 나는 이미 수술대 위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확인하고 싶은데 눈을 뜰 수 없었다. 꼭 주사를 맞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주 무섭거나 끔찍한 광경 앞에서 한 번 질끈 눈을 감아버리면 그 상황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감히 눈을 뜨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눈꺼풀을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조의는 남자였다. 목소리로 미루어 여자보다 조금 젊지 싶었다. 전문가와 초보자, 고참과 신참, 선배와 후배, 프로와 아마추어, 그런 차이. 여자의 목소리는 나를 안심시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람, 베테랑이다. 그렇게 판정했다. 그렇게 판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이 그 목소리에는 실려 있었다. 나는 집도의를 믿었다. 실수 따위 할 턱이 없는 정교하고 날랜 솜씨의 소유자. 자신만만한 눈빛, 능란한 손길, 단단한 목소리.
학교 때 나는 자신감에 찬 여선생님을 좋아했다. 가냘픈 여성미가 넘치는, 대다수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조숙녀 형이나 미인형 여선생한테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한, 딱 부러지는 성격의 실력 있는 여선생한테서 배울 때 성적도 가장 좋았다. 집도의가 딱 그런 유형의 여자였다. 공포가 거지반 사라졌다. 마취약의 기운과는 상관없이 나는 편안해졌다. 시작합니다. 집도의가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음성. 마음에 든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잠깐 눈을 떴다. 부드럽게 눈이 뜨였다. 그 저항감 없는 자연스러운 느낌에 조금 놀랐다. 집도의는 진지한 낯빛으로 내 몸의 한 군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아니, 당연히 시술 부위일 터였다.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방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의사의 지시대로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에는 둥글고 눈부신 하얀 조명이 있었고, 내 둘레에는 장방형의 모니터 여섯 개가 나란히 붙은 채 공중에 떠 있는 모양새로 설치돼 있었다. 거기에 내 몸속 상태를 알려주는 화면이 한 모니터에 하나씩 모두 여섯 개가 밝혀져 있었다. 여섯 개의 앵글, 여섯 개의 장면. 그렇게 이해했다. 그 여섯 개라는 수효의 의미를 해독할 수는 없었다. 누가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집도의와 보조의의 눈길이 나란히 그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왼쪽 옆구리 부분이 따끔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따끔한 듯한 느낌이었다. 아프냐 안 아프냐고 묻는다면 안 아프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정도의 느낌. 그래도 마취주사 바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제법 길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쩐지 눈을 감아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은 긴장하는데 몸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했다. 역시 약효인가. 노곤했다. 바늘을 뺄 때의 느낌은 이미 없었다. 집도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합니다. 국부마취가 제대로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부축을 마다하자, 어머니는 선선히 물러난다. 나와 동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버지를 따라 먼저 집으로 들어가 내가 누워 있을 자리를 만들고, 그 둘레를 말끔하게 정리하여 나를 맞이하는 편이 낫겠다고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서둘러 멀어져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걷기 시작한다. 두 걸음 걷고 한 호흡 쉬고, 다시 두 걸음 걷고 또 한 호흡 쉬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런 패턴에 벌써 익숙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점점 더 작아진다. 멀어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작아진다는 느낌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작다. 아버지도 작고, 어머니는 그보다 더 작다. 원래의 비율은 그대로다. 그러나 절대크기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래 보인다. 나를 아는 사람이 지금 내 뒤에서 내 모습을 본다면 그 또한 내가 작다고, 예전보다 줄어들었다고 생각할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내 경우는 부자연스러운 변화다. 세월이 줄인 것과, 병이 줄인 것. 문득 어쩌면 이렇게 줄어든 모양새 그대로 속절없이 늙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죽음은 어쩌면 정말로 나한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병은 세월을 두 배에서 세 배쯤 빠르게 흐르도록 만든다. 그게 병이 하는 일이다. 병은 지금 내 몸속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그뿐이다. 그걸 탓할 자격은 나한테 없다.
들어설 때의 마음과 벗어날 때의 마음이 참 달랐던 골목이다. 좌우에 옹기종기 늘어선 집들은 마당이 비좁은데도 저마다 유난히 감나무를 많이 심었다. 담장 밖으로 내민 가지에 아직은 이파리만 짙푸르다. 잠깐 서서 그 한 집의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바람이 한 점도 없다. 감나무 잎들은 정물화처럼 멈추어 있다. 완벽한 정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세한 떨림이라도 찾아내려 애써보지만 소용없다. 문득 떠오르는 의문. 감이 열려 무르익을 때까지 나는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기는 할까. 생각이 제멋대로 번져간다. 공연히 감상적인 기분이 된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흩뿌린 모래 알갱이처럼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너무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우울한 기분을 아주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이제 걸어야 한다. 아버지가 혼자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길이 거북스러워 통증을 애써 무시하고 내처 걷는다.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주저앉고 싶다.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든다. 집이다. *